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을 잃어가는 중,

낯설지 않은 이야기

by 바스락

"어디 아픈 사람은 아니지?"

예상치 못한 엄마의 질문, 눈치를 줘도 허허실실 웃질 않냐? 새벽부터 일어나서 알지도 못한 동네 마실을 갔다 오더니 지금은 부엌에서 뭘 만들고 있어, 부엌에서 도대체 뭘 한다니, 엄마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재차 묻는다. "정신이 온전한 건 맞지?"


챙김이란, 챙김을 받아본 사람이 받는다고, 헌신과 희생이 습관처럼 몸에 밴 엄마는 자신을 돌보는 것조차 서툴렀다. 무관심 같은 무뚝뚝함이 습관처럼 되어버린 엄마는 타인의 챙김이 낯설고 거북했는지, 처음 인사온 사윗감의 호의가 불편하고 어색해서 좌불안석이었다.


조용한 나와 달리 수다쟁이에 넙죽 술을 받아 마시는 그의 모습에 엄마는 곁을 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엄마는 술 잘 마시는 그 사람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와 엄마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있었을지 모른다. "너는 좋냐?" 엄마의 정서를 닮은 나는 그저 고개만 끄떡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유별나 보이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인사 간다고 사골용 모둠뼈를 가득 사온 남자, 시골에 도착하자마자 마당 한가운데 불을 피우고 사골을 우리기 시작하더니, 제 집인 양 부엌과 마당을 오가며 뜨거운 태양보다 더 뜨겁게 달구고 있는 열정은 침묵으로 꾹꾹 눌러 담고 있는 우리 가족의 모습과 상반되어 적응이 되지 않았다.


주 1> 나는 내 가족에게 (될 수 있는대로) 내 속을 드러내 보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주 기꺼이 내 마음과 내가 그들에 관해서 판단한 것을 누구에게나 알려 줍니다.

나는 내 마음을 알려 주고 내 속을 보여 줍니다.

왜냐하면 나는 좋건 그르건 사람이 나를 잘못 이해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침묵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했고, 회피와 타인에 대한 판단으로 존재를 확인하려 했다. 가족 안에서 형성되지 못한 관계의 미성숙한 자아는 늘 부족함에 대한 갈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 침묵 안에서 나는 착한 딸, 유일하게 위로가 되는 딸로서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아버지를 향한 구원자 콤플렉스에 갇혀 나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었다.


햇살을 머금고 나란히 놓여있는 하얀 고무신과 지팡이, 며칠째 같은자리에 놓여있다. 덩달아 아버지도 바깥출입이 없다. 반짝이는 햇살 아래 풍기는 비린 술 냄새, 마당을 적시고 흘러내린 토사물 꼬리가 점점 좁아지더니 안방을 향하고 있다. 아버지 입을 통해 몸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입을 통해 분화구처럼 쏟아져 나온 쓰디쓴 하루의 흔적이다.

안방에 미라처럼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밥 한술 뜨라는 엄마 말에 아버지는 대답 대신 “끙” 앓은 소리로 응수한다. “인자 술 안 마시련다.” 아버지 거짓말이 언제나 진실이길 바랐다. 술이 달다는 아버지의 하루와 술이 쓰다는 아버지의 하루는 매일 주기적으로 바뀌었다. 가끔은 아버지의 하루를 따라 살고 싶은 날이 있다. 달디 단 하루, 쓰디쓴 하루, 아버지의 다짐은 사흘을 넘기지 못했지만, 달디단 하루가 가끔 생각난다.


아버지를 향했던 구원자콤플렉스는 살면서 종종 발동하곤 했다. 가끔 '천사병'이라며 걱정하는 친구도 있었다.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는 남편을 만나 챙김을 받으면서, 행복을 느끼면서, 글을 쓰면서, 착한 딸이고자 했던 나의 행동이 아버지를 더 힘들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잔뜩 혼란스러운 지금,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걸까?


방향을 잃어가는 도중에,



주 1> 나는 무엇을 아는가


#아버지#혼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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