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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Jan 15. 2024

출장에서 지방발령으로~ 그리고 깨달음

추억 만들기 시작

주말 끝자락을 부여잡고 출장 가방을 챙겨야 한다는 남편. 작은 속삭임이 일주일의 고단함을 알리는 걸까?

출장 가기 싫은 마음을 뭉그적뭉그적 표출하고 있는 저 남자 이해하고 싶지 않다.


출장을 다녀온 남편의 얼굴이 까칠하다. 출장으로 마무리되길 바라는 일정이 자꾸 꼬이고 꼬여서 지방 발령으로 이어졌다.


회사를 기준으로 집, 학교, 병원, 학원이 밀집되어 있어 혼자 하는 육아였지만 잘 버텨왔다.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아이들 병원을 다녀왔고, 아이들에게 문제라도 생기면 바로 달려갈 수 있는 거리라 지금까지 회사와 육아를 병행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남편의 출장은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두 아이를 앞뒤로 둘러업고 출근길에 회사 직원을 만나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땀범벅이 된 얼굴, 몸 여기저기 걸쳐 있는 보따리 정말 보이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

애써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고 나는 너를 모느니 그냥 지나쳐간다고 '쌩' 앞질러 갔다.


어김없이 출근하면 아침에 마주쳤던 직원이 인사를 한다.

아침에 대리님 봤어요~ 아이들 많이 컸던데, 근데 너무 힘들어 보였어요, 제가 가방이라도 들어 드리려 했는데 걸음이 어찌나 빠르시던지.... (그래 이 녀석아, 이제 그만하거라!!)


무거웠던 출근길도 진이 빠진 퇴근길도 아랑곳없이 아이들은 밝고 사랑스럽다.

말을 시작한 딸아이의 재잘거림, 여기저기 기어다니면서 온 집을 활보하는 아들. 두 녀석 먹이고 씻기고 나면 나의 하루는 꽉 찬 그 이상의 풍성한 하루가 되지만, 몸은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린다.


천사 같은 아이들을 재워놓고 마시는 맥주 한 캔. 그때는 몰랐다. 맥주인지 눈물인지 자꾸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액체의 흐느낌이 모여 이렇게 튼튼한 삶의 기반을 마련하게 될 줄은


서글픈 고단함, 혼자 버티고 있었던 메마른 눈물의 흔적을 남편은 모르고 있는 줄 알았다.

어느 날 남편은 팀 이동을 신청했고, 지금처럼 출장이 많지 않을 거라며 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둘째가 네 살 되던 해 남편은 팀 이동을 했고 더 이상 출장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업무 확장으로 남편 출장은 다시 시작되었다.

'여보 2박 3일은 내가 버틸 수 있는데 3박 4일은 버거워, 일정 조율을 잘했으면 좋겠어.'

처음으로 남편에게 부탁했었다.

(퇴근길에 누구라도 마주치길 바랐고, 잠깐이라도 아이들과 놀아주길 원했다.

웃는 얼굴로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 나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에 3박 4일은 내 감정을 감당하기에 너무 긴 시간이었다.)


다행히 출장은 2박 3일을 넘기지 않았고 덕분에 나의 바람처럼 나쁜 엄마는 되지 않았다. (내 생각)

미안함이었을까, 출장을 다녀온 남편의 가방에는 항상 빨랫감 대신 먹을 게 가득했다.

천안 호두과자, 공주 밤빵, 충주 사과, 안동 찰떡 제일 많이 사 온 건 호두과자, 아이들 나이에 맞게 장난감도 잊지 않고 사 왔던 것 같다.




긴 시간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는데, 노력보다는 현재에 안주하는 모습에 실망도 했었다. 하지만 그는 안주하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며칠 전 출장 다녀온 남편의 지친 모습과 거칠어진 얼굴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그도 쉽지 않은 시간을 묵묵히 보내고 있었음을 타지에서 불편한 잠자리에 고단한 몸을 의탁하며 쓸쓸한 하루하루를 버텨 왔을 텐데, 한 번도 힘들다거나 버거운 내색을 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출장은 여행이라 생각했고 항상 웃으며 출장지 얘기를 하는 그가 미웠다. 어쩌면 나는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확신하면서 스스로 불행을 가두며 살아오고 있었는지 모른다.




당신을 만나 많이 웃고 행복했는데, 당신 말처럼 무뚝뚝한 무말랭이처럼 칙칙하게 살아왔나 봐.

당신 지방 발령 나고서야 알았어. 당신 없는 시간과 공간이 얼마나 싸늘한지.

함께 있으면 웃음으로 가득 채워주는 당신에게 정작 나는 해준 게 없더라.

너무 듬직해서 너무 세심해서 너무 자신감 넘쳐서 난 당신은 슬픔을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어.


(다시 태어난다면 몇 살로 돌아가고 싶어?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 지금 너무 행복해. 다시 돌아가면 미래가 바뀌고 그럼 당신을 못 만나잖아.

나는 지금 당신을 만났으니까 돌아가고 싶지 않아)


얼마 전 내가 했던 질문에 남편의 대답. 장난으로 던졌는데 너무 진지한 태도로 말해서 머쓱했었다.

고마워요~ 나를 사랑해 줘서.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줘서.

이제는 내가 더 많이 표현하고 아끼고 보듬어 줄게요~



한 줄 요약 : 당연한 거 없더라, 당연하게 주는 사람 당연하게 받는 사람. 서로가 아끼기에 가능하더라.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남편#출장#발령#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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