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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초이 Aug 17. 2022

아들의 휴가

아내의 손맛

올 연말이면 제대하는 아들이 휴가를 나왔다. 광복절이자 말복일을 맞아 여름휴가를 나온 것이다. 제대하는 그날까지 나올 수 있으면 끝까지 나오겠다고 하는 아들이다. 나오자마자 "빨리 제대하고 싶어!" 소리친다.


난  "야! 나땐 휴가도 맘대로 못 나왔어." 아들 목소리를 내 큰 목소리로 눌러 재운다. "아빤, 그땐 그때고"한다.


난 전방에서 군대생활을 했다. 철책선을 넘어 누군가 넘어오지 않나 밤마다 초소 근무를 1년 넘게 했다. 그땐 정말 1년 가까이 휴가를 나오지 못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들이 집에 왔으니 아내의 손길이 바쁘게 움직일 것임을 안다. 저녁 뭐 먹을래부터 묻는다. 군대 배식도 나때보다 월등히 좋아졌음을 아들의 얘기로 안다. 그럼에도 아내는 뭔가 특별한, 군대에서 먹기 힘든 메뉴를 고른다. 더하여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외식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난 그런 아내의 마음과 반대로 말복이니 닭볶음탕이 어떤가요. 아내에게 동의를 구한다. 아내는 집에서 음식 준비를 하려면 가스불 앞에서 땀 흘릴 것을 걱정하는 듯 뾰로통한 얼굴이다. 아들이 좋아하는 메뉴잖아요. 아내에게 기운을 보낸다. 아들 먼저 생각하라는 응원 메시지인 것이다. 아내는 대답 없이 마뜩잖은 표정이다.


마트 가서 닭볶음탕 재료를 사 오라는 아내의 명을 받들어 오후 네시쯤 동네 지하 마트를 갔다. 우리 동네 마트는 언제나 사람들이 붐빈다. 과일이 맛있고 다른 곳보다 싸다. 대형마트보다 싸고 주변 트럭이나 노점보다 저렴하다.


복날이라고 삼계탕용 닭이 많다. 닭볶음탕용으로 손질된 포장육은 보이지 않는다. 복날엔 백숙 요리를 많이 해 먹기 때문에 닭볶음탕용을 진열대에서 철수시킨 것인가 보다. 다행히도 토종닭 한 마리가 남아있어 닭다리와 가슴살을 추가하여 구매했다.


토종닭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는 일은 내가 담당했다. 닭이 크고 부위별로 자르기 위해선 손 힘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닭다리가 내 손보다 길다. 토종닭이 일반 닭보다 살도 차지고 맛이 더 좋은 것 같다. 끓이는 시간의 공을 더 들이긴 하지만.


우리 집 냄비 중에서 제일 큰 전골냄비 가득 닭볶음탕이 담긴다. 감자, 양파, 당근, 토종닭, 닭다리살, 가슴살이 붉게 물들고 맛있게 익어간다.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주방 쪽에서 유리그릇 깨지는 소리가 맑고 크게 울린다.

"어이구 하기 싫은 요리를 하시느라 그런가요."

"그러네요."

 더운  가스불 앞에서 요리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이해하면서도 깨지는 소리에 반응하는 내 몸이 굼뜬다. 딸이 "뭐예요?" 하며 재빨리 주방으로 청소기를 들고 달려든다. 나보다 빠르게 움직인  덕분에  책상에서 반쯤 일어서다 도로 주저앉는다.


청소기를 돌리는 이유는 유리그릇 파편이 어디로 튀어나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갑자기 "아야" 청소기를 돌리던 딸이 비명을 지른다. 딸이 깨알만  유리그릇 조각을 밟은 것이다.  얼른 주방으로 나와 딸이 발을 들고 손톱으로 깨알 조각을 빼내는 모습을 지켜본다. 욕실에서 씻고 나온 딸을 거실 소파에 앉히고  지혈제를 발라주면서 딸의 발바닥을 살펴본다. 다른 파편은 박혀있지 않고 상처도 크지 않다. 다행이다.


식탁에 오른 닭볶음탕을 바라본다. 푸짐하고 맛깔스러운 모양이다. 단정한 차림새는 아니지만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막걸리가 쉬이 들어간다. 아내에게 수고했네요. 맛있네요. 연발했다.


휴가 첫날의 저녁은  식구가 둘러앉아 막걸리를 나누며 보냈다. 아내는 마지못해 준비한 표정이었지만 먹는 우리가 맛있다고 칭찬하자 다소 풀어진  보였다. 아내 손맛이  먹는 음식보다 맛있으니까.


아들과 딸이 입가에 묻은 막걸리 잔해를 훔치며 마신다. 닭다리를 뜯고 가슴살을 찢어 먹어댄다. 맛있게 먹는 아들과 딸의 모습에 아내의 표정이 밝아진다. 내가 웃음 총을 아내에게 쏘아댔지만 아내는 눈을 흘긴다. 그려 나만 미운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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