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폴로하스 Polohath Dec 18. 2020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

카카오 스토리보다는 인스타그램이 대세가 된 지 오래지만 나는 아이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카카오 스토리에 꾸준히 일상을 올리고 있다. 게을러질 때도 있고 딱히 올릴만한 사진이나 내용이 없더라도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올리려고 하는 편이다. 미국에 계신 나의 엄마, 아빠께서 매주 손자들의 일상을 기대하고 기다리시기 때문이다.


카카오 스토리는 지나간 해의 같은 날짜에 내가 올렸던 게시글을 띄워서 과거의 오늘 무슨 일을 했는지도 다시 보여주는데 그것도 참 고마운 서비스다. 어제도 카카오 스토리에 6년 전 이맘때쯤 올렸던 게시글이 떠 있었다.  그때 썼던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서 여기에 옮겨본다.






새벽 5시.

둘째가 깨서 뒤척뒤척 끙끙댄다.

토닥토닥, 안았다가 눕혔다가

겨우 재우니 벌써 6시,

첫째가 깨서 쳐들어온다.

책을 한 무더기 들고 와 침대에 뿌리며

우렁차게 엄마! 택포 차!!!  (책 보자!)

둘째 도로 깼다... ㅠㅠ


아침밥 먹이는 전쟁 시작.

첫째가 우유를 컵에 달란다.

컵에 주고 둘째 이유식 준비하다 뒤돌아보니

부엌 바닥에 우유를 뿌려놨다.

둘째는 배고프다고 울기 시작.

우유는 대충 치우지도 못하고

둘째 입에 이유식 투척.


이유식 다 먹고 나니 빨리 분유 달라고 운다.

두 놈 다 먹성 좋은 건 감사하지만

조금만 늦게 줘도 난리가 난다.

급하게 분유 타서 흔들다가 삐끗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유 뒤집어썼다.

행주로 대충 얼굴만 닦고 다시 분유 타기.

첫째가 밥 말고 포도 달란다, 과자 달란다.

다 먹어야 준다니까 아냐 아냐 포도 포도.

Time out 해서 혼나야 한다.


분유 먹던 둘째 잠시 내려놓고

첫째는 벽 앞에 서있으라며 혼낸다.

둘째는 다시 분유 내놓으라고 아우성.

첫째 혼나고 둘째는 나머지 분유 흡입.

첫째가 외친다. "쌌어!!!"

매일 같은 시각에 규칙적으로 응가해주시니

이렇게 감사할 수가.

기저귀 갈자니까 도망 다닌다.

겨우 붙잡아서 씨름 한판승으로 패대기쳐 눕힌 뒤

기저귀 간다.


이른 아침부터 땀나길래  손등으로 닦았더니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건 아까 뒤집어쓴 분유다.

볼에는 마른 분유 가루가 덕지덕지.

큰애 어린이집 갈 시간.

퍼즐 하느라 정신없다.

힙시트 메고 둘째 안은 채로 겨우 첫째 신발 신긴다.

한쪽은 샌들, 한쪽은 운동화 신겠단다.

확! 열이 오르지만 첫째 임신했을 때

스스로와 한 약속이 있다.

"훈육은 엄하게 하되,

내 몸 힘들다고 아이에게 짜증 내지는 않는다."

이건 아이와의 싸움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최대한 상냥하게 달래며 신발 신긴다.

첫째 내려주고 집에 오자마자

둘째 재우기 돌입... 다행히 쉽게 잠들었다.


이제부터 업무 시작.

메일함 열어보니 허걱, 밤새 50통 왔다.

미친 듯이 업무 돌입.

한 시간 30분 경과, 둘째 깨서 운다.

다시 분유 먹인다.

이런,  대만팀과 전화 미팅 시간이다.

둘째 칭얼대는 소리 들릴까 봐 등에 업고

한 손에는 전화기 들고

거실 왔다 갔다 하며 통화한다.

미팅 마치자 대만팀에서

우르르 메일 보내기 시작한다.

둘째 업고 빛의 속도로 메일 답장.

오후에 일본팀과 전화 미팅 시간은

다행히 둘째 오후 낮잠 시간과 맞아떨어졌다.

나도 출퇴근하며 일하고 싶다.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하려니

이도 저도 안되고 머리만 복잡하다.


첫째 어린이집 마치는 시간이다.

다시 둘째 둘러업고 어린이집 가서 데려온다.

집에 오자마자 씻기고 온몸 바쳐 놀아준다.

하루에 겨우 몇 시간 엄마 얼굴 보는데

열심히 놀아줘야지.

오후 5시 넘어가면 둘째 짜증 폭발 시간이다.

무조건 안고 있으란다. 내려놓으면 운다.

둘째를 안고 있으니 첫째가 자기도 안으란다.

양 무릎에 하나씩 안고 무릎 흔들어 준다.

둘이 합해 22킬로다.

이럴 때마다 코코몽 틀어주고 싶은

유혹에 흔들리지만 안된다.

내가 안 보여줘도 할머니 댁에서 어린이집에서

자꾸 보게 되는데 나까지 보여줄 수는 없다.


첫째랑 욕조에 들어가 열심히 물놀이 겸 목욕하고

7시 30분부터 소등.

첫째 방에 누워 책 읽어주기 시작.

목표는 8시에 잠들기지만

대부분 8시 30분이나 돼야 잔다.

노래해라 뭐해라 가지가지 주문도 많다.

첫째 재우면서 나도 잠들었나 보다.

신랑 들어오는 소리에 눈떠보니

벌써 10시가 다 돼간다.


허걱! 미국 본사랑 퍼런스 콜 있는데

극적으로 깼구나!

우리 시간 밤 10시, 미국 동부 시간 아침 9시.

지금부터 출근하는 미국팀과 일해야 한다.

밤 12시.

얼추 미국하고 통화도 하고 급한 메일 다 보냈다.

이제 잠 좀 자자!!!


둘째가 칭얼대는 소리에 눈뜨니

새벽 5시.

또 하루가 시작됐다.

요놈들 때문에 내가

정신이 나가버린 게 분명하다.

이 와중에 셋째 갖고 싶은걸 보면.






불가사의다.

내가 생각해도 불가사의다.

아이들을 어지간히도 싫어했고 통제가 안 되는 아이들을 보면 분노했으며 한때는 독신주의자, 결혼하고 나서도 한동안은 딩크를 주장했던 나였다.


두 아들이 나를 바꾸고 내 삶도 바꿨다.

작년 가을에 네 식구가 자동차를 타고 이천, 속초를 거쳐 경주까지 5박 6일의 여행을 다녀왔다.

경주 토함산에서 석굴암을 본 뒤 입구까지 산길을 걸어오다가 불현듯 아무 이유 없이 큰 애를 업어주었다. 이게 웬 횡재냐 싶어 아이가 활짝 웃었다.

반에서 키가 가장 작은 편에 들긴 하지만 먹성 좋은 초등 2학년 아들을 등에 없으니 힘이 들었다. 그러나 행복했고 행복하면서 아쉬웠다.


지금도 이렇게 힘이 들다니 조금만 지나면 업어줄 수도 없겠구나. 키울 땐 너무 힘들어 이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빌었건만 그 시간들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고 조금이라도 가벼웠을 때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더 많이 업어줄 걸 후회만 남았다.





작년 1월 1일에 아들들에게 지장까지 찍어가며 각서를 받아두었건만 아직 올해가 다 가지도 않았는데 첫째는 벌써부터 저 각서가 어색하고 뻘쭘하다. 그래서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만, 아주 기분이 좋을 때만, 선심 쓰듯 우주 최강 미녀라고 시크하게 던져준다.


그렇게 큰다.

더 많이 사랑할걸.

더 많이 참고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걸.


이렇게 말해놓고도 내일 또 뭔가 일이 있을 때 아들들이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매달리면 안 돼, 싫어, 바빠, 하고 매몰차게 거절하겠지. 엄마라는 위대한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나이기에.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성숙하게 한다. 두 아들의 영어 이름을 지을 때 몇 날 밤을 새워 Matthew와 Nathaniel을 고른 것도 그런 이유다.

두 이름의 어원은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과분한 선물.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완벽한 선물.

아들들아,

고맙고 사랑한다.

작가의 이전글 요리와 정리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