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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번째 편지

2021년 7월 9일

by 주원

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을 땐 막 따뜻해질 때쯤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덧 밖에 나와 있으면 숨이 막히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시간과 계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알아서 흘러가버립니다. 그것이 조금 무서운 시기가 되었군요.


지난주부터는 업무 효율이 매우 떨어졌습니다. 꾸역꾸역 산다는 느낌이 강하군요. 연차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반차를 쓰고 쉬기로 했습니다. 지금부터 주말까지는 행복 찾기를 할 거라는 작고도 거대한 목표가 있습니다. 행복이라니, 그런 단어를 입에 올린 지는 또 얼마나 오래되었는지요.


작년 말부터 올해 초쯤에는 마음속 아이디어 우물에 아이디어가 가득해서 마음껏 퍼다 써도 줄어든 것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바닥이 나버려서 주말 동안 잠깐 충전을 해봐도 금방 동이 나버려요. 그 우물에는 아이디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변인들에 대한 애정과 나를 지키는 힘이라던가, 예의라던가, 그런 것들이 자꾸자꾸 사라져 버려요. 이번 주엔 욕과 짜증이 매우 늘었습니다. 아아- 어째서 이럴 때 '같이 맛있는 거 먹고 힘내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을까요? 아마 다들 힘들어서 자기 자신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겠죠.


어제저녁부터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이라는 구절이 혀끝에 맴돕니다. 생각해보면 인생이 뭐 같을 때마다 홍상수의 영화를 본 것 같네요. 그 영화는 제 인생보다 더 뭐 같아서 조금 웃겼던 것 같기도 합니다. 마라샹궈도 먹을 거고요, 영화를 보면서 행복을 좀 찾아볼게요. 누구를 통해서도 아닌 나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행복. 어째서 노잼 시기가 찾아오면 '나는 언제 행복할까'에 대한 답을 잃어버릴까요?


아, 전할 소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2년 전쯤에 저는 비슷한 계절에 노잼 시기를 크게 앓아서 정신의학과에 갔더랬습니다. 선생님과의 대화는 1년 8개월 동안 이어졌고 저는 꽤 긍정적이고 둥근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토요일엔 정신의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정신의학과에 갔다는 게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멘털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않고 오히려 주변인들을 괴롭게 한다는 거 잘 알고 있어요. 제 자신에게 너무 혹독하게 대한 것이 대부분의 문제의 원인이었으니... 이번 주에는 좀 더 너그럽게 대해볼게요. 여유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니까, 한 번 잘해보겠습니다. 모두들, 건투를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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