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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근긍 Mar 01. 2017

#17 <너의 이름은> 당신을 기억할게요

떠나간 당신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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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너의 이름은'은 기존 신카이 마코토 애니메이션의 연장선이다.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남녀와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는 마음이라는 테마는 초속 5cm 와 언어의 정원을 거치며 그의 애니메이션에서 꾸준히 반복되어왔다. 이러한 테마는 명확한 결론에 가닿지 않은 두 남녀의 관계에 희망의 끈을 부여하여 극의 마지막에 애잔함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러한 설정을 도입부로 가져와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애니메이션이 유독 사랑받는 이유는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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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소년이 그토록 막으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대답은 단순하다. 그것은 소녀의 죽음이다. 소년은 소녀를 죽음으로 이끌었던 과거의 재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끝없이 달린다. 결국 스스로 죽음을 향해 뛰어들어 소녀를 살려낸 소년은 몇 년 뒤 도쿄에서 소녀와 우연히 만남으로써 감동적인 마무리를 맞이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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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소녀가 갑자기 사라지자 자신이 소녀의 몸을 통해 봤던 이미지들을 쫓아 소녀가 살던 시골마을에 온다. 지역의 사람들에게 호수의 그림을 보여주며 묻지만 그들은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다 인근에 우연히 들른 라멘 가게에서 그림 속 호수를 알아보는 주인 남성을 만나게 되고, 그제야 그 호수 근방 마을이 3년 전 재난으로 인해 사라져 버린 곳임을 알게 된다. 이 순간은 나에게 가장 가슴 아픈 동시에 가장 충격적인 장면으로 기억된다. 호수의 그림을 알아보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기 전까지 소년은 인근 마을 주민들을 쫒아왔다. 하지만 그들은 수 백 명이 죽은 3년 전의 재난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제야 소년 역시 3년 전의 재난을 겨우 떠올린다. 3년 전 마을에 일어난 재난은 너무도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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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죽자 갑자기 소년의 핸드폰 속에 담겨있던 그녀의 기록이 사라져 간다. 물론 소녀는 3년 전에 이미 죽었다. 하지만 소년의 지각 속에서 소녀의 죽음을 알게 된 순간 소녀의 기록도 함께 사라진다. 소녀의 기록이 사라진다는 것이 소녀의 죽음이 아닌 죽음의 지각과 관련이 있다. 소녀의 죽음과 소녀에 대한 기억은 동등하게 위치한다. 죽음 이후에, 정확히는 재난 이후에 서로에 대한 둘의 기억은 무자비하게 사라져 간다.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서로의 이름은 떠오르지 않고, 종국에는 서로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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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소녀의 죽음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동시에 영화는 현실의 재난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공명한다. 영화 속 소년은 소녀를 살려낸다. 하지만 현실 속 우리에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앞서 이 애니메이션에서는 죽음과 기억을 동등한 위치에 놓고 있다고 얘기했다. 때문에 이 영화에서 죽은 자를 살려 놓는 행위는 잊혀진 자를 기억하는 행위와 같다. 기억해달라는 요청. 서로의 이름을 기억해달라는 외침. 이 영화의 제목은 누구냐는 호명이며 이는 결국 누구인지 기억을 하지 못한 우리에게 던지는 요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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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이후 혹은 후쿠시마 이후의 일본의 많은 영화들은 재난 이후의 일본 영화에 대해 고민했다.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416 이후의 한국은 재난 영화로 가득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몇몇 영화가 우리 마음속에 새겨진 트라우마를 겨우 다루고 있을 뿐 대부분은 단순한 재난의 모방과 부조리한 현실의 비판을 반복할 뿐이다. 현실을 모방하는 것은 너무나 편리한 방식이다. 하지만 동시에 매우 나쁜 방식이다. 이 영화가 다루는 기억하기라는 영화의 방식은 현실에 대한 무기력한 대답일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은 윤리적이다. 이 영화를 지지한 많은 이들은 동시에 그 대답에 대한 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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