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스락 Feb 20. 2024

좌절 금지 에코백은 상콤 발랄 희.

라라크루 화요갑분 (가방 종류 몽땅)

언니, 이거 어때 이거 언니 가져~~


어느 날 우연히 후배가 에코백을 선물해 줬다.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오는 길에 주었어! 느낌으로 나에게 '툭' 다가와 내 것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나에게 에코백은 유일무이 좌절 금지 에코백 하나다. 집 앞 슈퍼 갈 때, 새벽 수영 갈 때, 가벼운 외출에도 내 어깨에 착 달라붙어 동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언니, 이 그림이 좌절 금지야, 우리 좌절하지 말자!!

의아해하는 나를 보고 씽긋 웃으며 가방의 의미를 전해 준 후배. 상콤 발랄 희 라고 불렀던 후배다.

그녀의 24시간은 다른 이의 48시간 같았다. 1분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는 후배는 몇 해 전 회사를 그만뒀지만, 여전히 하루를 48시간처럼 살아가고 있다.


스웨터가 어울렸고, 똥머리 (긴 머리를 상투처럼 위로 묶은 머리)가 유난히 어울렸던 후배, 신혼여행을 며칠 앞두고 야근하는 나에게 잔소리를 퍼붓던 후배는 신혼여행 가방을 싸주는가 하면 여행지 일정까지 꼼꼼히 체크해서 알려주었다.


회사 큰 행사를 혼자 준비하는 후배를 도와주고 싶어 직원들 이름표를 잘라 케이스에 넣다가 호되게 혼난 적이 있다. 케이스에 딱 맞게 반듯하게 이름표를 자른다고 잘랐는데 후배 눈에는 반듯하지 않았는지, 언니, 여기 케이스 빈틈 보이잖아, 안돼, 다시 해야 해, '윽' 늦은 밤이 찾아왔지만, 후배는 뭐든 만족할 때까지 하고야 마는 못된 강박증으로 스스로를 못살게 굴었다. 


그런 후배에게 '내가 선배라서 다행이다'라는 말을 여러 번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럴 때마다 후배는 투덜거리며 귀여운 표정을 짓곤 했었다.


어렸지만 야무지고 단단했던 후배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극 J에 가까웠고 나는 아마도 극 P에 가까웠던 것 같다. 투닥거리며 한결같이 위로와 행복을 공유했던 우리는 지기가 되었다.





다시 신혼여행 하루 전날로 돌아가서,

여행 가방을 못 쌌다는 내 말에 한숨을 내쉰 후배는 퇴근을 우리 집으로 했고 옷장에서 요일별 입어야 할 옷들을 차곡차곡 여행 가방에 넣더니 사진을 찍었다. 혹시라도 내가 잊어버릴까 봐 요일별 입을 옷과 액세서리를 매칭시켜 사진을 찍고 나에게 설명하고 확인받고, 신혼여행을 누가 가는지 모를 정도로 설레하던 후배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신혼여행 가방을 야무지게 싼 후배는 커다란 자기 가방에서 이것저것 꺼내더니 정리되지 않은 내 손톱과 발톱에 색을 입히고 살라라 마술을 부렸다.


"참 손이 많이 가는 언니야,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어떻게 신혼여행 가는데 네일아트도 안 하고 가"

밉지 않은 투덜거림으로 나의 민망함을 씻어주는 상콤 발랄 희.


 톡톡 튀는 말투와 급한 성격 때문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도맡아 했던 후배를 이십 대 꼬맹이로 만나 긴 시간 언니처럼 친구처럼 함께했는데 어느덧 마흔이 되었다. 아직도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언니~라고 불러주면 레몬처럼 톡톡 튀는 행동과 상큼했던 후배의 깨발랄한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주방 한쪽에 걸려있는 좌절 금지 에코백을 보니 몰캉몰캉 마흔이 된 꼬마 숙녀가 보고 싶어진다.




PS

"엄마 내가 에코백 하나 사줄까?" "됐어"

"여보 내가 수영가방 하나 사줘?" "싫어"


십 년이 넘은 좌절 금지 에코백은 상콤 발랄 희와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에코백을 볼 때면 후배와의 추억이 한올 한올 살아나 다시금 이십 대 삼십 대의 나를 만나게 된다.


그땐 그랬지~~ 가끔 추억 산책을 하게 되는 나의 애장품 죄절 금지 에코백은 상콤 발랄 희~




한 줄 요약 : 사람도 사물도 관심받는 만큼 소중해진다. 소중함을 표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라라크루#라이트라이팅#화요갑분#가방#


매거진의 이전글 007 가방과 요술 가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