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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맫차 Mar 08. 2020

예술과 인간, 그리고 그 안의 미술

이건수 산문집 '미술의 피부'

나처럼 예술과 미술을

수박 겉핥기로 틈틈이 찾아보고 배워보려는 사람에게

이 책은 조금 어렵다.


책의 제목인 미술의 피부를 온전히 느끼고 만지기엔 아직 많이 부족한 걸까.

다만, 한 세계(업계라고 하기엔 저자가 지내온 그간의 시간과 경험들이 너무 평가절하 되는 기분이다)의

오랜 전문가로서 그가 바라보는 미술에 대한 관점.

예술과 사람에 대한 인식과 관념에 대한 몇몇 문장들은 깊이 남았다.


'미술의 피부'지만

나에게는 결국 인간의 이야기 같았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그런 문장들이 많이 남았다.

(미술에 대한 이야기는 이해를 잘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여기서 중년을 관통하는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묻는다.

동시대와 섞여 살며 그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면, 시대의 화신이 되어 저 하늘의 별이 되었다면, 그 후부터는 어떻게 참신함을 유지하며 떠 있을지, 어떻게 해야 세상과의 아름다운 이별에 성공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_작가의 말 '상처, 현대미술의 상실' 중에서


p. 57

매스미디어의 생산자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는 그들이 대중을 교육하고, 대중의 생각을 만들어간다고 착각하는 데 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엘리트 의식이다. 그럴 때 쓰는 가장 쉬운 말이 '예술의 대중화'란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의 대중화가 진정 가능한 일일까? 그것은 예술의 다수화, 확산화, 확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소비하는 것을 예술의 대중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예술이 대중의 삶과 피 속에 녹아들어 가는 것, 예술의 수적이고 외적인 확산이 아닌 질적이고 내적인 잠입이 일어나는 것, 나는 그것을 '대중의 예술화'라고 부르고 싶다.


p.88

키치적인 인생뿐이랴, 키치적인 사랑도 있다. 진정한 사랑은 '그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그 사람이기 때문에 불 속이라도 들어가려 한다. 그러나 키치적인 사랑은 사랑의 대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대상과 지내는 순간순간의 느낌과 기분 때문에 사랑을 유지한다. 진실의 무시하고 쾌락의 과정을 중시하는 달콤 쌉싸름한 사랑이 키치적 사랑의 모든 것이다.


p.110

우리는 모두 속물이 될 수 있는 바탕을 지니고 태어났다. 속물은 인생의 모든 갈림길에서 자기에게 쉽고 넓은 쪽을 향해 달려간다. 조금 더 편해지기 위해, 조금 더 즐거워지기 위해, 힘들지만 지워져서는 안 될 가치들을 외면하는 것이 속물들의 근성이다. 그때 그들에게 돈은 독이 된다.


p.245

시오노 나나미는 이 영화(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표범')를 해설한 [파워와 품격]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결말을 내린다. "인간은 두 종류가 있다. 바로 어떤 종류의 일을 태연하게 실행할 수 있는 인간과 죽어도 할 수 없는 인간이다. 이 차이는 계급이나 교육 정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연령의 차이도 아니고 남녀의 차이도 아니다. 그렇다면 스타일의 차이가 아닐까. 일본어로 말하자면 품격일 것이다. 품격도 파워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는 순간, 그 사회는 자칼이나 하이에나의 손아귀로 떨어지고 만다."


p.253

자신을 생각하게 만들수록 좋은 예술이다. 좋은 영화는 졸릴 정도로 자신을 생각하게 만든다. 하나의 영상을 단초로 하여 수없이 많은 방향으로 자기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쁜 영화는 쉴 새 없이 출현하는 이미지로 다른 생각을 못하게 만드는 영화, 이미지가 출몰하는 사건의 경과만 목격하고 추적하는 데 급급하게 만드는 영화다. 킬링타임은 킬링씽킹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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