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는 꽤 좋은 휴가제도가 있다. 모든 직원이 돌아가며 한 달씩 휴가를 다녀올 수 있는 제도인데, 직원이 본인 연차 중 10일을 쓰고 회사가 유급휴가를 10일 얹어주어 총 영업일 20일(평일 5일 x 4주)을 통으로 쉴 수 있게 해 준다. 이 제도가 생긴지는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정도 지났는데, 지금은 이런 유사한 제도가 다른 기업 내에서도 조금씩 생기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 대기업 사이에서는 꽤 실험적인 도전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보통 여름휴가 시즌에 일주일 내지는 열흘 정도 휴가를 쓸 수 있는 게 고작이었는데, 통으로 한 달을 쉴 수 있는 제도가 생기다 보니, 다른 직원들은 평소에 경험할 수 없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는 계획들로 이 한 달의 시간을 꽉 채워 넣어 시간을 보내곤 한다. 나보다 먼저 다녀온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떤 이는 유럽이나 남미의 여러 국가를 다 돌아보고 오기도 하고, 가장 가고 싶은 나라 한 곳을 정해 한 달 살이를 하고 오기도 했으며, 또 어떤 이는 북극에 다녀오기도 하고, 동남아 휴양지만 여러 번 다녀오기도 했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긴 시간을 함께한 이도 있었으며, 한 달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돌아온 이도 있었다.
시간이 꽤 흘러 어느덧 내가 한 달 휴가를 가야 하는 날이 다가왔다. 이제 아들도 어느 정도 자라서 조금 먼 해외로 가족여행을 다녀오고 싶기도 하고, 잠시 나의 과거와 미래를 돌아볼 수 있도록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와 실제 어떤 것들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나 이외의 가족 구성원(아내와 아들) 스케줄이 일정하지 않고, 최근 급격히 솟아오른 물가로 인해 해외여행 비용이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이라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아내와 상의한 것도 있고, 아직 혼자 생각하고 있는 것들도 있는데, 현실적인 여건을 감안하여 해보고 싶은 것들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보았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이동거리에 대한 제약이 있다 보니,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였던 것 같고, 국내 여행을 갈 때도 이동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곳은 피해왔었다. 그러나 이제는 곧 7살이 될 나이가 되기도 했고, 아이에게도 직접 '혹시 우리가 지금까지 다녔던 곳들보다 더 먼 곳으로, 또는 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곳으로 여행 갈 수 있겠어?'하고 물어보니 '응! 갈 수 있어!'라며 힘찬 대답을 들을 수도 있었다.
아내와 나도 용기를 내어(?) 짧게나마 장거리 해외여행에 도전해보고자 하는 의지를 다졌고, 현재 미국 본토 쪽으로 여행을 다녀올 계획을 가지고 있다(모두 다 맞는 일정을 잡기가 어려워 장기간으로 잡을 수 없는 게 너무 아쉽다). 아직은 아이에게 모바일 기기를 손에 쥐어주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보니, 12시간 넘는 장거리 비행기간 동안 아이도, 나와 아내도 과연 무사할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세 명이서 의기투합하여 잘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마음에서 읽고 싶은 책을 골라 구매를 해놓았다. 그중 몇 권은 다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도 가지고 했지만, 몇 권은 목차만 들여다 보고 아직 읽어나가지 못한 것들이 있다. 에드거 샤인과 피터 샤인의 '리더의 질문법', 김난도 교수님의 '트렌드 코리아 2023' 등이 그것이다. '중요한 책이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몰입해서 읽어야지'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다 보니, 이런저런 핑계를 스스로에게 제시하며 책을 열어보지 않았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대해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냥 밥 먹듯이, 커피 마시듯이, 시간 날 때 간식 먹듯이 틈틈이 열어서 읽어 나갔던 책들이 오히려 자주 보니 머릿속에 오래 남기도 하고, 책 읽는 중간에 일과 생활 속 경험들이 생각에도 영향을 미치며 상호작용하는 효과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2022년에 스스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코딩 공부를 했던 것이다. IT 비전공자인 데다 직무와 뚜렷한 연결성도 없었지만, 코딩이라는 것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매개하는 열쇠'와 같이 느껴져서 약 4~5개월 동안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공부했었고, 프런트엔드와 백엔드의 맛보기 정도 수준의 결과물까지는 얻어낼 수 있었다.
직무와 연결되는 분야가 아니다 보니, 퇴근 후 시간이나 자투리 시간에 주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자유로운 시간이 꽤 많이 주어져서 지난 4~5개월 공부했던 시기보다 좀 더 집중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생긴다. 최대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React를 한 번 파보려고 한다.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꼭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는 혼자만의 여행을 다녀와보고 싶다. 현실적으로 유럽과 같은 곳에 갈 수는 없기 때문에 아무리 멀어도 가까이에 있는 일본 정도가 될 것 같고, 해외가 어렵다면 국내 여행으로 갈음해야 할 것 같다. (본래 가보고 싶었던 곳은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같은 곳이었는데, 여건상 어려울 것 같다.)
여행은 가족이나 다른 사람과 같이 가는 여행도 있겠지만,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는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누군가와 같이 여행을 가면, 그 사람과의 대화나 관계, 가볼 장소와 먹을 것 등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다 보니, 그 사람과 함께 있는 순간에 여행지의 본질 자체보다는 같이 있는 사람을 더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혼자 기차를 타고 이동하거나, 길을 걷고, 어느 곳에 방문하고, 현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면, 여행지 그 자체를 온몸으로 느끼고 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일하고 있는 근무지가 집과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보니, 출퇴근에 꽤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사무실 근처의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고려 중인데, 부동산 침체기이다 보니, 지금 사는 집을 세 놓기도, 이사를 가야 하는 지역에 마땅한 물건을 찾기도 참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시는 분들도 여러모로 힘들어하는 시기이겠지만,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집 값이 떨어져 걱정이고, 집을 구하려는 사람도 높은 대출금리로 인해 현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참 어려운 시기다. 당분간 지금과 같은 고금리 기조가 이어질 것이고, 내년도에는 경기침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모쪼록 많은 사람들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경기가 회복되고, 금리도 안정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을 정리한 후, 하나씩 적어보니 한 달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진다. 그 기간 동안 이 다섯 가지를 모두 다 만족스러울 만큼 해낸다면, 비록 다른 직원들처럼 멋진 한 달 여행을 다녀오진 못하겠지만 나에겐 꽤 의미 있는 시간들로 채워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고자 하는 일들을 말로 하거나 글로 적으면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고 하는데, 그런 우주의 기운이 내게도 도달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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