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가족 여행

언제나 즐거워 2

by 폴초이

배고픔을 반찬 삼아 아침을 먹고 용두암으로 향했다. 아홉 시 사십오 분 용두암에 도착하니 대학교 여행 때 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용두암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인 것 같다. 용의 머리를 본 적이 없을 텐데도 해변가 바위를 용두암으로 명명하다니, 상상력이 풍부해서인지 딱히 어울리는 형상이 지상엔 존재하지 않아서인지 잘라 말하기 어렵다. 용두암 위로 제주공항에 착륙하려는 비행기들이 보였다.


용두암을 핸드폰에 담으려고 자리를 잡은 아주머니들이 신경질을 낸다. 무슨 이유인지 단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학생풍으로 보이는 젊은이 한 명이 산책로를 벗어나 해변가 바위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학생 때문에 용두암을 촬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놈아 어르신들이 용두암을 찍고 싶다잖아 빨리 비켜라 관광지에서 담배는 왜 피우는 거냐고 가정교육이 엉망이구나’ 물론 속으로 소리쳤다. 비키라고 했다가 해코지라도 당하면 나만 손해니까. 그래도 용기 내서 비켜주세요라고 할까 아내와 딸에게 용기맨으로 자리매김할 타임인데 말이야. 다행히도 나의 용기 있는 대시는 필요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느꼈는지 문제의 학생은 산책로로 들어왔다. 방해꾼이 사라진 용두암은 하늘로 솟구치려는 자세로 용틀임 중이었다. 헐 용두암이 맞네.


용두암을 떠나 열 시 이십 분 이호 테우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해안가 등대 모양이 트로이 목마를 닮았다. 백마와 적토마는 먼 제주 바다의 고깃배들을 수호하고 지상의 해수욕장을 찾아오는 이들의 사진 배경이 되어준다. 우리도 적토마를 배경 삼아 인증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는 세이렌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이럴까 상상케 했다. 유혹당하지 않으려면 빨리 벗어나야 할 것이다. 사진을 찍자마자 차에 올라 달렸다.


애월읍 해안 도로를 지나가는데 아내가 외친다.

"저 카페 좋아 보이는데요." 나도 운전석에서 저게 카페인가 호텔인가 긴가민가 했는데 아내의 외침에 가보기로 했다.

급정거를 할 수 없어 유턴할 만한 장소까지 갔다가 돌았다. 도로 가장자리 공간에 차를 세우고 다가가니 노을리 카페였다. 호텔의 부속 카페인가 보다.


카페 1층은 식물 정원으로 베이커리와 카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우린 2층으로 자리를 잡았다. '노을리카페'의 커피는 새벽에 일어난 몸의 기운을 활기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2층에서 바라본 애월의 앞바다는 검푸른 물결의 춤 공연이 성황 중이고 바람의 세찬 박수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매트리스라도 있었다면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한 잠 푹 자고 싶을 정도였다. 열한 시에 들어와 오후 한 시까지 느긋하게 바다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감상하며 쉴 수 있었다.


초이는 제주 해안가에 왔으니 "점심은 얼큰한 해물라면이 어떤가?" 아내와 딸에게 먼저 제안했다.

'둘이 고른 아침이 폭 망했으니 내 제안을 받아들이시오.'무언의 압력을 속으로만 덧붙였다.


딸이 찾아보더니 카페 근처에 있는 해물라면집이 후기가 좋게 나왔다고 귀띔해 준다.

"그래? 가보지 뭐" 카페 앞에서 5분 거리 이내에 있었다.


주차가 불편했지만 걸어 1분 정도의 거리에 주차하고 기다림 없이 들어가 앉았다.

난 해물 듬뿍 라면을 맵지 않게. 아내는 좀 더 매운맛으로 딸은 흑돼지 수제 등심 돈가스를 주문했다. 딸이 맛 보라며 건넨 돈가스는 보통의 맛이었고 해물 듬뿍 라면은 다이어트에 성공한 '게' 한 마리가 통으로 들어있었다. 네가 게 맛을 알아? 그래 모른다. 살 없는 게 맛을 어찌 알 수 있겠니? 국물은 얼큰해 피로한 속이 풀리고 면이 꼬들꼬들하게 익어 그나마 먹을만했다.


"이제 산방산으로 가야죠. 유채꽃 보러요?"

"네, 네" 아내와 딸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다.


세시 이십 분경 산방산을 끼고 사계 해변 쪽으로 방향을 돌리자 유채꽃이 보였다. 산방산을 배경으로 유채꽃밭에서 사람들이 꽃과 하나가 되기 위해 갖가지 포즈를 취하느라 바쁜 모습들이다. 그런데 유채꽃을 촬영하려면 일 인당 천 원씩 내야 한다는 팻말이 박혀있고 그 옆에 노인 한 분이 서있었다. 아내는 천 원이 아깝다며 딸만 데리고 가란다. 2천 원을 노인분에게 지불하고 유채꽃밭으로 들어가 산방산을 배경 삼아 한껏 뽐을 냈다. 이렇게 돈을 버는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다. 거참 노는 밭에 유채꽃을 심어 봄 한때 장사로 떼돈이야 벌지 않겠지만 제주를 찾는 육지 사람 중 한 사람으로 기분 좋지는 않았다. 산방산 주변 유채꽃밭마다 차량과 사람들이 가득했다. 일 인당 천 원씩이니 이 동네 할아버님들 용돈 좀 들어오셨겠다. 저분들의 자녀들은 좋겠다. 몇 달간 용돈 보내지 않아도 될 테니.


꼭두새벽부터 해넘이까지 제주의 애월 해안 도로를 따라 산방산까지 탐방했다. 푸른 파도의 넘실대는 손짓에 마음을 빼앗긴 하루였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노랫말이 떠오른다. 맞는 말이고 지당한 말씀이로다. 체력 좋을 때 부지런히 놀러 다녀야 한다.


초이네가 2박을 묵기로 한 레드 클레이 호스텔은 건물이 오렌지 벽돌로 지어졌다. 만실이면 사람들이 꽤나 복닥거리겠다. 들어오는 곳에서 바깥쪽으로 서니 멀리 바다가 보이고 방실 안내받은 2층 복도에서는 한라산도 볼 수 있었다. 예약한 방은 패밀리 한 실 15평형이고 대형 매트리스 2개를 펼치니 셋이 여유 있게 잘만 한 크기였다.


매트리스를 깔고 눕자마자 잠에 취해버렸다. 꼭두새벽부터 움직인 탓에 피곤이 몰렸나 보다. 깜빡 눈을 감았을 뿐인데 한 시간여 동안 잠을 자버렸다. 옆방에서 아이들이 웃고 우는소리만 아니었다면 아침까지 잤을지 모른다. 어쨌든 다행이다. 하나로마트에서 사 온 방어회와 광어회에다 한라산 소주를 마시기로 했는데 옆방의 맑은 소음 덕분에 깰 수 있었다.

한라산 소주에 곁들여 먹을 회와 만두를 식탁에 차리고 하루의 제주살이를 마감했다. 만두는 애월 장인의 집에서 4색 만두를 포장해온 것이다. 장인의 집은 만두로 유명하다. 직접 방문해 만두전골을 먹고 싶었지만 그 집도 웨이팅이 너무 길었다. 셋이서 먹다 보니 딱 한 병이 모자랐다. 레드 클레이에서 한라산 소주 17도를 4천 원에 구매했다. 셋이서 세병이 딱이다.


애월읍은 카페가 다양하고 맛집도 여러 군데 포진해 있다. 퇴직한 다음에 제주 한 달 살기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나중에 살 곳을 정한다면 애월에서 지내고 싶다. 그때까지 부지런히 투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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