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한 시가 넘도록 잠을 못 잤다. 벽에 기대어 반쯤 누운 어설픈 자세로 핸드폰을 보다가 이젠 정말 자야겠다고 다시 누우려는 순간 오른쪽 허리 뒤쪽의 근육이 삐끗했다. 너무 아파 소리도 못 질렀다. 아픔도 아픔이지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꿈틀거리며 겨우 겨우 몸을 침대에 바로 눕히기까지 걸린 시간이 10만 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눕자마자 피로가 몰려오며 바로 잠이 들었다. 아침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알람을 끄려고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뻗으며 몸을 돌렸다가 다시 악 소리 지르며 무너졌다. 갑자기 삐끗하거나 다리에 쥐가 나거나 흔히 말하는 담이 걸린 경험은 그전에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허리라서 그런 것인지 내 몸이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누운 채로 고민했다. 누워서 안정을 취해야 하나 아니면 아프더라도 자꾸 근육을 써줘야 하나. 검색해보니 안정파와 사용파의 의견이 반반이다. 의사들의 의견만 골라 보았는데도 그렇다. 대체 누구 말을 들으라는 건지. 직장인이 갑자기 회사에 출근 못하게 되는 가장 흔한 이유가 급성 요추 염좌라는 내용도 나왔다. 난 학창 시절 내내 조퇴도 한번 안 한 개근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아무리 아파도 결근을 한 적이 없다. 이 정도로 결근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결근을 안 할 거라면 침대에 잠시 더 누워있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기에 안정파보다는 사용파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겨우 일어나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옷을 입었다. 다리를 올릴 수도 허리를 굽힐 수도 없으니 양말 신는 과정이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준비를 마치고 늘 하던 대로 회사 근처 헬스장으로 향했다. 근육의 안정 대신 사용을 선택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운동까지 하는 것은 과연 맞을까 역시 또 고민했다. 그래도 서있을 때는 통증이 덜하니 우선 걸었다. 걸으면서 통증이 점점 완화되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통증에 익숙해졌거나.
걷는 건 어찌어찌했지만 평소처럼 스트레칭 겸 요가 동작을 하는 건 포기해야 했다. 기본자세인 가부좌로 앉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래도 몸이 좀 풀린 것 같긴 했다. 집에서 나올 때 양말 신느라 쇼한 거 생각하면 운동 마친 뒤 샤워할 때는 힘들게라도 몸을 굽혀 다리와 발을 씻을 수 있었다. 출근해서 이야기하자 직원들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빨리 병원에 가란다. 가볍게 웃어주고 오전 업무를 마친 뒤 점심시간 되자마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워낙에 병원과 약국을 멀리하고 웬만하면 참아내는 성격이긴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난 참 무모하고 무식한 인간이다.
얼마 전부터 온라인에 일상의 기적이라는 글이 돌아다녀 읽어보니 참 좋은 글이었다. 오늘 아침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경험을 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글이기도 해서 다시 찾아보았는데 뜻밖에도 작가가 박완서, 또는 박경리로 소개된 글들이 많이 보였다. 두 분 모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들인데 이분들의 글인지 아닌지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돌아다니는 것에 당황했고 혹시 잘못 인용했다가는 나까지도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데 일조하게 될까 봐 이 글의 원래 작가가 누구인지 열심히 찾아보았다. 찾아보니 윤세영 작가가 2016년 3월 3일에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이었다. 정말 좋은 글이기에 여기 인용한다. 일상의 기적 - 윤세영 덜컥 탈이 났다. 유쾌하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귀가했는데 갑자기 허리가 뻐근했다. 자고 일어나면 낫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웬 걸, 아침에는 침대에서 일어나기조차 힘들었다. 그러자 하룻밤 사이에 사소한 일들이 굉장한 일로 바뀌어 버렸다. 세면대에서 허리를 굽혀 세수하기,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거나 양말을 신는 일, 기침을 하는 일,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 내게는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별수 없이 병원에 다녀와서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 비로소 몸의 소리가 들려왔다. 실은 그동안 목도 결리고, 손목도 아프고, 어깨도 힘들었노라, 눈도 피곤했노라, 몸 구석구석에서 불평을 해댔다.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던 나의 몸이 이렇게 기습적으로 반란을 일으킬 줄은 예상조차 못했던 터라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중이다. 이때 중국 속담이 떠올랐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 예전에 싱겁게 웃어넘겼던 그 말이 다시 생각난 건 반듯하고 짱짱하게 걷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괜한 말이 아니었다. ‘아프기 전과 후’가 이렇게 명확하게 갈라지는 게 몸의 신비가 아니고 무엇이랴. 얼마 전에는 젊은 날에 윗분으로 모셨던 분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몇 년에 걸쳐 점점 건강이 나빠져 이제 그분이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깜빡이는 정도에 불과했다. 예민한 감수성과 날카로운 직관력으로 명성을 날리던 분의 그런 모습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한 때의 빛나던 재능도 다 소용없구나,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돌아오면서 지금 저분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혼자서 일어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고, 그런 아주 사소한 일이 아닐까? 다만 그런 소소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는 대개는 너무 늦은 다음이라는 점이 안타깝다. 우리는 하늘을 날고,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이루고 싶어 안달하며 무리를 한다. 땅 위를 걷는 것쯤은 당연한 일인 줄 알고 말이다. 사나흘 노인네처럼 파스도 붙여 보고 물리치료도 받아 보니 알겠다.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크게 걱정하지 말라는 의사의 진단이지만 아침에 벌떡 일어나는 일이 감사한 일임을 이번에 또 배웠다. 건강하면 다 가진 것이다.
참 감사한 일이 많은 삶이다. 매일매일 땅을 걷는 기적을 살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긍사행감 (긍정, 사랑, 행복,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