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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Feb 22. 2024

남편을 버리기로 했다.

버리기엔 짠하다.

忍 忍 忍


'참을 인'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아침부터 폭주한 세포들을 '참을 인'자로 다스리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남편이다.


아침부터 회사 메신저로 지시한다. 상사도 아니면서 내 시간을 축내는 남편


남편의 지방 발령으로 회사 직원들은 나를 보면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고 한다.


그 말이 남편에게 해당하는 건지 나에게 해당하는 건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시간은 가고 있다.


아이들과 나는 평소처럼 서울에서 생활하고 남편은 타지에서 원룸을 구해 생활 중이다.


문제는 남편은 호탕한 성격과 철저한 자기 관리, 자기 행복 추구 범위를 잘 아는 사람이지만 나는 현실에 수긍하며 매 순간 해야 할 일에 몰두하는 편이다.


행복보다 의무가 우선인 나와 행복이 우선인 남편



출근길에 전화 한 통 없더니 아침부터 재촉하는 메시지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오늘까지 인사팀에 제출할 서류가 있다며, 얼른 메일 확인하고 처리하라는 내용이다.


이건 뭐지! 인사팀에서 보낸 서류를 그대로 토스 ~ (아침부터 짜증이 확 오른다)


"이거 지금 작성하라고 보낸 거야?"


"지방 이사비용이랑 집 구하기 전 사용했던 비용 오늘까지 제출하래, 당신이 좀 보내줘"

 

............................................ 일단 참아 보기로 했다.


첨부 파일을 열어보니 작성해야 할 서류가 가득하다. (뭐지 뭐가 이렇게 많아, 바빠 죽겠는데, 이 사람을.....)

필요한 서류를 다운로드해서 작성하는데 문득 남편의 무책임한 행동에 화가 났다. 직접 작성해서 보내면 될 일을 꼭 나를 통해 처리한다. 요즘 바쁜 걸 아는 남편의 생각 없는 행동이 야속함으로 밀려온다.

(이 상황에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이 왜 생각나는 걸까)


작성한 서류를 출력해서 남편 이름으로 사인을 하고 스캔한 서류를 인사팀에 보내기 위해 남편 그룹웨어 접속을 시도한다.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미 나의 인내는 한계치를 넘어섰고 틀린 비밀번호에 쌓인 짜증을 토해 내듯 키보드를 두들겼다.


결국 비밀번호 5회 오류, '관리자에게 문의하세요' 오류 메시지를 확인하고서야 정신이 번쩍, 귀찮게 됐다.

 

 인사팀에 연락해 남편 비밀번호 초기화를 요청했지만, 비밀번호 5회 오류는 IT 권한이라 해줄 수가 없단다.

 But ~~ IT는 본인이 요청해야 한다는 인사팀 후배 목소리가 메아리 되어 귀에 꽂힌다. 우 씨


망했다! 귀찮다! 쌓여있는 일에 잠깐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린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고 해결되지 않은 남편의 서류가 얄밉다. 'IT에 비밀번호 초기화 요청하세요!' 짧은 메시지를 남편에게 남기고 본연의 일을 하기로 한다. 사실은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잠시 후 남편의 전화

"여보" 톡 확인했어.

"IT에서 비밀번호 변경하는 방법을 보내왔어, 쉽게 변경 가능해" 확인하고 처리 해줘!


'이 남자 눈치는 대체 어디 간 걸까? 이런 후안무치한 사람을 봤나'


아니라고~ 이게 아니라고 토피스 접속을 못 하는데 어떻게 비밀번호 변경을 하냐고, 생각 없는 남편아.


결국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예민한 내 목소리와 달리 남편의 활기찬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전화기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그게 더 화가 났다. 속이 타들어 가는 치열함에 나를 던져놓고 여유를 뒤집어쓴 듯한 목소리


"뭐가 그렇게 신났어, 됐고, IT에 전화해서 비번 초기화 요청하고 임시 비번 받아요"

"근데 첨부 파일 보긴 했어?" "직접 작성할 생각은 안 한 거지?"


"어차피 내가 작성해도 당신이 수정했을 거야~ 그래서 그냥 보냈어, 잘했지"

"오늘 꼭 보내야 해, 아, 내 토피스 들어가서 신청서 작성도 같이 해줘"


"몰라, 바빠" 도저히 더 이상 대화할 기분이 아니라서 전화를 끊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서류 제출은 했지만, 기분은 여전히 나빴고, 화는 머리 위에서 똬리를 틀고 있었다.





퇴근 후 아이들과 저녁 먹고 치우는 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나 오늘 20만 원 넘게 썼어, 어제도 6만 원 썼는데, 살림살이가 자꾸 늘어나고 있어"

흥이 흥을 부르는 목소리로 재잘거리는 남편, 기분은 별로지만 애써 담담하게 한 마디 건넸다.


"나중에 올라올 때 짊이 너무 많으면 둘 곳도 없어 적당히 사"

"그래도 필요하건 사야지, 자꾸 살게 생기네 ~~히히"


"나, 오늘 베개도 하나 더 샀고 이불도 하나 더 샀어, 당신이랑 아이들 오면 필요하잖아"

"그러다, 집보다 살림살이가 많아지겠어."

"맞아, 여기가 집보다 더 좋아지겠어." 쇼핑을 즐기는 남편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속없는 남편

퉁명스러운 내 목소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텐션이 쭉쭉 오르더니 결국 망언을 하고 만다.


"여보 나 엉덩이 차가워서 비데 설치 할래"


"당신 주말에 올라오지 마"


"여보, 나 버린 거야?"


"응"


남편이 보내온 영상 / 당신이 하라는 거 다 할 수 있어, 여보야 ~ 미안해, 나 주말에 올라가?



한 줄 요약 : 어제 남편을 버리고 오늘 다시 주워 담는다.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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