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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Nov 06. 2023

숫자 안에 희로애락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해  

오늘도 숫자에 생명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해 본다.

숫자란 녀석이 사무실 공기와 분위기를 쥐락펴락한다.


새벽에 내린 비로 촉촉해진 공기와 이리저리 바닥에서 춤추는 노란 은행잎을 길동무 삼아

즐겁게 출근했다.


그 설렌 기분이 가시기도 전에 컴퓨터 전원을 켜고 머릿속에 저장되지 않은 숫자를 찾아

손도 마음도 분주하게 움직인다. (월요일 아침부터 또 시작이구나)


꽤 오랜 시간 나에게 밥벌이가 되어 준 숫자들.

샘도 약하고, 논리적 사고도 뛰어나지 못한 나는 어쩌다 보니 숫자와 연을 맺었고, 몇십 년을

동고동락하게 되었다.


때론 밤을 새워가며 숫자와 씨름을 했고, 때론 잘했다고 칭찬도 받았지만,

지금처럼 녀석이 풍선처럼 천천히 커지다가 무슨 이유인지 키와 몸무게가 작아져 갈 때는

원인일 찾고, 문제점을 해결해서 녀석의 몸집을 다시 키워야 한다.

배배 꼬여 버린 수수께끼 같은 녀석 마음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어디서 길을 잃었는지, 왔던 길을 찾아 다시 방향을 잡아 주면 된다.


결코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녀석은 이렇게 심통을 부리고 있다.

그 심통이 같은 길을 가는 이에게, 때로는 구경꾼에게 옮겨 가기도 해서,

심통을 부리는 날은 최대한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숨죽이며 녀석의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특히 녀석이 날뛰는 연말에는 쉿! 미동도 하지 말 것.



오늘은 왠지 녀석의 타깃이 내가 될 것 같은 불길함...

저번 달 보다 살이 빠진 이유는, 다이어트라도 시켰는지... 원인을 찾아야 한다.

연말까지 얼마나 더 찌울 수 있는지 목표치를 정해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대안이 통했다면 퇴근이요. 통하지 않았다면 야근과 호된 잔소리.


1+1=2이면  좋으련만 밥만 먹고 살 수 없으니 종종 술도 한잔하고, 신상 옷도 한 벌 사 입다 보니

2는 -2가 되어버렸고, 결국 녀석이 나를 또 야근 시킨다.

달래고, 어루만져 살을 더 찌우진 못했지만, 살이 빠진 원인은 찾았다.

녀석에게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옆구리에 살짝 사탕 하나 끼워주면, 발가락에 염증이 생기고 만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확한 원인을 찾아 답을 제시해야 한다.

정직한 녀석 그 매력에 나는 녀석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종종 주머니를 스쳐 가는 달콤한 보너스도 녀석의 힘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녀석 때문에 사무실 직원들이 숨 한번 크게 쉬지 못했다.

여기저기 한숨이 새어 나오고, 일그러진 표정으로 녀석을 쏘아보고 패대기친다.

네 잘못도 내 잘못도 아니지만 나는 호된 하루를 보냈고, 그 덕에 너는 새 단장을 하고

반듯한 까만 옷을 야무지게 챙겨 입었다. 남은 두 달은 이대로 쭉 갔으면 좋겠다.


잠시 너를 떠나 몸도 마음도 쉬어가는 곳으로 여행을 간다.

오늘 너와의 신경전으로 저녁 시간이 더 달콤해졌다. (맥주 한잔의 취기로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한 줄 요약 :  우리는 모두 월급쟁이, 괜찮아, 잘살고 있어.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글 쓰는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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