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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ilda Apr 03. 2024

무제

써내려가고 싶은 생각이 많은데 본론보다 앞서 등장하는 제목란이 가끔 거슬린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제목을 '무제'로 기재한다. 오늘은 회사에 안 갔다. 오늘부터 그 회사엔 다시는 갈 일이 없다.


분명히 월요일에 퇴사하겠다고 말했을 때 그러면 지난 회의때 수정하라 말했던 것에 대해 반영해서 다음날인 화요일 오전 10시쯤 보여달라고 하길래 준비는 바로 끝냈다. 그러나 화요일 오전 나는 9시에 준비완료됐다고 했으나 끝끝내 해당 업무에 대해 종결 지을 시간은 없었다. 거기서 끝이었다.


뭐가 도대체 그렇게나 바쁜건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한 약속을 그 따위로 안 지킨다면, 나도 지킬 이유가 없다.

모든 내용은 작성해서 오늘 아침에 통지했다. 어떤 자료는 누구에게 넘겼고 모든 내가 갖고 있던 자료는 usb에 넣어서 서랍안에 넣어두었다고. 나는 내가 했던 자료를 삭제하고 가고 싶지도 않고 다만, 약속을 안지키는 이들에겐 내 또한 예의를 과도하게 차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 곳은 고인물 대잔치고, 그들끼리 모든걸 결정하는 곳이기에 알아서 잘 다음 사람을 채용하겠거니 하고 나는 7시 30분쯤 아아를 들고 개를 데리고 산책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에어팟을 안 끼고 돌아다녔다. 강아지 용기는 아저씨들 스타일인 듯 하다. 지나가는 아저씨들마다 강아지를 불러서 만지려고 한다. 이 강아지도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좋은가보다. 오자마자 샤워를 시켰다. 


월요일에 만난 선배 말로는 남편이 그냥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나를 아끼는 것과 같은 모양새라고 했다.

거의 아빠처럼 챙기는걸 보았을때 그렇게 판단하셨나보다. 사실 남편이 싸울땐 죽어라 싸워도 결국은 나에게 져준다. 그날도 남편은 나를 데리러왔고 내가 원하는대로 라면을 끓여줬고 다음날 회사 가기싫고 절망에 빠져 아침부터 눈물을 흘리는 나를 안아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어제는 지쳤는지 9시부터 잠들었다. 솔직히 너무 지쳤다.

9시부터 4시까지 통잠을 자고 그 후론 선잠을 잤다.

집에서 브런치 글을 쓰는게 너무너무 좋다. 아침에 사람 없을 때 여의도를 산책해서 좋다.

그런데 이 시기는 결국은 곧 끝날 것이다. 우리집은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당장 이사가서 내야할 대출 이자도 못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말 황당한게 나한테 어느 누구 하나도 제대로된 인수인계를 해준 이가 없는데, 왜 나한텐 인수인계를 요구하는건지 이해가 안 간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면 나한테 인수인계를 제대로 해줄 정도로 업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조차도 없어보이는 곳이다. 아주 엉망인 곳.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내내 사실 너무 피곤했다. 강아지는 힘이 흘러넘쳐서 더 뛰고싶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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