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돌아온 남편에게 같이 커피를 사러가자고 한다.
어제 우리 부부는 저녁에만 대략 7-8만원은 썼을 것이다. 그래서 배달로 커피를 시키고 싶지 않았다.
픽업오더로 주문해둔 커피는 도착해보니 아직 준비가 안되어 있었고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로 보니 새로 온 알바생인듯 했다.
남편은 귀찮다고 투덜대더니 갑자기 또 내려오는길에 나랑 있어서 신이 난 모양이다.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이다. 돌아와서 사둔 방울토마토, 자두와 남편이 구운 닭가슴살로 밥을 먹는다.
샤워를 공들여서 오래했다. 맨날 아침에 쫓기듯이 헬스장에서 샤워를 한다.
토요일 이 여유를 즐기기위해 나는 월~금 내내 때려치고싶지만 참는다.
어제는 본의 아니게 직속상사와의 면담을 오래 했다.
일단은 지금 다니는 이 회사는 내가 힘들게 배워 온 것들이 하향평준화 되는 느낌이 들게 하는 곳이다.
그리고 상사와는 벽 보고 이야기하는 관계랄까. 아무리 열심히 설명을 해도 모든게 도루묵이다.
그래서 suffocating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그런 이야기가 나오게 됐고 진심일지 모르겠으나 상사는 놀란 눈치였다.
점점 낯빛이 사색이 되어 갔다. 흙빛이라고 말하는게 더 맞겠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본인이 본인의 상사가 이런 사람이라면 본인은 그만뒀을거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버티냐고 한다. 괴롭지 않냐고.
괴로워서 이렇게 말하는거다. 이번주만 두번째다.
그나마 학교다니면서 그 낙으로 여기까지 온것이다.
학교 방학이 되자마자 다시 고통이다.
나는 미래 가능성을 보고 버텼다. 하루살이처럼 버텼다고 했다.
그리고 나한테는 선택권이 없다. 매일 버티는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내가 밑에 사람인데, 내가 버텨야지 어떻게 하겠느냐고 했다.
모든 이야기를 끝맺히고 나니 6:15 정도였다.
이미 다른 부서 사람들은 다 집에 가고 없었다.
나는 주섬주섬 짐을 챙겨 집에 가는 버스에 올라탔고 머리가 아파왔다.
이렇게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내 자신이 참 안타깝다.
사실 내가 쓰는 보고서는 내가 정말 뼈아프게 고통스럽게 배워온 자산이다.
그런데 그 자산을 하향 평준화하는 느낌을 받아가면서 버텨내고 있는 현재다.
그래서 매일이 고통스럽다. 아무것도 기대할 게 없는 삶이다.
상사는 나보고 월급 때문에 버티는 건 아니지 않냐고 했으나,
나는 월급도 중요하다. 그러나 월급보다 더 중요한건 미래의 가능성이다.
내가 박사를 하는 이유도 미래의 가능성 때문이다. 지금 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23년, 24년보다는 더 나은 삶을 현재 25년도에 살고 있다.
23년도에는 8-5 출퇴근을 했으나 매일 하기 싫은 일을 하느라 고통을 술로 잊으려고 했다.
매일같이 맥주를 4캔 이상 먹었다.
24년도에는 너무나도 잦은 이직에 힘들었고 그 외의 여타 일들이 나를 한시도 가만두지 않았다.
그래서 다 포기하고 싶었고 포기하려고도 했었다.
그런 순간에 이 회사에 들어왔고 지금 25년 상반기를 끝낸 것이다.
그 과정이 쉬웠냐 묻는다면 절대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여기가 특별히 나아서 버틴거냐고 묻는다면 그것 또한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한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미 박사과정을 시작했고 남편이 대준다고 한 학비는 한 학기로 끝났다. 퇴직금은 벌써 동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면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선 당연히 내가 벌어야 하고, 아직도 자가 마련을 못했기에 그것 또한 내가 일을 해야 하는 이유다.
이틀 전 우연히 유튜브에서 한 채널을 발견했다.
어떤 여자분이 얼굴은 공개하지 않은 채 자신의 권고사직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3살짜리 딸이 있는 그 여자분은 본인이 명문대를 나왔고 서울대 나온 다른 회사 사람과 함께 권고사직을 당했다고 한다. 작년엔 남편이 권고사직을 당했고 올해 초 다행이도 더 좋은 곳에 들어갔는데 얼마 안되서 자기가 권고사직을 당해서 너무 억울하고 서럽다고 한다.
본인이 원하는 삶은 다 필요없고 그냥 딸 아이와 행복하게 일하면서 평온하게 사는 것이란다.
근데 그게 자기한테는 주어지지 않는 것 같아서 괴롭다고 했다.
그 영상을 본게 내가 회사에 있는게 못견디겠어서 당일에 오후 반차를 쓴 날이었을 것이다.
그걸 보면서 다시 또 그래 나가면 안된다하고 마음을 먹어본다.
상사를 2시간 가량 면담을 하는 와중에 대학원 동기한테 전화가 온다.
카톡으로만 대화하는 관계여서 전화가 오길래 중요한 용건인듯하여 바로 전화를 다시 건다.
학교 연구소 창간 학술지에 내는 공동연구 관련이었다.
모든게 너덜너덜해진채 집에 갔고 남편은 치킨이 먹고싶다해서 치킨을 시켰으며 나는 나대로 태국음식이 먹고 싶어서 미고랭을 주문했다.
점심엔 바나나푸딩에 밀크티만 마셨기에 미고랭이 무지하게 맛있었다.
그리고 남편은 프리미엄 삿포로 맥주를 사왔다. 비싸긴 했어도 맛은 기가막혔다.
그렇게 맥주를 또 마셨고 저녁에는 돈을 펑펑 써댔다.
그리고 오늘 아침, 여유롭게 남편이랑 커피를 픽업하고 웃고 있는 강아지를 바라보면서 토요일 아침의 여유를 위해 내가 겪는 고통이 이렇게나 크구나 새삼 깨닫는다. 슬프다. 동시에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