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by Minnesota


침수에 가깝게 되어 버린 나의 기존 산책로에 혼자 가보았다.


8시 넘어서 집 밖으로 나왔는데 달리 갈때도 없어 무작정 그곳으로 간 것이다.


산책길에 가기 전에 샀던 커피는 산책길 진입 한참 전에 이미 동났다.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다들 그냥 내려와서 걷고 있었다.


나도 그래서 따라 걸었다.


마음이 침울하다.


인생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라는 칼 포퍼의 말을 인용하여 만든 어느 유튜버의 영상을 찾아서 들었다.


한창 힘들 때, 그때도 혼자 걸으면서 이 영상을 반복하여 들었던 것 같다.


왜 누군가는 다소 평화롭고 평탄하게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나는 이리도 사는게 힘든건가란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 든다.


조금 살만해졌다 싶으면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해결하기 위해 허덕이고 지치고.

이 모든 것의 반복이 인생인가.


나는 요새 정이 떨어지는 인간에 대해선 자연스레 과거로 치부해버리고 자체 삭제하는 편이다.

이건 흔히들 말하는 손절과는 차원이 조금 다르다.


설사 그 대상이 현재 내 일상에 어느 일정 부분을 차지할지라도 나는 이미 그 대상을 과거의 인연으로 치부하는 레퍼토리라고 보면 될 것이다.


살기 위해 산책을 다녀와 샤워를 하고 계란을 삶고 고구마 삶아 논 것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머리를 말리고 그릭요거트에 사과랑 견과류를 넣어서 영화 사도를 틀어놓고 먹었다.


요거트를 먹는데 눈물이 났다.

딱히 뭐 서러워서도 아니고 누군가한테 뭔가 말하고 싶은데 못말해서 답답함이 느껴져서 운것도 아니다.

그냥 요거트를 딱히 먹고 싶지도 않은데, 살기 위해 꾸역꾸역 넘기는게 싫어서 눈물이 난 것 같다.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르겠다.


이제 조금 쉬었다가 3시까지 회사에 나가야한다.

이쯤 되니 차라리 회사에 가는 편이, 그곳에서 가면을 쓰고 웃으며 일을 하는 편이 훨씬 낫겠다 싶다.


앞으로가 걱정되고 내리지 못한 결정들에 대해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우습지만 자꾸 타로를 보고 있다.


나도 안다. 타로점이 맞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어제도 그런데 20분간 타로를 봤다.


결과는 좋지만 과정에서 많이 어려울 것이라고 나왔단다.

이미 아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냥 봤다. 심신이 지치면 어쩔수 없나보다.


어제는 약을 먹기 싫었는데 머리 아픈게 낫지를 않아서 결국 약을 먹었다.


오늘은 몸이 잘 버텨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봉착한 문제해결의 순간도 잘 해결이 되서 또 괜찮아진다는 그 레퍼토리를 잘 알기 때문에 나는 좌절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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