언제나 즐거워
새벽에 일어나 챙기면 되는 세면도구만 남기고 다른 짐은 트렁크에 넣어 방 한쪽으로 밀어두었다. 새벽 04시 알람을 설정하고 자정 전에 자리에 누웠지만 좀체 잠이 들지 않는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잠깐의 잠은 잤을까 아니 잠을 잤다고 할 수 없는 정도의 시간만큼은 확실하다. 몇 시나 됐을까 핸드폰을 툭 건드려 깨웠다. 핸드폰 불빛에 눈을 바로 뜨지 못하고 몇 번 껌벅껌벅했다. 알람 시간보다 30분 일찍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일어나자는 마음을 먹고 좌선하여 흐릿한 정신을 내몰고 맑은 기운을 차리기 위해 명상했다. 가만히 명상음악을 들으며 들숨날숨에 집중하고 묵직한 어깨가 가벼워질 때까지 이완 명상을 시도했다. 초이가 아침마다 일어나면 일단 명상부터 하는 습관을 들인 것은 오래되었다. 건강에 딱히 도움이 된다기보다 욱하는 분노를 토해내는 빈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 것은 확실하다. 그런 이유로 매일 아침이면 단 10분이라도 반가부좌를 틀고 앉게 된 것이다.
초이는 거실에서 머리를 말리는 드라이기 소음이 들릴 때 방을 나와 욕실로 향했다. 여자 둘이 욕실 하나를 사용해 씻고 말리고 화장하는 시간은 남자보다 두 배 이상이라 드라이기 소음이 울리고 나서 씻어야 얼추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거실에 앉아 아내와 딸을 기다려야 한다.
06:20분 김포발 아시아나를 타기 위해 04:27분에 집을 나섰다. 서울의 어둑새벽 도로는 한산했다. 외곽 순환도로를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많은 인파들이 탑승수속에 한창이다. 그래, 우리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닐 터.
저들도 여행에 굶주려 있었을지도. 이 꼭두새벽에 저만한 사람들이 김포공항을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바깥바람에 목말라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코로나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난 괜찮을 것이라는 긍정 낙관주의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 가족처럼. 초이는 수화물 수속 중인 사람들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음이오"
" 우리 차례네요 갑시다." 트렁크 두 개를 위탁 수화물로 부쳤다.
우리를 태운 아시아나 비행기는 희붐한 김포의 하늘을 날아올라 구름을 뚫고 제주로 향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동체가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괜스레 발에 힘을 주며 버티게 된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땅에서 발이 떨어지면 큰일 나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물어보진 않는다. 나만 그럴 수 있으니까.
하늘 공간 동쪽 끝에서 붉은빛이 보인다. 신께서 태양을 떠올릴 준비를 하는가 보다. 잠을 설친 탓인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스튜어디스의 착륙을 알리는 기내방송에 눈을 떴다. 아시아나 비행기는 제주 땅에 힘차게 발길질하며 내려앉았다. 제주의 하늘은 온통 잿빛 구름으로 가득했다. 공항을 빠져나와 렌터카 셔틀버스정류장까지 트렁크를 끌고 갔다. 트렁크 바퀴의 도르르 구르는 소리가 심장 뛰는 소리보다 낮게 들렸다. 또 보는구나 제주야. 30분 간격으로 렌터카 셔틀버스가 운행하고 있었다.
쿠팡을 통해 예약한 렌터카에서 최초 예약한 차량으로 배정되지 못해 죄송하다며 추가 요금 없이 팰리세이드로 업그레이드하여 제공해 준단다. 감사하게도. 렌터카 관계자가 차 뽑은 지 얼마 안 됐고요 손님께서 두 번째 십니다 한다. 혹시 모를 스크래치에 대비하여 차량 외부를 핸드폰 비디오 모드로 찍어 저장했다.
초이는 카니발을 운전했던 경험이 있어 팰리세이드의 크기가 낯설지 않았지만 막상 운전대를 잡고 도로에 진입하자 육중한 몸체가 부담스러웠다. 완전 자차보험을 가입했다 하더라도 사고 없이 운행하자면 규정속도 지키기는 필수다.
초이는 새 차를 운행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차에 올랐지만 아내와 딸은 깨끗하고 넓은 실내에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조수석에 아내가 뒷자리에 딸이 탔다.
제주에서의 첫 번째 목적지를 내비에 입력하려고 문자판을 열었다.
"어디로 갈까요?"
딸이 외친다. "위꾸하러 가요?"
"위꾸가 뭐?"초이는 물음표 얼굴로 딸을 본다.
"위장 꾸미기요!!"
"어디냐 거기가?"
"해장국집"
새벽 비행기를 타느라 아침을 거른 뱃속에서 해장국집 소리를 엿듣고는 심하게 아우성친다.
소문난 해장국집답게 문 앞에 서성이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대기실에도 앉아있는 손님들이 많았다. 초이네는 43번이다. 해장국집 안에서 24번을 호명하고 있었다.
초이네는 30여 분간의 시간이 흘러 호출을 받았다.
기본 찬은 여느 해장국집에서도 볼 수 있는 겉절이 김치, 깍두기에 젓갈과 고추, 된장이 다다. 고사리 육개장 (만 원) 3인분을 주문했다. 만 원의 가치가 많이 떨어지긴 했나 보다. 제주 물가가 비싸진 것인지도.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 카운터에서 들리는 소리가 지금 대기 넣으시면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됩니다 한다.
시간당 일만 원을 받는다고 하면 저들은 해장국을 2만 5천 원에 먹는 셈이다. 거기다 일행까지 더하면 적지 않은 경제적 가치를 지불하는 것이 된다. 맛이 잊을 수 없고 또 먹고 싶어 찾아올 정도라면 용서할 수도 있으련만.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국물이 없고 죽처럼 바특하다. 첫 숟가락을 입안에 슬며시 밀어 넣었다. 미지근한 온기에 돼지고기 누린내가 살짝 코를 자극했다. 뭐지? 옆에 후추통이 보였다. 후추를 넉넉하게 여기저기 뿌렸다. 앞에 앉은 아내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살짝 쳐다본다. 1시간 30분을 기다려 이걸 먹는다고? 아닌데. 초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