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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May 01. 2023

관계의 의미 (1)

그냥 스칠 수 없는 관계는 있다.

만나면 불편한 사람이 있다.

어떤 만남이고 어떤 관계였는지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다.


스쳐 지나가는 세월 속에 한 사람 일 수도 있고, 살면서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던 사람일 수도 있다.

굳이 그런 사람을 회사라는 울타리에서 만나 서로 의지하고 서로의 대나무 숲이 되어 주었다.


같은 여자 같은 나이 때 같은 워킹맘 서로가 공감하고자 하면 공감대는 차고 넘쳤다.

단지 일과 가족에 대한 가치관이 많이 달랐고 어쩌면 그런 이유로 서로에게 애증의

감정이 생겼는지 모른다.


여자지만 당당하고 카리스마가 넘쳤던 그분은 나에게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였다.

항상 최선을 다 하는 모습과 거침없는 추진력이 멋있었지만 왠지 헛헛함과 피곤함이 느껴지는

뒷모습은 나에게  애처로움으로 다가왔다.


워킹맘이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끝도 없이 나에게 입하던 어느 날

"팀장님은 그래서 행복하세요"

육아를 책임질 수 없는 상태라면 워킹맘이 되면 안 된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질문을 던졌다.

독박 육아, 남편이 출장을 가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독박 육아.


그날은 오전부터 딸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았다.

급한 보고건만 마무리하고 데리러 가겠다며 유치원 선생님께 아이 좀 보살펴 달라고 사정을 했다.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친정도 시댁도 너무 멀었고 남편은 출장.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팀장(그분)은 계속 보고서 수정을 원했다.

오후 3시쯤 보고는 끝이 났고 급한 마음에 가방을 챙기는 나에게 그분은 워킹맘은

출근과 동시에 집은 잊어야 한다며, 내 상황을 못마땅해했다.


아이 걱정과 그분 말에 짜증이 나서  내뱉은 내 질문에 말문이 막힌 것도 잠시...

그래서 지금 내 말이 우스운가?

" 그런 뜻은 아닙니다. 팀장님이 생각하는 직장인 이미지가 있고 제가 생각하는 직장인 모습이

있습니다. 가정이냐? 회사냐? 꼭 둘을 반으로 갈라서 하나에 몰입하고 내 에너지를 다 쏟아야 한다는 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굳이 그렇게 선택을 강요하신다면 전 가정을 택하겠습니다".


그 뒤로 한 달, 인사도 받지 않고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넌 밥도 우리 팀이랑 같이 안 먹니?"


어느 날 점심시간에 그분이 나에게 던진 질문!!


점심시간은 제 시간이라서... 팀에서 먹어야 하나요?

그럼, 오늘은 같이 가시죠~


그 후 그 분과 나는 어색한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성대는 아줌마로 친분을 쌓아갔다.


한참 뒤, 본인에게 그렇게 말대답을 했던 직원도, 본인이 무시하는데 아량곳 하지 않고

자기 할 일 다 하며 꿋꿋하게 지냈던 직원은 없었다고 했다.

먼저 와서 용서를 구하거나 타 팀으로 이동을 했다고 한다.


나는 직장인이자  엄마였으니까, 난들 왜 힘들지 않았을까. 차가운 시선, 날카로운 목소리.


애써 눈빛을 피했지만 매일매일이 숙제 같은 하루였다.


차갑고 따갑던 시선을 거두고 나를 나로서 대하기로 했는지 그날 이후 유독 나에게 다가왔고

자신의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여리고 작은 엄마의 마음도, 팀장으로 버티기 힘든 순간들도 하나씩 하나씩 내 앞에서

벗어던지고 그저 여자대 여자로 엄마대 엄마로만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무만큼은 잔다르크..

그 모습이 나에겐 멋짐으로 다가왔고 남들이 뭐라든 그분 편이 되어 이해하기로 했다.

때론 쓴소리도 하면서 지기가 되어갔다.

.

일도 가정도 최선을 다했고 때로 그분과 작은 의견 타툼이 있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서로 배우고 인정하고 다름을 이해하고 위로하며 연말을 맞이하고,

연말이 되면 그 순간이 되면 어김없이 팀장의 잣대로 나를 판단하고 평가했다.


서운하지 않았을까? 서운하고 무심했지만 내 능력을 탓했고 내 노력을 인정하지 않음이 답답했지만

그분은 나의 더 많은 능력을 원하고 있다고  공과 사는 구분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만약 팀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회사 일에만 매진하면 저 팀장 만들어 주실 건가요"?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그분은 그저 나를 본인의 치부를 보이기에 딱 좋은 그런 상대로 여겼고 나 스스로

승진이나 업적에 대한 욕심을 부리는 것을 극구 싫어하고 있었음을 그저 본인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역할자가 필요했음을.....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저 마음 한편 기댈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났고 그동안 서로 다른 팀이 되고 다른 일을 하면서도 관계는 지속되었다.

힘들거나 지칠 때 말없이 어깨를 내어드렸고 대나무 숲이 필요해 보이면 묵묵히 숲이 되어 드렸다.


회사에서 만나기 힘든 좋은 벗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물론 종종 감정을 휘몰아쳐 힘들기도 했지만 딱히 버겁진 않았다.

그저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때론 다른 길을 안내해 주면 됐으니까.




"사람들이 자꾸 뒤통수를 치는데 너만은 그러지 않을 거지,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 떠나지 마"   그때는 그 무슨 일이 우리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느 해 치열한 진급자들의 눈치게임이 시작되었다.

진급대상자는 차고 넘치는데 진급자 수는 정해져 있었다.

성과는 곧 진급이었고 연말은 보이지 않은 힘이 공존하는 바닷속 먹이사슬 같았다.


그 해 나는 일찍부터  눈에 보이는 성과를 거두웠고 모범사원 표창을 받은 이유불문

진급 일 순위였다.


며칠 동안 이어진 임원 인사위원회 마지막 날.


"커피 한잔 하자"

그분의 전화를 받고 내려간 휴게실에서 나는 삶의 절망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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