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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Feb 13. 2024

막 쓰고, 꺙 쓰는 나의 하루

써야만 하는 하루

무작정 수영장으로 향했다. 눈을 뜨고 의식이 나를 삼키기 전에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캄캄한 하늘에 손톱보다 얇은 달이 발아래 나를 째려보듯 내려다본다.

'왜, 뭐 좀 늦었어, 그래, 살짝 고민했어! 그냥 잘까! 근데, 뭐 내 맘이잖아.

매일 새벽하늘에서 너부터 찾는데 오늘은 왜 째려보는데!


나를 째려보는 손톱보다 얇은 달을 나도 한번 쬐려 보고 새벽 친구가 비춰주는 길을 의식 없이 걷는다.

(無) 아무 생각 없이 머리도 텅, 마음도 텅 비운 상태로 걷다가 도착한 수영장.


늦었다. 그래도 몇 바퀴만 돌고 나오자,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짧은 시간 짧게 허우적거리고 남들보다 일찍 나왔다. 아뿔싸! 화장품도 안 챙겨 왔네. 썡얼로 출근 해야 하는 불상사, 휴 나는 괜찮은데 아침부터 나의 쌩얼을 마주해야 할 사람들이 조금 걱정이 된다.


다른 날보다 여유 있게 700번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 후 내려서 버스를 갈아탔다. 거기서부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마나 깊은 잠을 잤는지 중간중간 정거장을 확인하기 위해 눈을 떴을 버스에서 세상 깊은 꿀잠을 잤다. 어제 폭신한 침대에서는 잠이 오질 않더니 흔들리는 버스가 침대보다 낫다.


11층까지 계단을 오르며 듣는 노래 한 곡 중요한 선택의 순간, 하루 종일 흥얼거리고 중얼거리는 노래 가사가 되니 신중하게 선곡해야 하지만 뻐근한 몸은 이미 계단을 오르고 노래는 자동 재생. 노래는 아무거나 그냥 좋다. 출근 계단 오르기 너무 싫지만 나와 내가 약속했으니 지켜본다.     


사무실은 아직 하루를 맞이하지 않았다. 아침 8시 직원들 출근 전 달콤한 10분의 호사를 누려본다. 호사를 누리기에 짧은 시간을 알차게 써먹고 업무 모드 전환 이런 하루가 갔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퇴근도 못하고 있는데 어디로 떠나란 말인가.


반짝거리는 핸도폰 (내 핸드폰은 무음 상태) 아들에게서 걸려 온 전화

'아들 엄마 퇴근이 늦을 것 같아' '저녁은 아침에 먹은 어묵탕이 남았다고 하니 김이랑 챙겨 먹고 있어'


아이들의 볼멘소리를 기대했지만, 엄마 많이 늦어도 돼, '헉'이건 또 무슨 소리. 실컷 게임과 유튜브를 보고 싶으니 제발 늦게 와 주세요. 뭐 이런 속뜻이 내포된 것 같은데 그냥 알았다고 하고 통화는 끝.


마음은 바쁜데 그러지 못한 업무 스킬 떨어지는 손의 감각에서 나타나는 오타 유발,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 점점 보고서는 목적지가 불분명한 지도를 요리조리 그리며 방향을 잃어간다.


이렇게 작업하면 빨리는 고사하고 마무리도 못 하고 야근만 해야 하는 상황 좋아! 결정했다.

내일의 나에게 미루는 것으로 오늘 나는 내 몫을 다 했으니 여기서 덮자! 붙들고 있어도 뾰족한 수는 없다.


그만 퇴근해! 내가 정리가 너무 늦었다. 내일 오전에 정리해서 보는 것으로 하고 마무리합시다. 그렇게 나머지 팀원들을 보내고 모니터를 보는데, 새벽에 봤던 달이 생각났다.

지금 퇴근하면 달을 볼 수 있겠다. 


여전히 그달은 빼꼼하게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야근 안 하기로 했잖아'

'그래, 그래, 야근 안 하기로 했지!' '어쩔 수 없다고 하면 그게 또 습관이 되니까'

'내가 잘못했네, 얼른 가서 아이들 챙겨야 하니까 잔소리 그만'


 1호선에서 2호선으로 전철을 갈아타고 마지막에 버스를 타고 도착한 집 이상하게 퇴근 시간에 버스를 타면 속도 울렁거리고 가슴이 답답해서 금방이라고 아저씨 저 내려주세요라고 소리 지를 것 같아서 퇴근은 여러 번 갈아타더라도 전철을 이용한다.


아이들 좋아하는 피자빵을 사서 길을 걷는데 달이 또 나와 함께 걷는다. 여전히 나를 비춰주며 여전히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다. '찰칵' 핸드폰에 달의 얼굴을 남겨둔다. 새벽 얼굴, 저녁 얼굴


아이들도 치열한 하루를 보냈는지 집안 여기저기 호탕하게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

툭툭 발길질로 눈에 안 보이게 대충 치우고 내일 아침밥과 청국장을 끓였다. 우리 별님이 좋아하는 어묵볶음은 망했다. 짜도 너무 짜다 간장을 생각 없이 훅 부어 버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생 불가 음식이 되어버렸다.


하루 종일 혼자 집에 있었던 아들 볼때기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방에 들어가겠다고 하니 깜빡이 없이 '사랑해'를 날린다. "엄마 사랑해요, 글 쓰고 나오세요."


미안한 마음에 너를 품에 안고 뒹굴고 싶지만 조금만 참아다오! 엄마의 힐링 티임을 즐기고 오마!

그러나, 노트북 흰 바탕만 덩그러니 손도 머리도 마음도 전혀 반응이 없다.

멍하니 앉아서 초점 잃은 눈으로 노트북만 들여다보고 있다. 책상 옆에 놓인 화려한 주황색 표지가 눈길을

끈다. 책을 읽으며 밑줄 친 부분들만 찾아 훑어본다.


117P <김호연의 작업실>

글 쓰는 일을 받아들여 습관으로 만들고 그 습관이 강박관념이 되기 전에는, 그 사람은 작가가 아니다. 글 쓰는 일은 강박관념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말하고 잠자고 먹는 일처럼 본질적이고 생리적이며 심리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니위 오순다레  


문득 정신을 차리고 글을 쓰려했지만, 여전히 머릿속은 정지 상태였다. 막 쓰고, 꺙스자고 덤비니 오늘 하루가

다가왔다. 강박은 아니지만 느낌을 잊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하루를 줄줄 흘려보낸다.



한 줄 요약 : 달과 함께한 하루 매일 너의 얼굴을 담고 싶고 닮고 싶다.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하루#달#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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