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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Nov 07. 2023

반갑다 친구야! (버스에스)

활짝 웃던 날

'왁자지껄' 버스 안은 온통 단발머리 여학생뿐이다.

여기서 깔깔, 저기서 깔깔, 눈만 마주쳐도 손뼉을 치고 발을 동동거리며 반가움을 온몸으로 표출한다.

아침 햇살처럼 신선한 미소를 폭발시키며 너도나도 웃음을 전하는 단발머리 여학생들.


내 고향은 월출산이 보이는 봄이면 벚꽃이 넘실거리는 아름다운 영암이다.

고등학교를 통학했던 나는 시외버스와 시내버스를 갈아타야 했고,

같은 학교 진학을 약속했던 친구들과 다른 선택을 했기에 낯선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중이었다.


(남자들의 학교로 알려줬던 기계공업고등학교에서 최초 여자 신입생을 모집했고, 그해 여학생 1기 신입생이 되었다. 원래 뭐든 처음 시작은 불협화음이 존재하듯 쉽지 않은 학교생활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총총 단발머리가 아닌 짧은 커트의 머리로 낭창낭창한 교복이 아닌 남색 실습복 차림으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깔깔거리는 여학생들의 싱그러움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터벅터벅 버스에 올라탔을 때, 많은 여학생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고운 친구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내가 가는 걸음만큼 나를 향해 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친구야, 우리 텔레파시 통했나 봐, 며칠 전 네 생일이었잖아, 만나면 주려고 선물 가지고 다녔어"

"어머 너무 신기해, 네가 이 버스를 탈 줄 몰랐어."


얼마나 반가운지 그 친구 얼굴에서 느낄 수 있었다.

지니고 다녔다던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가방에서 꺼내 방긋 웃으며 나에게 주었다.

선물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분명 그 순간 버스는 행복의 공간으로 바뀌었고, 이질적으로 느꼈던 단발머리 여학생들이 친근해졌다.

"중학교 때 나랑 제일 친한 친구야, 인사해"

새로 사귄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하던 친구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무슨 이유로 그날 그 버스를 탔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집으로 가는 버스도 아니었고, 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도 아니었다.

정거장에 멈춰 선 버스, 그 안에 흰 교복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여학생 무리에 동화되고 싶었는지,

분명한 건 버스를 타기 전 마음은 온통 까만색이었다면, 버스를 탄 후 마음은 파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겨울에 태어난 나는 매년 학기 초 아니면 겨울 방학 때 혼자서 생일을 보냈다.

새 학기가 되면 아이들은 생일날을 알려주면서 친해지기도 하는데, 나는 지나버린 생일을 말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내 생일날을 아는 친구는 많지 않았다.


후리지아처럼 산뜻한 그 친구는 중학교 시절 내내 지나버린 내 생일을 챙겨준 유일한 친구였다.

생각해 보니 지금도 여전히 내 생일을 챙겨주는 소중한 친구다.



한 줄 요약 : 글은 쓰면 쓸수록 어렵지만 작은 추억도 소환해 준다.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갑분글감#글 쓰는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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