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모르고 지금은 아는 마음
주말에 새벽부터 눈이 소복이 쌓였다. 이른 아침 집 근처 공원 산책을 위해 신발장을 열었다. 아이들 발이 커서 더 이상 신지 못하는 아직은 멀쩡한 신발 몇 켤레가 얌전하게 놓여 있었다.
하얗고 꼬질꼬질한 신발을 꺼냈다. 작년에 딸이 신었던 신발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챙겨뒀다. 발가락을 요리조리 꼼지락거려보니 허공을 발가락이 휘젓고 있었다.
딸 발 엄청 크네, 혼잣말하며, 헐거운 신발에 발을 넣고 신발 끈을 앞으로 쭉 잡아당겨 촘촘하게 동여맸다. 발을 떼면 털썩 혓바닥을 낼름 거리듯 발바닥이 맘대로 움직였다.
소복이 쌓인 눈발을 마음껏 밟아도 되는 편안한 운동화였다.
꼬질꼬질한 운동화가 왜 정겨웠을까,
문득 서울역에서 잃어버린 아버지 운동화가 생각났다.
그날은 아침부터 모르는 전화가 여러 번 왔다. 평소 전화를 잘 받지 않는데, 더구나 모르는 번호라 애써 무시했다. 퇴근 무렵 다시 울리는 전화벨 소리. 잠시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눌렸다.
"여보세요" OO 씨 전화가 맞나요?
둔탁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남자는 나를 찾는 용건을 말하며, 전화기를 누군가에게 넘겼다.
"막내냐, 막내여, 아버지다"
"막내 맞지야, 목소리는 우리 막낸디."
소화기 저편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버지였는데, 목구멍이 꽉 막혀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머리로는 열심히 그 상황을 파악 중이었다.
곧이어 들려온 낯선 목소리,
"여보세요, 여기 서울역인데요, 아버님 부탁으로 전화했습니다."
"따님이시면 서울역으로 아버님 모시러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버님이 여기서 기다리신다고 하시네요."
전혀 예기치 못한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지금 시골에 계셔야 했고, 한 번도 시골을 떠난 적 없는 분이시다.
곧바로 시골집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만 연신 울릴 뿐 아무도 전화받지 않았다. 맞다.
요 며칠 시골집에 전화하지 않았었다.
다급해진 마음에 팀장에게 급한 일이 생겨 일찍 퇴근해야 한다는 양해를 구하고 택시를 타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도착한 서울역에서 어떻게 아버지를 찾아야 할지 망막했다.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지만 일단 아버지를 찾아야 했다. 서울역 이곳저곳을 누비며 낯선 남자가 알려준 공중전화를 찾았다. 그 근처 어디쯤이라고 했는데 아버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답답함에 복받쳐 오는 눈물을 겨우 참으며 바쁘게 시선을 움직이고, 있을 때 훤칠한 키에 어딘지 불편해 보이는 남자가 다가왔다. 덥수룩한 머리에 다 해진 장갑을 끼고 잔뜩 성이 난 얼굴로 "아버지 찾으러 왔소" 대뜸 한마디하고는 매섭게 나를 쏘아봤다.
놀란 가슴에 얼굴까지 빨개진 나는 개미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고, 남자는 불편한 기색을 내며 따라오라고 했다. 남자를 따라가니 큰 기둥에 다리를 한쪽으로 꼬아둔 것처럼 앉아 있는 아버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 주위에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사내 서너 명이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아버지는 나를 보고도 미동이 없었다.
잔뜩 찡그린 내 얼굴을 보고서야 아버지는 서운함이 가득 찬 목소리로 주위 사내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주머니에 있던 만 원권 몇 장을 꺼내 그들 손에 쥐여주었다. 사내들은 연신 고맙다며 앞으로 따님이랑 잘 지내고 다시는 여기 오지 말라고 불편한 몸으로 너무 멀리 다니면 안 된다며 건강 걱정까지 해주고 있었다.
자초지종 없는 무책임한 아버지 모습에 인내력은 짜증이 됐고, 최대한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지나가던 택시를 잡았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철저하게 아버지를 외면했다.
아버지는 삼 일 전에 서울역에 도착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거기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노숙 생활로 인해 행색은 말이 아니었지만, 왠지 편해 보였다.
얇은 점퍼에 눌어붙은 얼룩과, 뻘겋게 그을린 얼굴에 비친 생기가 낯설었다.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 최대한 느린 걸음으로 걸어갔다. 천천히 따라오실 거로 생각하고 앞만 보고 걸었지만, 불편하게 걷고 있을 아버지 모습이 생생했다. 불편한 마음에 걸음을 멈춰 뒤를 봤다. 생각했던 것보다 아버지는 먼 거리에서 힘겹게 걸어오고 계셨다.
어둠이 짙게 깔린 아스팔트 거리에서 실컷 울어도 아무도 몰랐다. 천천히 거리를 좁혀오는 아버지를 기다리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아버지 걸음걸이가 평소보다 더 절뚝거리고 불편해 보였다. 아버지의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오고서야 온 힘을 다해 걷고 있는 아버지 미간이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 신발 한 짝이 없다. 한쪽 신발은 너무 커서 헝겊을 칭칭 감은 듯 질질 끌고 걸어오고 있었다.
"아버지, 정말 왜 그래“
"신발은 어쩌고 이러고 있어, 도대체 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신발이 없으면 말해야지, 왜 맨발로 걸어오고 있어"
앙칼지게 갈라진 목소리에 놀란 건 나였다.
달빛이 선명한 골목길 한복판에서 아버지와 나는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왜,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왜 따져 묻지 않았을까,
왜, 원망하지 않았을까, 왜 당신만 두고 떠났냐고,
왜, 당신을 버렸냐고, 그 새벽에 가버렸냐고 따져 묻지 않았을까,
집으로 돌아와 상처투성인 아버지 발을 씻겨드리고, 된장찌개를 끓여 늦은 저녁을 먹었다.
아버지는 피곤하셨는지, 며칠 동안 제대로 못 주무셨는지 식사 후 코까지 골며 잠이 드셨다.
며칠 전 그날과 사뭇 다른 얌전한 아버지 모습이었다.
겁에 질린 엄마 전화를 받고, 시골에 내려가 마주한 아버지 모습은 난봉꾼에, 술주정뱅이 그 이상이었다.
무서움에 떨고 있는 엄마를 모시고 서울로 올라왔다.
아버지는 하루가 꼬박 지나서야 술이 깼고, 혼자 남겨진 불안한 마음에 무작정 서울행 기차를 탔다.
새벽에 도착한 낯선 곳에 술이 가득하고, 말벗들이 있었으니, 굳이 누군가를 찾아야 할 이유를 잊어
버렸던 거였다.
아버지는 매번 그런 식이었다. 남이야 (여기서 남은 가족) 뭐라건 나만 괜찮으면, 아무 문제 될 게 없는 분이셨다. 그 덕분에 엄마와 나는 그 반대의 삶을 살았다. 매번 전전긍긍했고, 아팠고, 도망치고 싶었다.
주1> 우리 자신의 삶의 중대한 사건들이 진행되고 있거나 발생한 직후에는 그 참된 연관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이해 할 수 있다.
딸의 운동화를 신고 눈을 밟는 내내 뽀드득, 뽀득, 빠아득 거리는 소리에 잠시 헝겊에 칭칭 동여맨 아버지 시린 발이 생각났다. 아버지 마음속에 도사리던 불안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는 서울역에서 돌아오는 택시안에서 집에서 왜 화를 내지 않았을까, 밉지 않았을까, 만약 아버지가 화를 냈었다면, 그날의 회상이 그리움이 될 수 있을까?
인생에 질문이 없던 삶, 주어진 삶이니 어떻게든 살아내려 애썼던 삶,
그 삶에서 나는 애착이 보였고, 서글픔이 보였기에 그립고 미안하고, 보고싶다.
그리움이 절절하게 보고 싶은 마음인 줄 알았는데,
침묵에 내려앉는 눈발 같은 마음이란 걸, 조금씩 알아간다.
주1> 인생론,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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