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by Minnesota

자꾸만 눈물이 줄줄 흐른다.

우울증이 있어서는 아니다. 그냥 눈물이 줄줄 흐른다.

어제부터 그랬다. 어제는 학교에 종일 있는 하루였고, 발표 1건이 걸려있었으며 교수님을 뵐 일이 걸려있었다. 걸려있는 모든 일이 나를 힘들게했고 곧장 위경련처럼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났다.


먹기 싫은 순대국을 동기들과 억지로 먹었으며 속으로 이제 마지막이다 이번학기도 마지막이다 되뇌였다.

하루종일 학생들의 발표가 이어졌고 3교시쯤엔 허리가 두동강나기 일보직전이었다. 아니 그 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교수님을 뵈러 갈때가 3:45쯤이었다. 4시에 오라하셨는데 그냥 15분 일찍 갔더니 교수님들은 버릴 짐을 내버리느라 바빠보이셨다. 연구실 이동이다.


나는 교수님을 뵙자마자 다시 얼어붙었고 교수님 말씀을 듣고 수첩에 껴 갔던 손편지를 건네드렸다.

그 편지가 교수님께 어떤 의미일지 나는 알수가 없다. 다만 나에겐 꽤나 큰 의미의 편지다.

그 편지를 쓰기까지 대략 3년간은 손편지를 쓴 일이 없을 정도다.


나라는 사람은 남편 외에는 감정을 잘 표현을 안하는 무뚝뚝한 사람이다.

왠만하면 속으로 삭히는 편이고 그러다가 한번 터지면 주체하지 못한다.


어제 뵌 교수님은 2주전의 모습보다 많이 피곤해보이셨다.

"올해 마지막으로 뵙는 날인 것 같아 오늘 드린다"며 건넨 편지를 읽으셨을지 모르겠다.

단 한장에 내 마음을 다 담아봤다. 길게 쓰지 않고싶었다.


길게 쓴다고 마음이 더 잘 전달되는게 아니니까 말이다.


어제는 중간중간 브런치에서 나와 같은 분의 글을 읽었다.

직장생활을 하시는 40대 여성분인듯한데 그분도 박사과정중이시다.

그리고 우울증을 겪었는데 지금은 많이 치유됐다고 하신다.


나는 우울증이란 진단을 명확하게 받아본 일은 없으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우울증, 그것도 심각한 상태에 몇번 빠진 적은 분명히 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정신과 의사가 아니기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 분의 글을 읽다보면 마치 내가 쓴 글인양 느껴진다.


나는 어제같이 하루종일 밀폐된 공간에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있는 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인 사람이다.

집에 올때쯤 온몸이 쑤시고 머리가 특히 깨질것처럼 아팠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매주 토요일마다, 그러니까 학교에서 하루종일 보내고 온 날은 항상 집에 와서 타이레놀을 집어삼켰던 것 같다.


어제는 집에 와서 배달돈까스를 먹고 내가 만들어둔 브로콜리감자스프를 먹자마자 잠들었다.


오늘은 9시쯤 눈을 뜨자마자 남편과 강아지랑 커피를 사러 나갔다 왔고 오자마자 둘다 암묵적인 동의에 따라 분주하게 집을 치웠다.


전세집을 내놓은지 2-3주째였고, 어제 부동산에서 남편에게 연락을 한 모양이다. 집을 보러오겠다고.

어제는 하루종일 학교에 우리 모두 매여있었기에, 우리는 오늘부터 집을 보여줄 준비를 한다.


나는 나를 위해 고생한 남편에게 아침을 차려주었고 내 머리를 말리면서 목욕하고 나온 강아지 털도 말려준다. 액자에 쌓인 먼지를 떨어낸다. 화장대에 쌓인 먼지도 함께 떨어내버린다.


아직 우리가 어디로 이사를 하게 될지 나는 모른다.

그것도 나에겐 사라지지 않는 스트레스의 일종이다.

집이 없는 삶은 많이 고단하다.


정착하고 싶고 안락해지고 싶은, 욕심 많은 사람이 바로 나다.


글을 쓰고싶었던 나는 11시부터 방문을 닫고 이 글을 쓰는 중이다.

커피도 마셨고 아침도 든든히 먹었으며 오랜만에 먼지도 떨어냈고 스킨케어도 했다.

그런데 교수님 페이스북만 보면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아마도 편지에 썼던 것처럼 유일하게 인정받고 싶었던 사람에게 올 한 해 내가 인정을 못받은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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