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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ilda Jun 11. 2023

목표 없음에 대하여

나는 목표지향주의자다.

살아오는 내내 단기 또는 장기 목표를 갖고 이에 따라 움직이는 편이었다.

고등학교때는 대다수의 학생처럼 목표하는 학교를 지정하고 이를 위해 공부했다.

비록 목표하는 대학에 가진 못했어도 서울의 상위권 대학 중 한 곳에 입학했고 나는 만족했다.

대학 이후에는 높은 학점/미국 교환학생 등이 단기 목표가 되었고 모두 수행했다.

그리고 중간에 인턴, 졸업 전 취직까지. 목표는 왠만하면 다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도 항상 목표를 한가지 이루고나면 허망함이 찾아왔다. 얼마나 잘, 빠르게 이루던 상관없이 나는 매번 목표를 이루고 나면 이상야릇한 허망함을 마주했다.

25살부터 회사생활을 시작하고나선 자주 단기 목표가 다이어트가 됐다. pt와 식이요법 등을 병행해서 매번 7~10킬로 정도를 뺐다. 그러나 얼마못가 다시 쪘다. 회사생활을 하면서는 목표를 정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퇴사를 하고나면 당연히 새로운 목표는 새로운 회사 입사가 되었고 그것 또한 금방 해냈다.


특히 이번 퇴사 때는 사실 이미 30대 초반을 넘어가고 있던터라 쉽사리 새로운 곳에 붙을 거란 기대를 품지 못했다. 일단 버틸만큼 버텼기 때문에 퇴사했지만 금방 또 어디서 회사생활을 할거란 기고만장한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5주만에 합격했고 합격한 회사에서 한번 더 점프해서 직급을 올렸고 연봉도 올렸다.

그러고 나니, 작년 하반기부터 그렇게 애를 쓰며 얻어내고자 했던 목표를 성취하고나니 역시나 허무함이 밀려왔다. 사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허망함. 아무리 옆에 남편이 있었도, 직장에서 하하호호할 사람이 생겨도 집에 와서 아무에게도 오지 않는 메신저 앱을 열어볼때마다 허망함은 나를 깊이 파고들었다.


새로운 목표를 또다시 정해야할 타이밍이 온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더이상 목표를 정할 것이 없다. 동이 난 것이다.

전 직장을 다니며 대학원을 졸업했고 논문도 작성했다. (물론 학부에서도 논문은 작성했다. 영어로.)

하여간 이제 또 대학원을 다닐 이유는 사실상 없으며, 그렇다고 박사를 하자니 주위에서 너무나도 자주 박사생활은 함부로 지원하는게 아니라는 이야길 많이들어서 주저된다. (또한 길을 틀었으니 박사 전공을 또 뭘로 해야할지 전혀 모르겠다.)


진급을 목표로 하자니 그건 정말 어리석은 행보라 생각된다.

회사생활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책임감을 가지되 진급을 목표로 하면 할수록 그 목표에 멀어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진급을 하고 싶다면 지금은 절대로 목표를 진급으로 삼아선 안됐다.


그렇다고 다이어트를 선정하자니 나는 운동을 하기가 싫다.

PT도 싫고 헬스도 싫고 필라테스는 더더욱 싫다.

운동에 돈을 쓰기가 너무 싫다.

이제와서 내가 미인계를 써서 스파이 생활을 할 것도 아닌데 굳이?란 생각이 든다.

게다가 나는 내가 너무 예쁘다는 것을 알릴 SNS 생활도 전혀 안한다.


그러다보니 내가 목표로 삼을 만한게 아무것도 없다.

엄마는 가정 돌보는 것을 목표로 삼으라고 했다.

또 아는 분은 나에게 목표가 없는 이 시기를 그냥 즐겨보라고 한다. 질릴때까지.


나는 요새 회사생활만 한다.

주로 일주일에 1~2회 저녁 약속이 있고 술을 자주 많이 마신다.

주말에는 남편과 산책을 꼬박꼬박 하며 자주 영화를 보고 쇼핑도 한다. 전시회도 보러간다.

이런 생활에 나는 나름 만족한다. 

물론 목표지향주의의 나에게 이런 생활은 사실 꽤 낯설다.

생활의 중심에 목표란 것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생활의 중심에 꼭 목표를 두어야만 '잘 사는 삶'일까?

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하루하루 성실히 일하고 번 돈으로 맛있는 것 사먹고 좋은 것 보고 즐겁게 생활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크나큰 행복이자 행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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