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다툼은 신혼 때와 두 아이의 출산 직후에 차례로 정점을 찍었고 지금은 서로 기분이 나쁘더라도 톡으로 표현한 뒤 한동한 냉전기를 갖는 형식으로 변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들들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말자는 암묵적인 합의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그렇게 싸울 에너지와 정열이 식었을 뿐 아니라 싸움으로 얻어지는 긍정적인 변화가 거의 없다는 자각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어쩌면 약간 슬픈 것인지 모르겠다. 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졌다는 말이기도 하고 서로를 포기해 간다는 말이기도 하고 그저 나이가 들어 무신경해졌다는 뜻이기도 할테니 말이다. 그런 걸 보면 부부란 참 특이한 관계다. 사랑해서 만났지만 서로 가장 큰 상처를 주기도 하고 미울 땐 당장이라도 갈라서고 싶지만 막상 헤어진다고 생각하면 하늘이 무너지듯 막막한 사이. 집에 안 들어오면 화가 나지만 집에 계속 같이 있으면 지겨운 사이. 이런 사이가 부부말고 또 있을까.
시아버지께서 지병이 있으신데 시어머니께서는 종종 악담을 하신다. 귀찮다, 여러 사람 고생시키지 말고 빨리 가라, 나도 이제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러나 시아버지의 건강에 가장 신경쓰는 사람도 다름 아닌 시어머니시다. 몸에 좋다는 것을 구해 상을 차리고 잡수시고 싶다는 별식을 만드신다. 말과 행동, 이성과 감정이 전혀 맞지 않는 이런 관계는 아마 우리 집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오히려 이런 집이 더 흔한 것 같다. 그런게 부부인가보다.
결혼 기념일에 다퉜다. 정말 속상한 일이다. 싸움의 시작은 말의 내용보다 말투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이번에도 좀 어이없게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그것도 오늘 저녁 결혼기념일 외식은 어디서 할까 톡으로 상의하다 말고 갑자기.
우선은 둘만 외식할 기분이 아니었던 나의 책임이 크다 하겠다. 그러나 내 기분이 그렇게 된 건 남편 때문이었다. 남편이 내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나 때문이었고 나는 이미 그보다 더 전의 남편 행동 때문에 화가 나있는 상태였으니 원인을 규정하자면 끝이 없다. 결국 둘만의 외식은 취소하고 아들들까지 네 식구가 테이크아웃한 피자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잔 나는 아들들을 재우면서 그대로 잠이 들어 아침까지 내처 잤고 남편은 혼자 작은 방에서 넷플릭스를 보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언제나 우리집에서 가장 먼저 출근하는 나는 아직 자고 있는 식구들이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옷을 입고 커피를 내린다. 여느때와 다를바 없는 아침 시간인데 식탁 위에 뭔가 다른 것이 보인다. 남편이 나에게 주는 결혼 기념일 선물이다.
회사에 도착한 뒤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톡으로 얘기를 나눈다. 오늘은 누가 아들들을 픽업할 것인지, 저녁 메뉴는 뭐가 좋을지, 주말에는 아들들과 뭘하며 놀아줄지.
연애할 때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아름답고 환상적일 것이라 굳게 믿었던 우리도 역시, 여느 부부들처럼, 윗세대 어른신들처럼, 그 길을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