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에 잠든, 그리움

감정 속으로

by 바스락

시골집은 흙집이었다. 서까래가 듬성듬성 전깃줄이 얼키설키 천장이 금방이라도 손에 닿을 만큼 낮았다. 겨울이면 윗목은 고구마 더미로 가득 채워졌다. 대나무를 끈으로 엮어 안방 한 귀퉁이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만들어 그 안에 고구마를 가득 채웠다. 겨우내 간식이자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날이 추우면 화로에 고구마를 구워 호호 불어 보드랍고 뜨거운 노란 속살에 시원한 동치미 한 사발이면 충분했다. 낡은 집 여기저기 파고드는 겨울바람은 종종 코가 시큰거리고 발이 시려 이불을 코까지 뒤집어쓰고, 발가락이 이불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게 몸을 잔뜩 웅크려 엄마 옆에 착 달라붙어 잠이 들곤 했다. 엄마 심장소리에 내 숨소리를 맞추면 나는 엄마와 하나가 되었다.


엄마 품에 안겼던 나는 지금 엄마가 되었고, 아들은 내가 되었다. 아들이 품에서 새근거릴 때, 어린 시절 엄마 품에서 숨을 참고 코만 내밀던 기억이 아련하게 치고 올라와 목구멍이 무거워진다. 밤이면 내 품을 파고드는 아들은 종알종알 이야기하며 너스레를 떤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운데 겉으로 무뚝뚝할 때가 많다. 어린 시절 엄마의 따스한 품이 그리워선지, 아니면 서툰 엄마의 표현을 닮아서인지, 그때 나는 힘들다고, 아프다고, 감정을 편하게 말하지 못했다. 엄마품이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지금 아이들과 나누는 감정이 서툴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아버지의 월동 준비는 안방에 대나무를 엮어 거대한 대나무 원통에 고구마를 가득 보관하는 일이었다. 겨울 내내 풍족함을 느끼게 해 줬다. 그 일이 끝나면 방마다 문짝에 새 창호지를 붙이는 일이었다. 누렇게 변한 창호지를 떼어내고 새 하얀 창호지를 붙이는 아버지 손끝은 꼼꼼했다. 작은 틈새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맘껏 손재주를 발휘하는 아버지 옆에서 나도 분주했다. 일손을 거들며 뛰어다녔던, 나는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밝은 아이였다. 아버지가 창호지 바르기에 집중하실 때 나의 꽃 세상이 펼쳐졌다. 새하얀 창호지 문짝에 꽃 몇 송이 그리고, 허기침을 하던 아버지 눈치를 살피던 나는, 그 속에서 나만의 꿈과 행복을 그렸다.


“막내야, 이라고 해논게 깨갓하고 이쁘쟈, 사람 맴도 첨엔 이라고 허옇고 이쁜디 욕심히 생겨블믄 다 배러브러야, 남 해꼬지하지 말고 이라고 허연 세상 살어야 쓴다”

잔잔하게 들려오던 아버지의 짧은 말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며칠 전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다. 작은 정원이 있어 채소를 키워 먹는 재미도 있지만, 게으른 나에게 정원을 꾸미고 가꾸는 건 상상 속에나 가능한 일이다. 집을 보러 온다는 전화를 받고 제일 먼저 했던 행동이 거실과 베란다 사이 겨우내 설치했던 대형 비닐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남편은 어김없이 커다란 대형 비닐을 손수 제작해 꼼꼼하게 설치한다. 어릴 적 아버지와 내가 했던 월동 준비를 남편과 아들이 하고 있었다.

사람을 왜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는지 살다 보니 알 것 같다. 아버지와의 기억을 반추하면 촘촘하게 새겨진 슬픔만 튀어 오를 거로 생각했는데, 소꿉장난처럼 주거니 받거니 했던 소소한 기억들이 문틈에 머물러 있었다. 부정적인 감정과 힘든 기억에 고립되어 있던 나에게 새로운 추억을 일깨워 주는 건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어릴 때의 추억이지만, 작은 추억에 울고 웃는 청춘의 시간이 새벽녘에 예리고, 곱게 다가와 한참을 그곳에 머물렀다. 꽁으로 얻은 인생 같다던 아버지 인생을 꽁으로 만든 건 가족이었다. 보살핌의 대상으로 여겼기에 아버지에게 가장의 자리를 내어주려 하지 않았고. 위계도, 위염도 없는 방관자적 모습과 타인 같은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는 어느 쪽을 바라보고 계셨을까?



주 1> 나의 내면에는 많은 어둠이, 많은 부분의 아버지가 존재한다.

이 어둠을 빛으로, 한 방울의 빛으로 바꿔보려고 나는 평생 결사적으로 싸웠다.

그것은 연민이나 휴식도 없는 가혹한 투쟁이었다.


단 한순간이나마 잔혹성이 중단되게 내버려 두었더라면 나는 파멸했으리라.

그리고어쩌다가 승리를 거두더라도 뒤따르는 고민과 상처는 얼마나 괴로웠던가!


나는 순수하게 태어나지 않았지만 순수해지려고 싸웠다.

나에게는 미덕이 내 본성의 열매가 아니라 투쟁의 열매였다.

신은 그것을 나에게 그냥 주지 않았고,

나는 그것을 칼로 정복하기 위해 고생을 해야만 했다.

나에게는 미덕의 꽃이란 변형된 똥무더기였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못 한 미안함은 줄곧 나를 따라다녔다. 느껴본 적 없는 애정, 받아본 적 없는 관심, 엄마의 무관심, 아버지의 무능력함은 당연하다고 인정하며 자랐던 나 또한 아이들에게 밥 해주는 엄마, 최소한의 역할에만 충실했던, 아이들 감정에 무관심했고, 표현에 무능력했던 엄마였다.


아이들이 느끼는 공허가 나로부터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들의 행동은 순수하기에 절제되지 않는다. 추운 겨울 엄마 품을 파고들 때 고민했던 내 모습보다 엄마 품은 자기 것이라며 파고드는 아이들 행동에 행복하다. 판단하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아이의 순수함으로 부모님에게 안겼다면, 지금껏 품고 살았던 외로움의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관심받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이제야 하나씩 알아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아버지가 그리운 하루를 보낸다.


출처 : Pixabay



<겨울 창호지>


겨울 문틈 사이

새어 나온 추억이

겨울 틈 사이 차가운

어느 집 굴뚝 연기처럼 깨어난다.

채워진 기둥을 허물며

스치는 멍울이

끄집어내는 허물 사이에서

굳어버린 마음에

그저

쓰라림에 입김을 넣어주고 싶다고,



주 1> 영혼의 자서전 (1919년), 카잔차키스,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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