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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Dec 28. 2023

우당탕 가족사진

내년에도 찍을 거야?

"이게 아니라고, 그냥 증명사진처럼 한 장만 찍으면 되는데!"

"아빠 그냥 좀 찍어, 어차피 찍으러 왔으니까 그냥 여러 장 찍자"


"그럴 거면 그냥 하루에 십 년 치 사진을 찍지! 뭐 하러 매년 사진을 찍냐?"


"작년에도 여러 장 찍으면서 재밌었잖아, 어차피 찍을 거면 그냥 찍어"

"아빠는 매년 너희 커가는 모습을 찍고 싶은 거야, 많이 찍는 건 의미 없어"

"아빠, 쫌"


말인지 똥인지 남편 투정이 귀에 거슬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제부터 남편 똑 닮은 작은 투정쟁이와 사진 찍으니 마네 실랑이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고, 다 큰 어른어리광까지 받아줄 마음은 전혀 없었다. 남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불닭볶음면을 원샷 한 듯 속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 나를 대신해 내 맘 내 편 같은 딸아이가 아빠에게 대적하며 응징하고 있었다.




연말이면 행사처럼 진행되고 있는 가족사진 촬영. 매년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사진 찍는 걸 싫어해 매번

곱이곱이 아홉 고비를 넘기고 달래야 챙겨준 옷을 입고 삐죽거리며 카메라 앞에 서는 투정이 아들.

운동복이나 내복 차림도 괜찮으니 평범한 일상을 한컷만 남기자는 남편.


다 안다. 다 아는데 어차피 예약 하고 한컷을 찍든 세 컷을 찍든 가격은 같으니, 다양한 포즈로 재미나게 그 시간을 즐기고 싶은데, 두 남자는 매번 혈압 오르는 소리와 속 터지는 투정으로 딸과 나의 설렘을 바사삭 붉으락푸르락 열을 오르게 한다.


시작은 남편이 했지만, 예약과 촬영 콘셉트는 내가 잡는다. 올해도 출장으로 바쁜 남편을 대신해 겨우 시간 맞춰 예약을 잡았는데 아들 친구 생일파티와 날짜가 겹쳤다는 이유로 아들은 일주일째 뾰로통. 아빠가 출장에서 돌아오고서야 "사진 찍으러 갈려고 했어요" 선심 쓰듯 생색이다. 어차피 친구 생일은 사진 찍고 가도 충분한 시간인데, 녀석 이럴 땐 참 밉다.





가족사진 동상이몽


큰 투정쟁이는 내가 준비하는 동안 침대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작은 투정쟁이는 소파에 앉아 게임 삼매경.

딸은 방에서 여전히 노트북에 코 박고 껄껄 웃고 있다.


왜 사진을 찍자고 했을까... 잠시 나의 허영심을 탓해본다. (근데 허영심 맞나?)

아들과 실랑이했던 그 순간 그냥 취소할 걸 후회를 한다. 겨울 찬바람은 옷이라도 여미지 이 냉랭한

공기는 어쩔꼬!!


부랴부랴 남편은 옷을 챙겨 입는다. 파란 추리닝 바지에 헐렁한 셔츠 (앗, 잠깐 헛웃음이 났지만 패스)

아들은 아빠가 건네는 운동복 바지에 어제 입었던 티를 또 입니다. (챙겨놓은 옷이 민망하다)

딸은 위아래 검은 옷을 입고서는 엄마, 옷이 이것밖에 없어. (네 옷장에 옷은 내 옷이니?)


도착한 사진관은 생각했던 것보다 잘 꾸며져 있었고 실장님은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이해 주셨는데 그러지

못한 우리 가족은 심드렁 4인 4색의 중구난방 캐릭터를 대방출하고 있었다.


친절하게 콘셉트를 설명하는 작가님에게... "그냥 대충 한 장만 찍어주세요"  "잘 나오지 않아도 돼요"

"있는 그대로 얼른 찍어주세요"  "자자 얼른 찍고 가자"  (남편 입을 잠금 처리하고 싶다)


그런 아빠는 아랑곳하지 않고 딸은 가족사진 콘셉트를 보며 "이거 괜찮다, 엄마 우리 이렇게 찍자"

다운되어 있는 나를 보며 하며 방긋 웃어준다. (사랑스런 딸, 너 때문에 산다)


"엄마, 한 장만 찍는다며 왜 그걸 고르는데" 작은 투정쟁이의 말에 참을 인을 마음에 새긴다.


"자자 얼른 이리 와봐 작가님이 하라는 대로 얼른 찍고 가자" 민망함에 아들을 달래고 남편에게 눈빛 레이저를 쏘아 보냈다. 그제야 남편은 아들 손을 잡고 콘셉트에 맞게 자리를 잡고 포즈를 취한다.

(처음부터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속을 까맣게 태우고서야 행동하는 저 심리는 뭘까?)


한층 부드러운 분위기로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됐다.

포즈를 취하면서 몸이 움직이니 잠들어 있던 세포들이 쭈뼛쭈뼛. 나중엔 웃음 세포가 툭툭 튀어나와 여기저기

킥킥... 컥컥... 까르르... 촬영장에 웃음소리와 고난도 포즈를 서로 잘하네 못하네 기분 좋은 투덕거림으로 우당탕 가족사진 촬영을 마무리한다.


매년 연말이면 서로 다른 의미로 가족사진을 찍는다. 

남편은 보정없는 날것 그대로의 우리모습을 원한다. 아 세월아 !

언제까지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시간을 이 순간을 차곡차곡 마음에 담아두며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비록 큰 투정쟁이와 작은 투정쟁이의 투정이 혈압을 최고치로 상승시키지만, 내년 이맘때

이 과정을 반복하고 있지 않을까?



한 줄 요약 : 가족은 사랑이다. 한결같은 사랑. 영원한 무한 사랑.



#라라트라이팅#라라크루#가족사진#연말#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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