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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맫차 May 02. 2021

그럴때는 태엽감는 새처럼 말입니다.

내가 하루키의 글이 필요한 순간

무언가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하기 점점 어려운 나이가 돼가고 있다.

음악도 책도, 영화도.

그냥 뭐 이런 거까지 남들에게 알려야 하는 건가 하는 그런 투성이의 것들.


하루키를 적잖이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하루키를 좋아하는 편입니다.'라고 말하는 건

마스크 속에 코가 약간 찡긋 거릴 만큼 어색한 순간이다. 


그건 아마도 책에서 읽은 아래의 구절때문일지 모른다.

하루키를 좋아하냐고 물은 사람 중에 괜찮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정말이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최악의 플로우를 단계별로 밟다가 저절로 사라졌다. 저절로 사라진 이유는 내가 딱히 호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키를 좋아하냐고 묻는 남성은 하루키 소설 속의 남성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최악이다. 매주 같은 요일에 만나서(그러니까 나머지 요일엔 무얼 하는지 모르는)여자와 정기적으로 섹스를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폼을 잡고서 재떨이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한다. 스바루나 갖고서 폼을 잡든가.

_산책과 연애, 유진목

다시 돌아가서

하루키를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도 하루키의 글이 필요할 때가 있다.

특히나 손이 가는 곳에 놔두는 에세이 집이 아니라

'음.. 꽤 길어 보이는데'라고 중얼거리게 하는 소설책의 글 말이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는 아마도 이전 회사를 퇴직하기 전

법인카드를 써 마지막으로 구매한 책이고,

고민이 많던 시기에 결정을 내리기 위한 데드라인으로 용도로

묵묵히 읽어 나간 책이다.

(시간을 죽인다 혹은 시간을 기다리는 용도로, 태엽 감는 새처럼)


'노르웨이의 숲'을 제외하고 

하루키의 책을 읽고 나면, 사실 그 이야기의 세세함이 기억에 남지 않는다.

대략적인 이야기의 분위기 정도와 주인공의 잔상 정도만 남을 뿐.


'태엽 감는 새'도 그랬던 것 같은데,

그래도 이 소설의 주인공은 위 구절처럼 최악은 아니다.

스바루도 없고, 그 무엇보다 상실되었고 버려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도둑 까치 p.105

실제로 내가 청혼을 하기 위해 그녀 집에 갔을 때, 그녀 부모님의 반응은 몹시 차가웠다. 마치 전 세계의 냉장고 문이 한꺼번에 열린 것 같았다.


도둑 까치 p.135

"남의 집 마당에 무단으로 들어갈 때는, 호기심과 용기가 같이 작용하는 것처럼 보이지. 때에 따라서는 호기심이 용기를 자극해서 부추기기도 하고. 하지만 호기심은 대부분의 경우 바로 사라지고 말지. 용기만 먼 길을 홀로 나아가야 하고. 호기심은 넉살만 좋았지 신뢰할 수 없는 친구와 같은 거야. 너를 한껏 들쑤셔 놓고는, 적당한 선에서 슬쩍 사라져 버리는 일도 있고. 그렇게 되면, 너는 네 힘으로 용기를 끌어 모아 어떻게든 헤치고 나아가야 하지."


도둑 까치 p.227

"뭐라 말을 잘 못하겠는데, 믿어 달라는 말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군."하고 나는 말했다.

"당신이 믿어 달라고 하면, 믿어도 좋아."하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해 둬. 나도 언젠가 똑같은 일을 당신에게 할 거야. 그때 당신은 내가 하는 말을 믿어. 내게는 그럴 권리가 있어."


예언하는 새 p.182

"... 그러니까 우리가 진화하기 위해서는 죽음이란 게 반드시 필요한 거죠.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죽음이란 존재가 선명하고 거대하면 할수록 더욱이 우리는 죽을힘을 다해 생각을 하는 거죠."


새 잡이 사내 p.32

나는 그런 망상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마도 실제로 있었을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이미지에 적응해야만 했다. 현실을 적당히 밀어낼 수는 없다.


새 잡이 사내 p.360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뭘 해 본들, 상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운명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가져가야 할 것을 가져가고, 그것을 손에 넣을 때까지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새 잡이 사내 p.516

구미코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었던 것은, 내가 그녀의 원피스 지퍼를 올려준 그 여름날의 아침이었다. 그때 구미코는 누군가에게 받은 새 향수를 귀 뒤에 뿌리고, 그리고 집을 나간 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어둠 속의 목소리는, 그게 진짜든 가짜든 나를 한순간에 그날 아침으로 되돌려 놓았다. 나는 향수 냄새를 맡고, 구미코의 하얀 등을 떠올릴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기억은 무겁고 농밀했다. 현실 이상으로 무겁고 농밀했다. 나는 모자를 꼭 끌어 쥐고 있었다.


새 잡이 사내 p.542

"아저씨는 자신을 텅 비우고, 잃어버린 구미코 씨를 열심히 찾으려고 했겠죠. 그리고 아저씨는 아마, 구미코 씨를 찾았을 거예요. 그렇죠? 그리고 아저씨는 그 과정에서 또 많은 사람을 구했어요. 그런데 아저씨는 자기 자신을 구하지는 못했네요. 그리고 다른 어느 누구도 아저씨를 구하지 못했고요. 아저씨는 다른 사람을 구하느라 힘과 운명을 다 써버리고 말았어요. 그 씨앗이 한 톨도 남지 않고, 다른 장소에 뿌려졌어요. 주머니 안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죠. 그렇게 불공평한 일이 어디 있어요. 나는 정말 태엽 감는 새 아저씨가 불쌍해요. 거짓말 아니에요. 하지만 그건 결국 아저씨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어요. 아저씨, 내가 하는 말 알겠어요?"



연대기라고 부르는 3권짜리 긴 이야기를 다 읽었을 때,

나는 나만의 데드라인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 했다.


새로 나온 하루키의 에세이 집을 읽기 전에

이젠 다시 '노르웨이의 숲'을 읽어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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