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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Jan 02. 2024

색깔이 뭣이 중한디! 그냥 인정하면 되는 것을~

앙숙과 인연은 한 끗 차이

2014년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신입 팀장이 팀에 합류했다.

호리호리한 큰 키 중저음의 거칠고 우렁찬 목소리, 사람을 압도하는 강한 눈빛, 몸에 잔뜩 힘을 주고 있어서 큰 키가 거만해 보였다.


자신감 넘치는 인상과 말투 자칫 건방지고 허세 가득해 보일 수 있지만 호기로운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뚝심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팀장은 내 업무에 관심이 많았고 자연스레 대화가 많아졌다. 무심코 톡 쏘는 말이 거슬리긴, 했지만 성격의 일부분이라 생각했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사건은 사소하게 시작되었다. 팀 내 잘 섞이지 못한 B 여직원, 팀장과 같은 날 우리 팀에 왔다.

유독 팀장과 대화가 잘 통하는 A 여직원과 B 여직원 사이에 살짝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점점 그 강도는 심해졌고 어느 날 두 사람은 감정을 숨기지 않고 포효했다.

결과적으로 B 여직원은 팀장에게 혼이 났고, 자연스럽게 팀에서 미운 오리 새끼가 되었다.

점심도 회식도 A 여직원 위주로 돌아갔고, B 여직원은 팀에서 관심 제외 대상이 되었다.


팀 회식 장소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등을 돌리고 있는 B 여직원에게 뭘 좋아하냐, 어디 가고 싶냐, 언제 가능하냐는 질문을 던졌지만, B 여직원은 자기는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하고 다시 등을 돌렸다.

여전히 신나게 회식 장소를 이야기하는 팀원들 행동에 이질감을 느꼈다.


그날 이후 B 여직원과 점심을 함께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힘든 시간을 긴 침묵으로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잘하는 팀원도 소통이 수월한 팀원도 아니었지만, 성격이 모난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팀 내 왕따가 되었다. ㅋㅋ (사실 내가 왕따가 되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팀장의 태도가 달라졌고, 뚝심 있게 보였던 첫인상은 허세로 똘똘 뭉친 외곬수로 느껴졌다.




팀장과 상관없이 나는 야근을 하며 신규 프로젝트에 매진하고 있었다.

하반기 평가 면담.

"실적 PPT로 작성해서 가져오세요" (무슨 평가 면담을 PPT로 작성하라는 거야 ㅜㅜ)

불합리했지만 따르기로 했고 면담이 진행됐다. (좋은 소리 못 들을 거란 직감은 백 프로 적중이다)


"워킹맘은 업무시간에 120% 이상의 집중력을 끌어내야 정시 퇴근이 가능한 거 아시죠"

"본인은 업무를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세요" (하고 싶은 말이 뭘까)


"처음에 참 괜찮은 친구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실망스러웠어요"

"나는 파란색을 원해요, 우리 팀은 다 파란색인데 왜 자꾸 다른 색깔로 가는지 잘 모르겠네"

(참, 어이가 없네 뭔 개똥 같은 소리를 저렇게 자연스럽게 한담)


"그래서 지금 저보고 파란색이 되라는 말씀이세요, 그게 지금 팀장님이 팀원한테 하실 말씀이세요"

(좀 과했나, 에라 모르겠다. 나도 참을 만큼 참았다. 오늘 왠지 기분이 좋지 않다)


"팀장이 원하면 파란색이 되어야 하는 게 팀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

(뭐냐, 대화가 안 되네)


"아니 어떻게 팀원이 다 파란색이 될 수 있습니까?"

"회색도 파란색도 검은색도 있을 수 있죠"

"나는 파란색이었으면 좋겠어, 그러니 A 여직원과 같이 파란색이 될 순 없어?"

"저는 싫습니다. 팀장님 제가 한 말씀 드릴게요. 팀장은 팀원과 팀을 잘 이끌기 위해 있는 거지 서로 색깔 맞추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나랑 맞는 색깔은 내 새끼고 나랑 다른 색깔은 배척한다면 팀장의 자격이 있을까요" (나는 그날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쏟아내고 말았다)





인사이동 시즌도 아니었지만, 팀장은 나에게 타 팀 이동을 권했고,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뭐 이리 똥배짱이냐고,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가 끝나지 않았고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았기에 당당하게 거부했지만, 11월 중순 회계팀으로 쫓겨났다)


그렇게 회계팀 이동 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세무 업무 담당자가 되었고, 숫자와 질긴 인연을 시작했다.


앙숙인지 인연인지 "파란색" 팀장은 몇 해 전 회계팀 팀장이 되어 다시 만났고, 원색은 아니었지만 하나 된 팀으로 똘똘 뭉쳐있는 팀 분위기에 다소 위축되는 듯했다.


앙숙, "파란색" 팀장 부임 며칠 후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게 되었고, 또 한 번의 사건 발생.

"세무조사 관련해서 C 팀원과 D 팀원 세무조사 대응 및 배석, 나머지는 조사자료 취합과 오전, 오후 청소 및 기타 업무 진행하는 것으로 조 한번 짜봐"

(이건 통보 다른 팀원은 들러리로 보이지 않는 손 노릇을 해야 한다)


"아니, 제가 지금 몇 년 찬데 신입이 배석이란 요, 저도 조사 분위기나 대응 방법 직접 경험하고 싶습니다"

"세무조사 대응을 글로만 하면 뭐 합니까?"  (팀원들의 반발은 예상외로 거셌고, 팀장은 확고했다)


"팀장님, 조사실 배석은 일주일 단위로 하시죠, 조사관들 요청자료나 질의에 따른 사서도 필요합니다"

(국세청 세무조사 두 번의 경험치가 있는 나의 말을 팀장은 딱히 무시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렇게 삼 개월 동안 팀원들은 일주일 단위로 세무조사 대응에 배석했고, 모든 분위기와 상황, 조사 내용을 공유하면서 힘든 그 시간을 즐겁고 퍼펙트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번에 고생 진짜 많았고, 리더십 참 좋았어" (세무조사 후 팀장이 했던 말)




인연, 팀장은 세무조사 후 타 팀으로 발령이 났다.

사실 "파란색" 팀장은 회계팀 부임 후 나에게 사과했었다.

"내가 그때는 너무 젊은 혈기로 잘못한 게 많았어, 다 잊고 다시 시작하자"

"맘에 두지 마세요, 저도 잘한 게 없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신입 팀장한테 너무 가혹한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었던 나 자신 많이 잘못했다)


"파란색 팀장"

'23년 10월 

"우리 팀에 와서 일할 생각 없어, 같이 했으면 좋겠는데"

"제가요, 왜요, 집에서 너무 멀어요" "전 그냥 여기 있을게요"


'23년 12월 5일 

"이번에 큰 프로젝트 시작하는 거 알지 맡아서 해보는 거 어때"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힘들 것 같습니다" "가산동까지 출퇴근 힘들어요"


'23년 12월 13일 

"가산동 사무실 내년에 이쪽으로 이전한 데, 그럼 같이 일할 수 있잖아"

"잘 생각해 봐, 기회가 너무 좋아, 내년 2월쯤 사무실 이전 계획으로 알고 있어"


'23년 12월 15일 

"저 가산동으로 갈게요, 아이들 방학이라 가능할 것 같습니다"


'23년 12월 27일 인사이동

 '나는 가산동 발령, 남편은 대전 발령' (우리 잘할 수 있겠지!)



돌고 돌아 "파란색" 팀장님은 앙숙에서 인연이 되어 돌아왔다.

나도 파란색 팀장님도 그때는 몰랐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될 거라는 걸

미처 알지 못한 인연은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를 일이다.


'24년 새로운 시작 "파란색" 팀장님과 잘 버무려 보련다.

굳이 색깔을 말하자면 나는 "노란색"~~ 을 좋아하고 노란색처럼 상큼하게, 환하게 '24년을 시작하고 싶다.




한 줄 요약 : 색깔이 뭣이 중한데! 그냥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인정하면 보이는 것들에 집중하자.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화요갑분#색깔#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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