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받지 못할 전화 (1)

서투른 판단은 후회가 된다.

by 바스락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무런 준비 없이 어제 계셨던 분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한낮에 태양이 하늘을 가득 메운 오후 소화기를 통해 술 냄새를 풍기며, '막내'를 부르던 혀 꼬부라진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고, 모든 상황이 깊은 침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는 3년 동안 요양병원에서 계셨다. 극심한 알콜성 치매로 인지능력이 떨어지면서 잠재되었던 폭력성이 발현되었다. 인생에는 총량의 법칙이 있다는데, 우리 가족에게는 무한대로 커져가는 고통의 총량만 있을 뿐 어디에도 행복은 보이지 않았다.


지극히 현실에 충실했던, 우리 가족에게 송곳 같은 존재는 아버지였고, 그 송곳을 품고 사는 엄마는 자식들이 독기를 품지 못하도록 냉정한 평정심을 유지하고 계셨다. 어느 날은 무관심으로 어느 날은 따스함으로 그런 엄마가 흔들리는 건, 가족의 중심이 흔들리는 거였고, 우리 가족이 버틸 명분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주 1>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는 경우는 하나도 없으며, 각각의 상황은 서로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각자의 상황들은 그 나름대로 독자성을 갖는다.


아버지를 알콜성 폐쇄병동에 입원시키자고 했던 것도 나였고, 강제입원을 감행한 것도 나였다. 한 달에 두 번 새벽기차를 타고 목포로 내려가 아버지 병원이 있는 해남으로 면회를 갔다. 아버지의 3년은, 대학 진학을 위해 모았던 돈과 희미하게나마 꿈꾸었던 나의 미래와 맞바꿔야 했던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삶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꿈을 꾸는 건 사치였고, 철저하게 삶으로부터 질문을 차단하고 살아야 했다.


내가 삶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행위에 집중하고 있을 때, 병동에 갇혀 있다고 생각한 아버지 또한 가족에 대한 배신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계셨다. 6개월 정도 가족 면회를 거부했고, 곡기도 제대로 드시지 않으셨다. 하지만, 삶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빛의 방향을 찾는다. 고난과 시련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나는 또 다른 관계를 형성해 가고 있었다.


의무적으로 새벽기차를 탔던 행위가 어느 순간 기쁨으로 다가왔던 건, 아버지에게서 진한 술냄새가 아닌 풋풋한 사람냄새가 나면서부터였다. 계절이 바뀌고, 점차 건강이 호전되면서 외출증을 끊고 소풍을 가고 시내 구경을 하면서 아버지와의 대화가 깊어졌다. 나를 바라보는 눈에 촉촉한 그리움과, 따스한 온기가 담겨 있었다.


주 2>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이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알코올 의존증도 사라지고 건강이 많이 좋아진 아버지는 퇴원했다. 예전과 다른 평화로운 일상이라 생각했지만, 그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다시 술을 드셨고, 이전보다 더 난폭해지셨다. 당신을 치매 병동에 입원시켰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이 뒤섞여 엄마의 삶은 더 엉망이 되어버렸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무섭도록 싫었다. 그래서 더욱 잘살아

했고, 나를 바로 세워야 하는 삶은 사는 내내 숙제가 되었다.





혀가 꼬여가는 아버지 전화가 잦았다. 밤에도 낮에도 수시로 걸려 오는 전화. 요양병원에 계시는 동안 2주에 한 번 면회, 하루에 한 번 안부 전화를 했었다. 아버지가 받지 않더라고 습관처럼 걸었던 전화에 아버지는 항상 ‘괜찮다’라고만 하셨다. 퇴원 후에는 아버지가 습관처럼 나에게 전화했다. 처음에는 맑은 정신으로 그러다가 술에 취해 혀가 꼬여가는 목소리로 한참을 콩나무 시루처럼 혼잣말하다가 역정을 내고 끊기도 하고 ‘안 오냐’ 한마디 하시고 대답을 듣기도 전에 ‘뚝’하고 끊어버렸다.


걸려 온 전화를 받지 않았던 날,

아침부터 걸려 온 아버지 전화에 진이 빠지기도 했고, 한 번쯤 안 받고 싶었던 그 전화가 평생 받을 수 있는 마지막 전화였다는 걸 알지 못했다. 받지 않은 전화기를 붙들고 고통스러워했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시 돋은 밤송이를 통째로 삼킨 기분이다. 목을 타고 내장까지 걷잡을 수 없이 느껴지는 반복되는 통증을 담고 산다.



‘아버지’ 한번 불러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으면 그렇게 외롭고 허망하게 떠나지 않으셨을 텐데, 사는 내내 그날의 나를 원망하고 미워하며 살고 있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 때문인지 그날 이후 며칠간의 기억이 없다.


분실된 기억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영원히 기억하지 말라는 것처럼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가족들 꿈속에 모습을 보였다는 아버지는 나에게만 벌을 주고 있는 걸까? 더 치열하게 더 애달프게 그때의 기억을 찾아내면 한 번쯤 오시려나?


주 3> '나 자신 이외의 아무것도 나를 해치지 않는다 내가 받는 해는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이며, 나는 내 자신의 과실에 의해서만 진정한 피해자다'


끈질기게 나를 붙잡던 전화벨 소리, 지겹게 느꼈던 그 소리는, 나를 애타게 찾던 아버지의 마지막 밤이었다.

잠깐의 외면이 영원한 침묵으로 사라져 버렸다. 후회와 용서는 내 몫으로 남겨져 있는 걸까?




주 1>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주 2>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주 3> 자기신뢰 철학, 에머슨




< 다음 편으로 이어가겠습니다.>



#아버지#전화#후회#마음#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