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호리한 큰 키 중저음의 거칠고 우렁찬 목소리, 사람을 압도하는 강한 눈빛, 몸에 잔뜩 힘을 주고 있어서 큰 키가 거만해 보였다.
자신감 넘치는 인상과 말투 자칫 건방지고 허세 가득해 보일 수 있지만 호기로운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뚝심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팀장은 내 업무에 관심이 많았고 자연스레 대화가 많아졌다. 무심코 톡 쏘는 말이 거슬리긴, 했지만 성격의 일부분이라 생각했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사건은 사소하게 시작되었다. 팀 내 잘 섞이지 못한 B 여직원, 팀장과 같은 날 우리 팀에 왔다.
유독 팀장과 대화가 잘 통하는 A 여직원과 B 여직원 사이에 살짝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점점 그 강도는 심해졌고 어느 날 두 사람은 감정을 숨기지 않고 포효했다.
결과적으로 B 여직원은 팀장에게 혼이 났고, 자연스럽게 팀에서 미운 오리 새끼가 되었다.
점심도 회식도 A 여직원 위주로 돌아갔고, B 여직원은 팀에서 관심 제외 대상이 되었다.
팀 회식 장소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등을 돌리고 있는 B 여직원에게 뭘 좋아하냐, 어디 가고 싶냐, 언제 가능하냐는 질문을 던졌지만, B 여직원은 자기는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하고 다시 등을 돌렸다.
여전히 신나게 회식 장소를 이야기하는 팀원들 행동에 이질감을 느꼈다.
그날 이후 B 여직원과 점심을 함께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힘든 시간을 긴 침묵으로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잘하는 팀원도 소통이 수월한 팀원도 아니었지만, 성격이 모난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팀 내 왕따가 되었다. ㅋㅋ (사실 내가 왕따가 되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팀장의 태도가 달라졌고, 뚝심 있게 보였던 첫인상은 허세로 똘똘 뭉친 외곬수로 느껴졌다.
팀장과 상관없이 나는 야근을 하며 신규 프로젝트에 매진하고 있었다.
하반기 평가 면담.
"실적 PPT로 작성해서 가져오세요" (무슨 평가 면담을 PPT로 작성하라는 거야 ㅜㅜ)
불합리했지만 따르기로 했고 면담이 진행됐다. (좋은 소리 못 들을 거란 직감은 백 프로 적중이다)
"워킹맘은 업무시간에 120% 이상의 집중력을 끌어내야 정시 퇴근이 가능한 거 아시죠"
"본인은 업무를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세요" (하고 싶은 말이 뭘까)
"처음에 참 괜찮은 친구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실망스러웠어요"
"나는 파란색을 원해요, 우리 팀은 다 파란색인데 왜 자꾸 다른 색깔로 가는지 잘 모르겠네"
(참, 어이가 없네 뭔 개똥 같은 소리를 저렇게 자연스럽게 한담)
"그래서 지금 저보고 파란색이 되라는 말씀이세요, 그게 지금 팀장님이 팀원한테 하실 말씀이세요"
(좀 과했나, 에라 모르겠다. 나도 참을 만큼 참았다. 오늘 왠지 기분이 좋지 않다)
"팀장이 원하면 파란색이 되어야 하는 게 팀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
(뭐냐, 대화가 안 되네)
"아니 어떻게 팀원이 다 파란색이 될 수 있습니까?"
"회색도 파란색도 검은색도 있을 수 있죠"
"나는 파란색이었으면 좋겠어, 그러니 A 여직원과 같이 파란색이 될 순 없어?"
"저는 싫습니다. 팀장님 제가 한 말씀 드릴게요. 팀장은 팀원과 팀을 잘 이끌기 위해 있는 거지 서로 색깔 맞추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나랑 맞는 색깔은 내 새끼고 나랑 다른 색깔은 배척한다면 팀장의 자격이 있을까요" (나는 그날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쏟아내고 말았다)
인사이동 시즌도 아니었지만, 팀장은 나에게 타 팀 이동을 권했고,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뭐 이리 똥배짱이냐고,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가 끝나지 않았고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았기에 당당하게 거부했지만, 11월 중순 회계팀으로 쫓겨났다)
그렇게 회계팀 이동 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세무 업무 담당자가 되었고, 숫자와 질긴 인연을 시작했다.
앙숙인지 인연인지 "파란색" 팀장은 몇 해 전 회계팀 팀장이 되어 다시 만났고, 원색은 아니었지만 하나 된 팀으로 똘똘 뭉쳐있는 팀 분위기에 다소 위축되는 듯했다.
앙숙,"파란색" 팀장 부임 며칠 후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게 되었고, 또 한 번의 사건 발생.
"세무조사 관련해서 C 팀원과 D 팀원 세무조사 대응 및 배석, 나머지는 조사자료 취합과 오전, 오후 청소 및 기타 업무 진행하는 것으로 조 한번 짜봐"
(이건 통보 다른 팀원은 들러리로 보이지 않는 손 노릇을 해야 한다)
"아니, 제가 지금 몇 년 찬데 신입이 배석이란 요, 저도 조사 분위기나 대응 방법 직접 경험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