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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근긍 Nov 04. 2016

#12 <와이키키 브라더스> 그래도 그렇게...

희망이 없어 보이는 삶을 보면서도 응원하고 싶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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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무대 위에 촌스런 의상의 네 남자가 서있다. 이들은 밴드다. 연주 중에 기타를 치는 한 남자는 이것이 이곳에서의 마지막 무대라고 말한다. 카메라는 천천히 그들에게서 멀어진다. 이곳은 허름한 나이트클럽이다. 마지막 무대를 버티는 밴드 앞으로 중년 남녀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술에 취해 몸을 부대낀다. 춤추는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무대 위의 음성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번쩍이는 조명과 시끄러운 음악이 가득하지만, 무엇하나 화려하지 못한 이 공간에서, 마지막 무대를 하는 이들과 술에 취해 부대끼는 또 다른 이들이 쓰러질 듯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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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클럽에서 또 다른 나이트클럽으로. 지방축제의 효과음과, 가라오케의 반주로. 네 명이었던 무대 위 멤버는 하나씩 하나씩 줄어든다. 누구는 고향의 가족에게 돌아가서 역시나 허름한 무대를 전전할 것이고, 누구는 생계를 위해 그동안 지켜왔던 음악을 포기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 앞에서 춤추는 이들은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아니, 춤추는 이들은 그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들에겐 오직 몸을 흐느낄 수 있는 시끄러운 음악만이 필요할 뿐이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저만치 떨어져 점점 사라지는 무대 위 밴드를 지켜본다.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은 사라져 가는 저들을 바라봐 주는 것이다. 고등학교 축제에서 시끄럽게 "세상만사 모든 일이 뜻대로야 되겠소만 그런대로 한 세상 이러구러 살아가오"라며 락앤롤을 외치던 청년은 어느새 나이를 먹어 가사도 없는 뽕짝 블루스를 연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 친구들과 바닷가를 뛰어다니던 벌거벗은 몸뚱이는, 가라오케 구석에서 양주 한 잔과 던져진 팁에 강제로 벗겨져 차가운 기타로 겨우 감춘다. 거기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영화는 그 나약한 추락의 시간을 조용히 응시한다.


"너, 행복하니? 너하고 싶은 음악 하면서 살아서 행복하냐고.

우리 중에 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놈 너 밖에 없잖아. 행복하냐고.

진짜로 궁금해서 그래. 행복하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열심히 하면 원하는 것을 이뤄낼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듣기 좋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그 진의를 의심하게 된다. 그건 그저 성공한 사람들이 하는 회고록쯤이 아닐까.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이 내뱉는 '포기'라는 이름의 자기변명. 서로 다른 말을 내뱉는 그 둘은 모두 확신에 찬 목소리로 떠든다. 하지만 어디 그게 맘처럼 될까. 좋아하는 일을 위해 도전하는 삶도 안정을 위해 포기하는 삶도 어쩜 그리 하나 쉽지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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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그들은 무대를 찾아 새로운 곳으로 왔다. 이제 무대에는 두 남자와 한 여자가 있다. 그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신디사이저를 연주하는 카사노바의 저 눈빛이 불안하다. 서로에게 기댄 채 블루스를 추는 이들은 여전히 무대 위 사람들에 관심이 없어서 불안하다. 더 이상 락앤롤을 외칠 수 없는, 오직 손님들의 춤을 위해 연주되는 음악이 불안하다. 그래도 무대 위에서 그들은 노래한다.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 땜에 내일은 행복할 거야" 하지만 그들은 삶은 그렇게 쉽게 행복해질 거 같지 않다. 평생을 힘겹게 살아온 이들은 앞으로의 인생도 편치 않을 거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때문에 영화는 그들이 행복해질 거라 거짓말하지 않는다. 거짓말하지 못하는 영화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어느 한순간 쉬이 되는 일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계속 살아가 달라고, 그리고 살아가는 이들을 지켜봐 달라고. 그래서 마지막 영화 속에 노래는 불안하긴 하지만 더욱 간절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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