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오지 않을 전화를 놓치고,
밥도 술이고 반찬도 술이고 술도 술인 생활을 견디지 못해 영혼까지 술독에 빠트린 아버지 생은 행복했을까? 아버지를 향한 나의 지고지순했던 마음이 분노로 변해 가던 순간, 아버지 손을 잡고 꿈꾸던 평온한 일상은 산산이 깨지고 있었다.
변죽이 좋은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웃음기를 머금고 술을 찾았다. 어느 날은 이를 드르륵 갈아가며 잔뜩 독이 오른 승냥이처럼 누구라도 잘근잘근 씹어 삼킬 기세로 쏘아보았다. 술이 인생이 되어버린 비참함이었다. 숨만 쉬는 사람, 정신은 이미 사람의 것이 아닌 상태로 아버지 영혼은 이미 육신을 떠나 옳고 그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생은 아버지에게 유독 잔인했다.
주 1>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이겨내는 것,
우리의 물질적, 정신적 존재의 절멸, 질병과 퇴영(退嬰)에 대해 자기를 긍정해가는 것이다.
나의 학창 시절은 아버지가 술을 드신 날과 드시지 않은 날로 구본 되어 평범한 일상과 그러지 못한 날로 나뉘었었다. 성인이 됐다고 달라지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현실과 보이지 않은 현실이 존재할 뿐, 현상은 똑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는 며칠 술독에 빠져 일상이 없는 날들을 보내다 결국 쓰러지면 또 며칠은 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반송장처럼 하루가 없는 날들을 보냈다. 지독한 찌린내가 아버지를 돌돌 감고 며칠이 지났다. 결국 술 귀신이 되어 평생을 술독에 빠져 사시더니 술 귀신을 따라 생을 마감하셨다.
아버지 죽음이 가족에게 해방이 되어버린 비극적인 삶에서 나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쩍 부고 소식이 많은 요즘 장례식장을 자주 찾는다. 상주가 되어 손님을 맞이했던 아버지 장례식장 기억이 없다. 여태 그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다. 아버지를 회상하며 글을 쓰는 순간 기억이 분실되었음을 인지했다.
주 2> 분노는 판단을 흐리게 하고, 그로부터 기억의 혼란이 일어나며, 기억의 착란으로부터 지성의 파멸이 일어나고, 지성의 파멸로부터 그도 완전히 파멸하게 된다.
소진되어 버린 기억이 왜 지금 궁금하고, 왜 사실을 알고자 분실된 기억을 되찾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단지 사랑받았다는 기억만 간직하고 싶었다. 모든 사실에서 회피하며, 조작된 기억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진실하지 못한 시선은 질긴 고리에 걸려 옴짝 달짝 못했고, 벌 받는다 생각했다.
마음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위해 눈물 흘릴 수 있을까, 허상만을 붙들고 '괜찮다'는 새 글자만 가슴에 새기며 사는 게 정말 '괜찮은' 삶은 아니었다. 미움도 사랑도 아버지를 향해 쏟아부었다면, 그리움을 애써 원망이라 하지 않아도, 원망이 그리움을 품고 있다고 누군가 알려줬으면 좋겠다.
끈질기게 울리던 아버지 전화를 외면하고, 하루가 지났다. 아침 출근길에 걸러온 엄마전화, 이른 아침 엄마전화는 불길했다. "아버지 가셨다." 간단하고 명료했다. 회사를 향해 걷고 있는 발걸음이 짜증 났다. 아침부터 바쁘게 치장했던 뽀얀 얼굴과 빨간 리스틱이 역겨웠다. 속이 메스꺼워 골목으로 몸을 감췄다.
1) 엄마의 회상
그날 저녁 어제처럼 그 전날처럼 그렇게 술을 마시고 악다구니를 퍼붓더라. 어린 네 손을 잡고 어두운 길에서 빛을 향해 거닐던 그때처럼 혼자 그 밤길을 헤매었다. 어슴푸레 어둠이 걷히고 아침이 오는 시간 몹시도 지치고 서글픈 몸을 끌고 집으로 향했다. 새벽밥이라도 지으려 했다.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 만취 상태로 잠든 상태를 보고, 언제나처럼 부엌에서 살금살금 쌀을 씻고 국을 끓이고, 미우나 고우나 주정뱅이 남편 아침을 챙기며 곤혹스러웠던 어젯밤 기억은 의식 속에서 폐기 처분했다.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술이 덜 깬 아침이면 벌컥 부엌문을 열고 “니미럴 니 시방 뭣하냐, 나가라, 존말 할 때 얼른 나가라” 밤에 집을 나간 게 괘씸해 추궁 아닌 내쫓김을 당했을 텐데, 오늘은 깊은 잠이 들었는지 아무런 기척이 없다. 안도하며 밥이라도 한술 뜨고 일을 나가려고 애써 태연한 척 물에 밥을 말아 후루룩 마시는데. 밥물이 자꾸 목에 걸려 사례가 걸렸다.
목구멍으로 넘어간 밥알이 꽉 막아서 다시 토해낼 판이었다. 밥 먹는 건 포기하고 옷을 챙기려 조심조심 안방 문 손잡이를 잡고 쌀짝 문을 열었다. “찌~익”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다. 그 소리에 깨면 오늘도 평범한 하루를 보낼 수 없으니, 다행히 미동도 없었다. 좁은 문틈 사이로 몸을 욱여넣었다. 퀴퀴한 악취에 숨을 참았다.
‘워메 원수 뭔 술을 이라고 먹었다냐’
엎드려 자는 걸 확인하고 조용히 옷을 챙겨 나오려는데 방안에 널브러져 있는 술병 옆에 반짝 빛을 내고 있는 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주민등록증이었다. 개운치 않은 마음에 주민등록증을 향해 손을 뻗으려다 살짝 어깨를 밟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순간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방안에 퀴퀴한 냄새를 집어삼켰다.
‘털썩’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흐릿한 동체가 깜빡거리지도 않고 나를 보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딸에게 전화했지만, 딸은 서울이라 바로 올 수 없었다. 심장이 솜방망이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폴짝폴짝 뛰는데 전화벨 소리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소스라치게 놀랐다.
근처 사는 사촌한테 연락했으니, 조금만 기다리라는 딸의 전화였다. 몸은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가슴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어 쑤시고 아프고 숨은 막히는데. 꼼짝없이 쳐다보고 있는 그 양반 얼굴이 저승사자처럼 섬뜩했다.
“작은 어머니, 작은 어머니 지시요?” 조카 목소리를 듣고서야 참고 있던 숨을 내셨다. ‘여그, 여그 있다니까’ 소리는 자꾸 밖으로 나오지 않고 안으로 파고들고 입술은 쩍쩍 갈라져 말이 말로 안 나왔다. 제대로 떨어지지 않은 입술에 마른침을 바르고 힘껏 소리를 질렀다. “여그 있다니까”
2) 생겨버린 원망
이기적인 아버지는 철저하게 자신만을 위해 살다가 긴 침묵만 남겨두고 떠나버렸다. 슬픔을 애도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가족, 우리가 가족이었을까, 가족이란 테두리에 희생만 강요당한, 어린 날의 아픔, 우리는 아버지를 알지 못했고 아버지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관심이 없었고, 친절하지 않았다.
가족보다 지금 당장 내 곁에 있는 이웃의 따뜻한 손길이 살아가는 힘이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존재는 분명 있었고, 우리에게 아버지는 아버지뿐이었다. 불안전한 세상에서 불안전하게 살면서, 그 흔한 미안하다는 말, 사랑한다는 한마디 없이, 치유할 수 없는 미련만 남겨주셨다는 걸 아시려나,
3) 애도하지 못한 이유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울었던가, 입관을 지켰던가, 장지로 향했던가,
나는 아버지를 잘 보냈던가,
그걸 아직 모른다.
주 1> 아미엘일기
주 2> 바가바드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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