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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Nov 22. 2023

누나는 세 번째야!

그래 그래

"엄마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그래, 그게 누구야"

"아니야" "말하지 않을래"

"엄마한테 말해줘"


잠들기 전 아들이 나와 밀당을 한다. 잠이 오지 않아서 일부러 말을 돌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정말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살짝 질문을 달리했다. 너를 좋아하는 여자 친구는 있어?

"누가 나를 좋아하겠어" 툭 한마디 하고서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

"엄마, 사실 나 좋아하는 여자친구 생겼어"

"그래, 좋아한다고 말은 헀어"

"에이 그걸 어떻게 말해, 그러다 싫다고 하면 이상하잖아"

"그래, 그럼 자자"

"아니, 엄마 아들이 좋아하는 사람 있다는데 자자고 하면 안 되지"

"말 안 해줄 거니까, 졸려 자자"

"아, 엄마 내 말을 좀 들어봐 누구냐면 엄마도 알아, 근데 엄마는 어떤 여자친구를 좋아해"

"글쎄, 여자친구 이름만 알지 성격이랑 얼굴을 몰라서 그냥 네가 좋다면 괜찮아"

"엄마, 그러면 안 돼, 내가 진짜 이상한 얘를 좋아하면 어쩌려고"


"좋아하는 마음엔 이유가 있겠지, 엄마는 그렇게 생각할게"


"사실은 OOO를 좋아하는데 왜 좋으냐면 씩씩하고 이국적으로 생겼어"

"엄마도 알잖아, 얼굴 봤지, 요즘 나한테 잘해줘"


그 후에도 아들은 그 친구와 있었던 일들을 소환해서 조잘조잘 이야기 꾸러미를 풀어낸다.



팔베개해야만 잠이 들던 아들.

무서움에 혼자 집에 있지 못해 이어폰을 꽂고 아들과 통화를 하면서 일을 했던 그 시간 속 아들.


어떤 날은 다 큰 녀석처럼 듬직하다가 어떤 날은 내 속을 다 뒤집어 놓는 아들.

수학 점수 15점 받을 때나 90점 받을 때나 항상 당당해서 할 말 잃게 하는 아들.

누나를 이겨 먹어야 직성이 풀리고, 모든 질투의 화살이 누나에게 쏠려 있는 아들.


잠이 든 줄 알았던 녀석이 조용히 속삭인다. 엄마, 그래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첫 번째 엄마, 두 번째 할머니, 세 번째 누나야, 네 번째가 그 친구야.

우아, 누나가 세 번째야 너 누나 싫어하잖아,

엄마, 누나는 내 가족이야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가족 누나 좀 싫기 한데 그래도 누가 좋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아들의 진심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말썽꾸러기 아들은 홀로 서기를 하는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아직 아들의 홀로 서기를 원하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다.


요즘 매일 하는 말 : 엄마 아들로 태어나 줘서 고마워 ~ (페르세우스 작가님 따라 하는 중)

첫날 반응 : 살짝 눈가가 촉촉해짐,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포옹으로 마무리 ^^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슈퍼크루#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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