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엄마 오늘 오전에 시간 될 것 같은데. 올 수 있어요. 이번 주는 오늘만 시간이 되는데.
갑자기 걸려 온 주인아줌마 전화. 금요일 오후에 계약서 작성을 다시 하자고 했는데 갑자기 오늘 안 되면 이번주는 시간이 안 된다고 하니 뇌 정지가 온 것 같다.
주저할 틈도 없이 오늘은 안된다는 퉁명스러운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찜찜한 이 기분.
정신 차리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몇 시에 어디로 찾아가면 되는지 물었다. 강남에서 11시 30분. 머릿속에 계산기와 전철노선도가 어지럽게 그려지고 거리와 시간 계산을 한다.
"네 그럼 제가 11시 30분까지 댁으로 찾아뵐게요"
쿵쾅 죄지은 것도 없는 데 마음이 절절 굽신거리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오전 출장지 근처와 만나기로 한 곳이 멀지 않았다. 하늘이 도왔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그래 목 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했으니 내가 시간을 내야지. 일찍부터 서둘렀던 보람이 있었다.
업무 회의 일찍 끝내고 점심시간 활용하면 계약서 쓰고 사무실 복귀까지 문제없겠다.
부랴부랴 전철을 타고 이동하면서 꼼꼼히 해야 할 말과 계약 사항을 체크했다. 매번 남편이 하던 일을 남편이 없으니 직접 하게 되었다. (그동안 참 편하게 살았구나!)
어쨌거나 집 계약서로 여러 번 아주머니 심기가 불편했으니, 빈손으로 갈 수는 없고 뭐라도 사가야 했다.
유독 꽃을 좋아하신 듯해서 꽃으로 정했다. 내가 좋아하는 마트리카라를 중심으로 예쁜 포장을 부탁했다. 바람이 시원하고 예쁜 꽃다발까지 목적과 이유에 상관없이 기분이 좋았다. 오전 미팅도 잘 마무리됐으니, 계약서도 문제없이 쓸 수 있을 거란 믿음으로 룰루랄라~~
하지만, 아주머니는 어딘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고, 분주한 몸놀림으로 바쁜 사람한테 자꾸 시간 내달라고 한다며 볼멘소리하셨다. 수줍게 안고 있던 꽃다발을 전하며, 일전에 꽃을 좋아하신다고 하셔서 준비했어요.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살짝 분위기를 전환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파트 주차장 택배보관소에서 한 시간가량 아주머니는 자신의 상황과 입장 그리고 계약 조건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며 나를 설득하려 했다. 계약서에 도장만 받으면 되는데 아주머니는 쉽게 도장을 찍어줄 생각이 없는 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 지금 혼나는 건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생각이 안드로메다로 향해 갈 때쯤 덥다며 일단 계약서를 보자고 하셨고 다시 이어진 설교.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까지 험난한 순간순간들이 있었지만, 다행히 계약서 도장 받기는 성공했다.
남편에게 도장은 받았지만, 그 여정이 쉽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니 매번 같은 레퍼토리로 한 시간은 기본이라고 했다. 남편은 매번 이랬겠구나, 더 이상 불편한 마음을 내비치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벌써 점심시간은 끝났고, 회사 복귀 시간도 늦었으니,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묘한 기분 묘한 생각 머릿속을 자꾸 난도질하는 부정적인 생각들. 머리를 절레절레 몇 번 흔들고 사진첩을 펼치니 '짠'하고 나타난 꽃다발 사진 아주머니 선물로 샀던꽃다발이 나한테 더 큰 행복을 안겨주고 할 일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드니 쭈글쭈글하던 마음이 활짝 펴졌다.
돌아오는 전철에서 글벗 대화방에 꽃 사진을 올리고 행복을 나눴다.
간간이 올리는 인스타에도 꽃 사진 몇 장 올리고 오후 시간을 시작했다.
짜야~ (친구가 부른 애칭) 친한 친구의 전화
"짜야, 니 꽃 받았나!" "누가 주드나, 내가 아는 말 많은 그분" "역시 사랑꾼이야"
꽃 이쁘지~~ 나는 우물쭈물 대답을 얼버무리며, 친구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집은 해결 됐냐는 친구 질문에 그 꽃다발 주인아주머니 드리려고 샀는데 사진 봤지, 기분은 내가 다 냈어, 나를 위해 산 꽃 같아.
하하하 전화기 너머 호탕한 친구 웃음소리. 그리고 오전에 있었던 일을 짧게 이야기했다.
"가스나, 니 미친 나" "이기 제정신 아니네, 그런 상황인데 꽃을 보고 좋아하고 싶드나" "미친 가스나"
(친구 고향은 경상도 우리는 첫 직장에서 만난 30년 지기)
깔깔거리던 친구는 버럭 화를 내더니, 그래그래 내 친구 짜는 그럴 수 있지. 그래 짜야 잘했다. 마지막엔 따뜻한 위로 그렇게 한참을 웃고 울다 친구가 한마디 한다.
"가스나야, 나는 꽃 들고 웃고 있길래, 뭔 좋은 일 있는갑다 하고 나도 기분이 좋아 전화했다"
"그렇게 웃고 살아 짜야"
PS :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걸 모르는 친구에게 다짐한다. 앞으로 너를 기쁘게 해주는 일이 꼭 일어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