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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May 05. 2024

아들 덕분에 성장하는 엄마

라라크루 금요문장( 2024.05.03)

훌륭한 코끼리는 후회를 많이 하지. 덕분에 다음 날은 전날보다 더 나은 코끼리가 될 수 있는 거야. 나도 예전 일들을 수없이 돌이켜 보고는 해. 그러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떠오르지. 하지만 말이야, 내가 절대로 후회하지 않은 것들도 있어. 그때 바깥세상으로 나온 것도 후회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일들 중 하나야.

긴긴밤_루리 


나의 문장 


긴 밤이 하얀 밤이 되도록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오늘 하루 나의 말과 행동이 자꾸 거슬려서 후회한다. 조금만 냉정했어야 했는데, 조금 더 똑똑하게 굴었어야 했는데, 나의 어리석음이 내 아이에게 상처기 되지 않기를 부모의 역할이란 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피멍이 든 가슴의 상처는 스스로 치유해야 하는 나의 몫이 되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너의 엄마임이 자랑스럽다.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의 담임선생님 전화는 언제나 그렇듯 나를 긴장하게 한다. 혹여 무슨 사고가 나지 않았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오늘 급식 시간에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덜컹 1차로 심장이 내려앉는다.

네, 선생님 말씀하세요

"일단, 아이들 이야기는 들어봐야겠지만, 약간의 강압이 있었고 피해 아동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강압은 뭐고 피해 아동이라면 우리 아이가 가해자라는 건가요?


손이 떨렸지만 차분하게 상황을 전달받아야 했었다.

"일단 피해 아동 부모님께서는 '학폭'을 진행하신다고 하셨고요"

네, 뭐라고요 저는 지금 아무런 상황을 모르는데 갑자기 학폭이란 요?

그럼 피해 아동은 누구입니까?


피해 아동은 아들과 둘도 없는 친구였고, 부모 역시 잘 알고 지내는 사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사건의 전말은, 아들의 친구가 같은 반 여학생과 사귀는 사이가 되었고 (사귄다는 표현이 어색하지만, 아이들 표현을 인용) 그 여학생은 아들과도 잘 지내는 친구였다.


아들이 급식실에 들어갔는데 여학생이 다가와 아들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이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나 OO랑 사귀는 거 알지, 나 OO한테 할 말 있으니까, 밥 먹고 실습실로 좀 데리고 와줘"

아들은 여학생의 부탁을 들어줬고, 사건은 거기서 벌어졌다. 두 친구는 실습실에서 만났고 여학생이 다짜고짜 아들 친구에게 안기면서 뽀뽀했다고 한다. 그 과정을 아들과 다른 친구들이 지켜봤고 '뽀뽀해'를 외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커졌다고 한다.




그 후 어떻게 대처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아들은 가해자가 되어 있었고, 전후 상황이야 어찌 되었든 선생님에게 전달받은 상황을 근거로 피해 학부모에게 연락을 취했다. 여학생 학부모는 안면도 없었지만, 본인 아이의 성향을 알기에 대려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문제는 아들의 친한 친구, 평소 안면도 있었고 집으로 초대해 식사도 여러 번 했던 터라 전후 상황을 설명하면 오해가 풀릴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여러 번 전화해도 응답이 없었다.


급한 마음에 우선 문자를 남기기로 했다.

'어쨌거나 아들이 관여해서 생긴 일이니, 미안하게 생각해요. 아들도 많이 반성 있으니, 연락 부탁해요'

 그러나, 나의 어리석음과 안일한 대처로 아들에게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을 남겨주게 되었다.


'전화 받고 싶지 않습니다.' (평소와 전혀 다른 딱딱한 표현)

'학교 측에 우리 의사는 밝혔으며, 강압과 수치스러움에 아이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한 상태로 심리치료가 시급한 상황으로 보입니다. 강력한 처벌 원하고 있습니다'


문자를 읽는 내내 손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무능한 엄마가 된 것 같은 자책이 밀려왔다.


거듭 사과 메시지를 남겼지만, 그 이후 답은 없었다.




학교 측 연락

피해 아동 부모님이 변호사이신 건 아시죠? 연락을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학교를 상대로 피해보상을 생각하고 계신다고 하시네요. 일단 학부모님은 선처를 기다리실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피해 아동 학부모님이 '학폭'을 원하시면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날벼락 같은 소리에 가슴이 답답하고, 자책하며 떨고 있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아들 괜찮아" "이미 벌어진 일이고 잘못된 행동 반성하고 있잖아, 앞으로 똑같은 행동 안 하면 돼" "엄마가 어떻게든 해결할게"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멍청하게 남편에게 알릴 생각도 못 했고, 어떻게든 학부모와 연락하려 했다. 그동안의 친분으로 곧 연락이 오리라 믿었다.)





어느 학부모의 연락

"안녕하세요, 저 OO 엄마예요. 학교에서 '학폭' 얘기가 들려와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벌써 소문이 그렇게 났나요?" 참담한 마음이었지만 냉정해야 했다.


"피해 아동 엄마랑 친하지 않으셨어요. 제가 알기론 아이들도 꽤 친한 걸로 알고 있는데, 왜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들까요?" (아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심정)


"OO 어머니, 사실은 그날 우리 아들도 거기 있었다고 하네요"

"아이가 너무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가 저한테 말을 해줘서 연락드렸어요"


"저도 우리 아기가 괜히 사건에 엮여서 곤란해질까 봐 고민 하다가 OO 어머니 힘드실까 봐 같이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연락드리는 거라, 추후 우리 아이에게 피해가 오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먼저 연락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선생님 이야기만 들었기 때문에 정확한 상황을 모릅니다. 아들은 다 자기 잘못이라는 말만 해서 저도 좀 답답한 상황입니다.


그날 그 자리에는 아들 포함 4명의 친구가 더 있었고, 다들 본인들은 잘못이 없고 우리 아들이 시켜서 다 같이 '뽀뽀해'를 외쳤다고 한다.


교실 앞문을 잡고 있던 친구도 있었고, 피해 친구 등을 떠밀고 껴안는 걸 도와준 친구도 있었다고 한다. 그 상황에서 피해 아동은 웃고 있었고, 짐작이긴 하지만 아마도 피해 아동이 여자 친구와 뽀뽀했다고 부모님께 말하면서 사건이 확대하여 해석된 것 같다고 했다. 정작 가해자로 지목된 아들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왜 아들은 이런 정확한 상황을 나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전화를 해왔던 학부모 아들은 무서워서 말하지 않았지만 학교에서 '학폭' 얘기가 나오고 아들이 가해자가 되어 '학폭' 대상이 되었다고 하니 용기 내어 부모님께 그날 상황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다음 날 그 자리에 있었던 친구들 부모에게 연락해 상황 설명을 했다. 그 일을 전혀 모르는 학부모도 있었고, 난색을 보이는 학부모도 있었다. 그날 있었던 일을 정확히 알고 싶을 뿐이라며, 아이들에게 상황을 물어봐 달라 부탁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 아동이 그동안 아이들을 때리며 놀렸던 일들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올라왔고 역으로 '학폭' 신고를 하겠다는 학부모도 있었다.


그 후 알지도 못하는 학부모님들의 연락을 몇 통 받았다.


"맘고생 많으시죠, OO 참 괜찮은 친구예요. 인사도 잘하고, 우리 아이가 아주 좋아해요"


"저도 얘기 들었어요, 잘못은 다른 친구가 했더라고요. 역 고소하세요" 


그렇게 상황은 역전이 되었고, 학교 측 연락을 받았다. "피해 아동 부모님이 '학폭'은 없던 일로 하신답니다"


하지만, 아들과 나는 한주 내내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주말에 올라온 남편은 안일한 나의 대처로 아들이 받은 상처는 어쩔 거라며 화를 냈고, 친구 부모와 담임선생님에게 사과를 요구하자고 했다.


그런 아빠에게 아들이 한마디 한다.

"아빠, 내가 잘못한 거야, 엄마가 잘못한 거 없어, 그리고 그 일은 잊고 싶어, 너무 힘들었어."

"OO는 여전히 내 베푼 데 괜히 어색해지기 싫어, 우린 아주 친해." "내가 진심으로 사과했거든."


부족한 엄마는 또 왈칵 눈물 한 사발 흘리고 너를 위해 더 단단해 지려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PS : 담임선생님에게 학습 태도(성과)가 좋지 않은 아들은 그저 문제아였고, 아들 말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지 않았다. 그 또한 지금부터 아들이 이겨내고 헤쳐 나가야 하는 현실이다.

매 순간 스스로 당당하게 살아가자고 약속했다.



한 줄 요약 : 야무지지 못한 엄마 때문에 맘고생 시켜서 미안해, 너는 정말 멋진 엄마 아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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