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으면 느낄 수 있다.
나는 길치이다. 지도를 보면서도 길을 잃어버리는 데, 방향 감각이 전혀 없다. 직선거리에서도 중간에 한번 건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1분 동안 주변을 둘러봐야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 내가 고의적으로 길을 잃어버릴 리가 없다. 나는 국제미아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까.
대만과 일본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는 정말 난감했었다. 길을 잃어버린 2번 모두 같은 사람과 함께 했는데, 대만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 상대방이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나는 방향 알고 있었는데, 네가 당당하게 이쪽이라고 하길래 그냥 따라간 거라나. 그 이후 다시 역으로 되돌아오는 길을 잘 몰랐을 때는 현지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무사히 도착했다.
일본에서는 내가 가고 싶다고 했던 가게를 찾아가는 길 이였는데, 구글 지도를 믿고 가다 말 그대로 미아 상태. 결국 그 가게를 찾긴 했지만 정말 두 번다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다.
아침의 센강, 물이 범람했다. 오르셰 미술관 쪽에서 찍은 사진.
평소에도 걷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는 에펠탑에서부터 샹젤리제 거리를 거쳐 개선문까지 걷는 것이 무척 좋았다. 걷는 것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일 보다 많았다. 둘이 아니니 내가 길을 잃어버릴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걷다가 보고 싶은 게 있으면 아무 거리낌 없이 쇼윈도를 구경했다. 생각보다 파리는 차가 없었고, 대도시라는 느낌이 적었다.
센 강은 작았다. 그래서인지 세느강변을 따라 걷는 느낌은 마치 불광천을 따라 걷는 느낌이었다. 걸으면서 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것이 재밌었다. 그리고 불현듯 내가 저 사람과 다른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그리고 들고 있던 지도를 접었다. 지도를 들고 길을 찾으면 나는 관광객이지만, 지도 없이 발 가는 곳 대로 가다 보면 내 주변 사람들처럼 파리의 풍경에 녹아들 것만 같았다.
전날 미리 보아둔 자리에서 먹으려고 폴(PAUL)에서 구입한 바게트 샌드위치.
정말 내 영어 수준으로 어렵게 구입한 빵이다. 바게트 샌드위치는 생각보다 꺼슬꺼슬한데, 그래도 먹을만하다.
안의 채소와 고기가 맛있다. 돌아와서도 몇 번 생각났던 맛이다.
친구가 엄청 겁을 주었다. 하루 간격으로 파리에 놀러 온 어머니와 같이 공부하는 아이가 30유로씩을 소매치기당했다고 했다. 들은 이야기가 많아서 일까? 친구는 프랑스에서 지낸 기간이 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핸드폰을 손에 들고 다니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나는 허술했다. 한국에서 보다는 주변이나 사람을 조심하긴 했지만 경계하지는 않았다. 파리에서 집시들이 사인해달라는 거나 집 근처에서 영이 맑아 보이셔요~ 하는 거나 다를 건 뭐람. 게다가 누군가 나에게 해코지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내가 아무리 많이 조심을 해도 어느 순간 어떻게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해코지를 당한다면, 그것은 행동을 조심하지 못한 내 잘못이 아니라 나에게 나쁜 마음을 먹고 다가오는 사람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나의 태도 때문인지 친구나 다른 사람들에게 들었던 것처럼 소매치기라던가 불친절한 파리 사람들을 만나보지 못했다. 오히려 몇 번인가 도와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도와주는 척하면서 가방이나 돈을 훔쳐가는 사람도 있다니 조심해야 한다.- 친구는 나에게 네가 엄청 운이 좋은 거야 라고 말을 했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항상 조심을 하지만,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을 경계하고 싶진 않았다. 언덕을 올라오다 표지판과 지도를 번갈아 보면서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던 그때의 나를 보고 도와줄까? 했던 사람들의 얼굴과 표정을 그렇게 해석하고 싶지 않았다.
몽마르트르 언덕을 내려오는 길에 만난 가게. 쇼윈도가 정말 예쁘다.
고의적으로 길을 잃어버리고 나서 언덕을 내려오니 예쁜 가게들이 보였다.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지만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냥 눈에 열심히 담아 두었다. 예쁜 그릇, 액자, 책 모두, 프랑스에 갔으니 유행하는 컬러링 책을 사보아야겠다는 생각에 미술 용품점에서 열심히 컬러링 노트나 미술용품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나와 같은 것을 보려고 왔는데, 문이 닫혀있어 돌아갈 때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 내려오는 것도 재밌었다.
비를 맞으며 내려오는 것도 재밌었다. 우산을 들고 나왔으면 구경했을 룩셈부르크 공원을 지나갈 때, 들어가 보는 대신 나와 같이 걷던 아주머니가 여기 엄청 크고 예쁘다고 해주는 것을 듣는 것도 즐거웠다.
텔레비전에서만 봤던 랍비들과 학생들 그리고 그들이 들어가는 학교를 지키고 있는 군인들.
그러고 보니 내가 파리에 도착하기 전날 공항에서 폭발물 해프닝이 있어서 군인들이 조금 많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인지 무장한 군인들이 많았는데, 다니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아서인지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학교 앞에서 총을 들고 무장한 군인을 보니 무섭다는 느낌이 들었다.
글을 다 쓰고 나는 많이 썼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넷으로 보면 양이 적네요.
지도를 접고 다닐 때는 사진도 찍지 않아서 사진이 많지는 않아요.
수요일에 또 글 가지고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