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던져진 팀 업무일지 자꾸 내 이름이 나를 부른다. 분명 맑은 고딕 11포인트인데 내 이름만 볼록렌즈처럼 불쑥 올라와 이리저리 춤을 추며 나를 약 올리듯 삐죽삐죽 웃는다.
이게 현실인가~ 사실인가~ "어, 확인하고 있었어. 놀랐지 일이 좀 많다 그렇지!"
씩 웃으며 나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앗, 뒤통수라도 한 대 쳐야 하나. 아닐 거야 뭔가 잘못 됐어.
"그런 표정 하지 마, 어쩌지' 우물쭈물 말을 씹어 삼키는 팀장님~ 난처한 그분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줬다.
저번 주 금요일 부문 업무 회의가 있었고, 하필 나는 휴가였다. 뭐 어쨌든 사람이 없다고 이름을 막막 쓰고 막막 던져주고 막막 부려 먹고 그런 건 아니었겠지만. 너무하네. 너무해 ㅠㅠ
그렇게 시작한 월요일 아침 다 내려놓는다. 생각을 비우고 일단 밀린 업무부터 쳐내기.
'아니 허 참 뭐지, 하하' 자꾸 마음에 소리가 입 밖으로 주르륵 흘러내린다.
'괜찮아, 하면 되지 근데 할 수 있나?' '해야지 일인데'
그렇게 온종일 내적 자아와 혼신의 힘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여기저기 퇴근 분위기다.
'뭐야 벌써 퇴근 시간이야, 오늘 뭐 한 거야'
일단 퇴근해야겠다. 컴퓨터를 끄려는데 익살스러운 후배가 다가와서 '어 가시는 거예요. 퇴근할 수 있어요?'
'약 올리는 거냐, 가련다. 될 때로 대라'
내 말에 후배는 빵 터져서는 근데 선배가 그걸 다해요? 회의 때 너무 놀랐잖아요. 계속 선배 이름만 불러서.
하하, 하하, 내가 스스로 왔잖아. 하하, '될 때로 대라, 난 모르겠다.' 일단 오늘은 퇴근이다.
메신저가 노란색으로 반짝 거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나 노란색 좋아하는데 ㅜㅜ)
잠시 들어오세요~ 하하 내가 스스로 왔다. 내가 스스로 왔어.
버스만 타면 찾아오던 꿀잠이 오늘은 도통 오질 않는다. 생각만 꼬리 잡기를 이어간다.
아침부터 나에게 불어오던 비비람에 못 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단지 시간이 될까? 여력이 될까? 시간에 대한 고민만 했었다.
어느덧 나는,
그동안 맞지 않은 옷에 어떻게든 나를 맞춰보려 노력하면서 느꼈던 자괴감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못하면, 실수하면, 늦어지면, 잘못하면, 진짜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웃으며 퇴근할 수 있었다.
예전에 나였다면 지금도 책상 앞에 앉아 일을 마무리하고 있을 텐데, 오늘은 분주한 하루를 뒤로 하고 우리 집 소파에 앉아 한참 멍을 때렸다. 드넓은 은하계에 혼자 정처 없이 둥둥 떠다니듯 가벼운 머리와 빈 가슴으로 내 안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멍~ 말 그대로 멍만 때렸다. 그러다 보니 생각도 비워지고 기분도 좋아지고 오싹했던 하루가 먼지처럼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의 하루에 내 시간은 보장하리라, 일은 일로만 (어느 작가님의 표현을 인용)
이제 나의 업무가 무섭지 않다. 뭔들, 괜찮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그걸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