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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원 Feb 11. 2019

비행, 그 괴로움에 대하여

비행공포증

  비행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곳에 20년 동안 살았기 때문에 초등학생 때 이미 오십 번 이상 비행기를 탔다. 스무 살이 되고 나서는 본가에 가기 위해 일 년에 세네 번 비행기를 탔다. 출장을 밥먹듯이 가는 사람과는 비교가 되지 않겠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택시보다 비행기를 더 많이 탔다는 것.


  비행에 익숙하지만 사실 나는 비행기를 타는 걸 매우 싫어한다. 계속되는 연착도 싫고 코를 바싹 마르게 하는 비행기 안의 건조함도 싫고 엉덩이와 무릎을 뻐근하게 만드는 좁은 좌석도 싫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싫은 건 비행기가 지상 위로 올라갔을 때의 일이다. 알랭 드 보통은 “인생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몇 초보다 더 해방감을 주는 시간은 찾아보기 힘들다”라고 말했는데 나는 완전 반대다. 그 몇 초부터 도착하기 전까지의 시간은 나에게 발 밑엔 아무것도 없다는 그 불안함과 기류 변화로 비행기가 흔들릴 때의 공포감의 연속일 뿐이다. 진심 세상에서 제일 싫다.


  비행기를 타면서 큰 사고를 겪었던 것도 아닌데 비행기가 흔들리고 바이킹을 탄 듯 무중력에 의해 엉덩이와 의자가 분리된 느낌이 들 땐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을 참는다. 심장은 쿵쾅거리기 시작하고 영화에서 본 온갖 비행 사고 장면이 떠오른다. 미드 <로스트>를 보고 난 뒤에는 더 심해졌다. 비행 사고는 로또를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하지만 사고가 난다면 죽을 확률은 거의 1에 수렴하지 않나? 게다가 떨어지는 나를 구해 줄 아이언맨도 없다고! 몇 년 전, 우울감이 심해 죽고 싶다는 생각을 쉽게 하던 때가 있었다. 중국에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기내식을 먹는 중에 커피를 나눠주지 못할 정도로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렸다. 테이블에서 포크나 버터, 빵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멀미가 나고 식은땀이 흘러서 식사를 중단했는데 주변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묵묵히 음식을 입에 가져대고 있었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최후의 만찬이란 말인가.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는 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비행기가 흔들리니 '아직 죽고 싶지 않다고 시발!'이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 후로 나는 죽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자의든 타의든 간에 비행기를 일 년에 두 번 이상 타야 하기 때문에 그 시간을 견딜 방법이 필요했다. 내 방법은 이렇다. 첫 번째는 비행 내내 이어폰을 끼고 기내 소음이 들리지 않을 만큼의 시끄럽고 신나는 노래를 듣는 것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핸드폰을 비행기 모드로 해놓고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는다. 두 번째는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이다. 책이나 영화, 드라마, 게임 같은 걸 꼭 준비하는 편이다. 영화보다는 길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좋고, 게임은 캔디 크러쉬같이 간단하고 질리지 않는 게임이 좋다. 질린다 싶으면 핸드폰 메모장을 켜고 글을 쓰기도 한다. 세 번째는 마인드 컨트롤이다. 비행기가 흔들릴 때마다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나는 지금 비행기가 아니고 배를 타고 가는 중이다, 이건 그냥 파도 때문에 배가 흔들리는 것이다’라고 되뇐다. 기도도 한다. 천주교 신자지만 비행기 안에서 만큼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신들에게 기도를 한다. ‘이번 비행만 무사히 마치면 성당도 다시 나가고 착하게 살겠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기도 내용을 잊어버린다).


  적고 나니 미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렇게 태어난 걸 뭐 어쩌겠는가. 비행기가 싫다고 탈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사실 이 글도 김포에서 제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쓴 글이다. 오늘은 이매진 드래곤스의 음악으로 귀를 틀어막고, 신카이 마코토의 언어의 정원을 읽었고, 눈을 감고 항해 중인 배의 모습도 그렸다. 이제 곧 착륙한다는 승무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얼른 무사히 착륙해서 땅을 밟았으면 좋겠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비행을 견디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좋겠다. 오늘도 제 기도에 등장해주신 하느님, 예수님, 성모님, 부처님, 알라신, 천지신명님, 그리고 그 외 세상에 계신 모든 신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도 신세 좀 질게요.


p.s. 제주에서 김포로 갈 땐 마침 옆 자리에 2살 정도의 아기가 타서 같이 놀아주었는데 칭얼대는 걸 달래주느라 두려움에 떨 시간이 없더라. 아이와 비행기를 타시는 부모님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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