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사랑, 작은 사랑
오랫동안 죽음을 따라다닌 적이 있다. 사는 건 버티는 거다. 이 한 문장으로 살았던 시절, 잠들기 전 아침에 눈뜨지 않게 해달라고 조용히 기도했다. 버티는 감정이 때로는 숨통을 조여왔다. 그 증상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다.
공포, 몸에 걸치고 있는 옷이 묵직한 납덩이처럼 나를 짓누르고 손가락은 부풀어 올라 내 얼굴을 만질 수도 없이 두툼해졌다. 내 몸의 살점이 터져야 끝날 것처럼 온몸이 부풀어 오르던 공포,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나를 둘러업고 어둠을 달렸다. 파란 고무신을 짓이겨가며 뛰었다.
멀쩡하게 잘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그 이상한 현상은 점점 간격을 좁혀갔고, 몸은 삐쩍 말라갔다. 유독 밤이 되면 찾아오던 그 무직한 공포는 눈을 감을 수도 눈을 뜰 수도 없었다. 눈을 뜨면 뜬 상태로 사물이 나를 덮쳐왔고 눈을 감으면 어둠 속에서 목을 죄어왔다.
시방은 그 증상이 없다냐?
시간이 꽤 지나고 엄마가 혼잣말처럼 물었다.
그 증상이 무엇인지 나는 모르기에 괜찮다고 했다. 여전히 체력적으로 힘들거나 스트레스가 과하면 불현듯 손이 부풀어 오른다. 몸에 닿는 모든 것들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나를 덮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숨어버렸다. 달리 방법을 알지 못했기에 설명도 불가했다. 누구를 만나는 것도 힘겨웠다.
나는 나를 사랑했을까?
증상이 나타나면 철저하게 혼자가 됐다. 그러는 사이 친구들마저 하나둘 떠났다. 돌이켜보면 의지하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차단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은 마음처럼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마음. 그런 나의 패턴에 금이 가기 시작했던 건 남편을 만나고부터였다.
원망, 슬픔, 아픔, 미움, 내가 아버지에게 거부했던 감정, 나쁜 감정이라고 배척했던 감정들을 나는 이겨내는 방법을 모르고 살았다. 내가 버렸던 나쁜 감정, 회피했던 감정은 나 스스로 싸울 수 있는 힘을 소진시켰고, 행복을 느끼거나 표현하는 방법도 서툴렀다. 그렇게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랬던 내가, 마흔이 훨씬 넘어 사랑이란 타인 속에서 나를 새울 수 있는 본질적인 감정임을 알아가고 있다.
내 마음을 모르니 표현이 서툴렀고
내 마음에 자신이 없으니 매번 참는다고 회피하며 살았던 것 같다.
사랑을 통해 나는 지금 다른 감정을 배우고 있다.
사랑을 통해 나는 지금 다른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사랑을 통해 나는 지금 회피했던 내 삶을 직면하고 있다.
사랑을 통해 나는 지금 나로서 나를 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사랑을 통해 나는 지금 원망을, 미움을, 아픔을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다.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라고 포기했던 사랑의 감정은 모든 감정에 분절을
가져왔고, 단단한 껍질에 갇힌 나의 알몸은 괜찮다고 애쓰고 있었다.
찾는다 나는 사랑을
거부했다. 나는 사랑을
어두운 아이
슬픔이 있는 아이
억척스러운 아이
나의 동심은 사라졌고 살기 위해 버티는 힘만 길러졌다.
미치도록 답답하게 사랑을 갈구했던 건, 존재하지 않았던 어린 날의 나였다.
억척스러운 가스나라는 프레임, 몰캉하고 말랑한 핑크빛 아이이고 싶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따뜻한 손길에 녹아내리고 싶었다.
억척스럽지 않아도 빛나고 싶었다.
의무와 책임이 아닌 행복이고 싶었다.
슬픔과 아픔이 아닌 포근함이고 싶었다.
내일이 보이지 않은 현실이 아닌,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이고 싶었다.
사랑은 나에게 아픔이었다.
남의 집 앞을 서성거려야 하는 불안함이었다.
사랑은 있는 건가? 없는 건가?
사랑보다 책임
사랑보다 침묵
사랑보다 배려
분절된 감정
채워지지 않은 허기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너를 사랑할 수 있을까?
당신의 사랑이 나에게 와닿던 순간들이 분명 있었을 테죠? 분명?
#사랑#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