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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Nov 21. 2023

산에서 힘을 얻다.

그리움

동이 트기 전 자욱한 안개 속에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본다. 산에서 맞이하는 새벽은 평화롭다.

혼자서 여행을 시작하면서 그곳은 산이 되었다.


열아홉 회사 언니를 따라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상냥하고 다정다감했던 언니는 조용한 어투에 경상도 사투를 썼다. "짜야" 산에 가자 "짜야" 밥 묵자 "짜야" 이리온나 "짜야" 내가 왜 "짜야"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언니는 나를 항상 "짜야"라고 불렀다. 낯선 곳에서 "짜야"는 힘이 되는 소리였고, 언니는 산을 좋아한다고 했다.



처음 언니를 따라 산을 오르면서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던 것 같다. 산에서 들려오는 산새 소리와, 파릇한 나뭇잎, 신선한 공기가 허파를 통해 세포 하나하나에 활력소를 촘촘히 넣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고향에 온 기분이랄까? 혹시 나는 산에서 태어났나, 산에서 살아야 하나, 이유 없는 행복에 절로 웃음이 나왔고 체력적인 한계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마음은 평화로웠다.


그렇게 시작한 등산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야간 산행으로 이어졌고, 주말은 어김없이 산을 즐기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몸이 아프고 혈액 순환이 잘 안돼 손이 퉁퉁 붓는 날에도 산에 다녀오면 방전된 핸드폰을 충전한 것처럼 활력이 넘쳤다. 나의 이십 대는 산악인처럼 살았다. 짧은 민소매에 반바지, 등산화에 백팩 하나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나의 이십 대 7년 동안 휴가는 지리산 등반, 천왕봉에서 내려다보는 운해(구름바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운 그 자체였다. 지리산은 나에게 보금자리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야간산행과 설산을 등산하고자 산악회에 가입했고, 덕분에 혼자서는 가기 어려운 지방에 있는 산들까지 다녀올 수 있었다. 산악회 활동 중 백두대간을 함께 등반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산악회에 아는 사람은 총무뿐이라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백두대간을 제의했던 분은 오래전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버스에서 내리기만 하면 사라져 말을 걸 타이밍을 매번 놓쳤다고 했다. 그분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산악회에서 내 별명은 '산나' 였다고 한다. (산만 보고 가는 사람) 누가 왜 그런 별명을 지어줬는지 모른 채 산악회를 탈퇴했다. 백두대간 제의를 받고 고민하던 중 산악회는 더 이상 혼자만의 쉼터가 아니었다. 한 분 두 분 말을 걸기 시작하면서 나의 발걸음은 누군가를 의식했고, 앞으로 줄행랑을 칠라치면 누군가가 뒤를 따라와 말을 걸었다. 그 산악회가 좋았던 건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지에 도착하면 산을 타고 산을 타고 내려와서 버스를 타면 집으로 향했고, 원치 않으면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기에 대중 속에서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매력이 좋았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산만 보고 달렸는지 모르겠다. 


나에게 취미를 물어보면 등산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몇 해 전 아이들을 데리고 지리산 둘레길을 다녀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최고의 취미는 등산이었다. 마음은 예전처럼 행복했지만 저질 체력은 어찌할 수 없었다. 2박 3일 동안 아이들과 걷고 또 걷고 밤이 되면 퉁퉁 붓는 손과 얼굴을 보면서 예전에 '산나'가 그리워졌다. 이제라도 그 산악회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땐 내가 너무 어려서 챙겨주는 마음을 온전히 받지 못했노라고, 많이 감사했다고 꼭 전하고 싶다.


이십 대의 나는 산만 좋아했기에 다른 취미를 가질 생각을 못 했고, 삼십 대의 나는 일과 육아로 취미는 일과 육아였다. 사십 대의 나는 글을 쓴다. 현재 나의 취미는 글 벗들과 함께 글쓰기이다.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갑분글감#등산#취미#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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