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아 엎고 다시 쌓고

by Minnesota

내 20대는 '갈아 엎고 다시 쌓고'의 반복이었던 것 같다.


한국 나이로 나는 3개월 후면 30살이 된다.


집에서 혼자 조용히 노래를 들으면서 생각해보건데 내 20대 10년은, '갈아 엎고 다시 쌓고' 의 반복이다.


A라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취향을 알아 간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음식, 친구들, 그 사람의 가족, 그 사람이 꿈 꾸는 미래, 그 사람의 군대 이야기, 그 사람의 직업, 그 사람의 향기, 그 사람이 입는 옷.


사귀는 내내 그 모든 것에 대해 수용하고 종종 그 중에 몇 가지는 나와 일치한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나와는 다른 부분에 대해선 이질감을 느낀다.


그러다가 그 사람은 연기가 되서 사라진다. 나는 서서히 지워나간다. 그 사람의 향기, 그 사람이 좋아하던 음식, 그 사람의 가족,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했는지 등등 기억에서 지워낸다.


6개월이든 7개월이든 그 기간 동안의 모든 기억을 갈아 엎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선 소개팅이든 우연히든 B라는 남자를 만난다. 색다르다. 다른 향이 나고 다른 취향을 갖고 있으며 다른 가족사를 이야기하고 담배를 피거나 또는 안 피거나, 술을 마시거나 안 마시거나, 커피를 좋아하거나 안 좋아하거나.


다시 나는 받아들인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알아 간다. 다시 B라는 사람의 향에 익숙해지고 그 사람의 표현 방식을 좋아라하고 그 사람이 입는 옷에 익숙해진다.


시간이 흘러 B는 다시 과거가 된다. 나는 다시 갈아 엎는 작업을 한다. 이렇게 20대가 끝나간다.


비단 연인 관계뿐만이 아니다.


A라는 조직에 들어가서 최고의 일꾼이 되겠다 다짐한다.


싫더라도 웃어보려 노력하고 관심이 없더라도 관심 있는 척하며 이야길 듣는다. 조직에 융화되려 노력한다.


그러다가 어떠어떠한 일로 인해 그 조직을 나온다. 그 조직과 관련된 모든 사람의 연락처를 지우고 그리고 내 연락처도 바꾼다. 갈아 엎는 작업을 한다.


다시 시간이 흘러 B라는 조직에 들어간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이질감을 느낀다. 동화되려 노력한다.


이렇게 갈아 엎고 다시 쌓는 작업만 반복하다가 서른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나의 서른은 어떤 모습일까.


계속해서 이렇게 갈아 엎고 다시 쌓기만을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형태의 어떤 무언가가 새롭게 생겨날 것인가.


C라는 사람을 만나 더 이상은 지워내지 않아도 되고 정착하게 될까?


C라는 조직에 들어가서 더 이상은 내 연락처를 바꾸지 않아도 되고 다른 곳에 들어가기위해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괜찮게 될까?


이제 나는 C를 꿈꾼다.


더 이상의 리셋은 싫다. 더 이상의 갈아 엎고 다시 쌓는 작업은 할 힘이 없다.


C가 될 사람과 C가 될 조직을 만나는 것이 내 꿈이다.


비현실적인 꿈이라할지라도 꿔보고 싶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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