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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근긍 Nov 05. 2016

#13 <바닷마을 다이어리> 시간 앞에 아름다운 추억

각자의 기억이 서로에게 스며들 때, 그렇게 우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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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의 부고가 갑작스레 바닷마을의 세 자매에게 날아든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이복동생 스즈를 만나게 되고, 혼자 남겨진 스즈가 마음에 걸린 큰 언니의 제안으로 네 자매는 함께 살게 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영화 속 사건은 혈육이라는 견고한 믿음으로 너무나 쉽게 해결된다. 가족이란 이름이 개인의 요구를 초월할 때 그것은 항상 아름다운 것 일까. 때때로 혈육에 대한 순진한 믿음만으로 영화가 전개될 때 나는 불편함을 느꼈다. 전작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보여줬던 가족 내의 진동에 대한 섬세한 시선이 이 영화에서는 투박하게 머물러 있는 듯 보인다. 때문에 이 영화를 가족이라는 소재로 평가한다면 아쉬움이 남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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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아버지의 장례식으로 시작해서, 이웃의 장례식으로 끝난다. 죽음은 영화 속 인물들에게 남겨진 깊은 흔적이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한계이다. 시간 앞에서 사람들은 떠나고, 오랜 시간을 함께한 가게들도 문을 닫는다. 모든 사라짐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흐르는 시간을 정지시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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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속에서 기억은 그 '유일한 방법'을 시도한다. 매실주는 사라져도 매실주의 맛은 혀끝에 남아있고, 아버지는 떠났어도 아버지와 함께 보았던 바닷마을의 풍경은 여전히 그대로다. 나에게 남아있는 과거의 추억이 너를 향해 전해졌을 때 나의 과거와 너의 현재는 만난다. 시간을 물리적으로 정지시킬 수는 없지만, 과거와 현재는 내가 가진 추억이란 이름으로 하나가 되는 순간, 시간의 흐름은 무용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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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아버지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죄인이 된 듯 말하기를 꺼리던 스즈는 언니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게 된 순간 지난 추억을 얘기할 수 있게 된다. 그 추억은 언니들과 스즈가 함께 나눴던 추억이 아니라 스즈만이 가지고 있는 기억이다. 그들은 종종 각자만의 추억을 가지고 있다. 큰언니는 어머니가 알려준 해산물카레를 추억하고, 셋째 언니는 할머니가 알려준 어묵카레를 추억한다. 언니들이 처음 먹은 잔멸치토스트는 스즈가 처음 먹은 잔멸치토스트와 다르고, 언니들이 아버지와 함께 봤던 풍경과 스즈가 아버지와 함께 봤던 풍경은 다르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가족이 되는 순간은 같은 추억을 공감할 때가 아니라 각자의 기억을 나눌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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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남매가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 불꽃놀이를 보고 온 저녁. 첫째 언니가 물려준 옷을 입은 막내와 할머니가 물려준 옷을 입은 첫째가 모두 함께 모여 조그마한 폭죽에 불을 지핀다. 세 자매의 키가 차례로 새겨져 있는 오래된 기둥에는 15살 스즈의 키도 함께 새겨지고, 할머니가 담근 매실주의 빈자리를 스즈가 담근 매실주로 채운다. 그렇게 과거는 현재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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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이 영화가 껴안는 가족은 혈연이라기보다는 기억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이다. 아버지 얘기를 듣고 싶으면 찾아오라는 아저씨의 말에 그 둘은 또 다른 가족이 된다. 영화는 분명 선한 사람이 품고 있는 따뜻함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온기는 거기에 가족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아름다운 추억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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