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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근긍 Mar 03. 2017

#18 <퍼스널 쇼퍼> 그녀도 유령은 아닐까.

불투명한 대상 속, 나 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단지 내가 경험한 현대의 삶을 재현하려고 했다.
삶은 리얼한 물질세계와 우리가 상상으로 살아가는 추상세계로 이뤄져 있다.
후자는 유령의 세계이고 우리 모두는 유령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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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에 아사야스는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통해 그가 살고 있는 현대의 삶을 재현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삶은 '리얼한 물질세계'와 '상상의 추상세계'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이 영화는 두 가지 세계에 관한 것이며, 두 가지 세계를 통해 현대의 삶을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보고 있는  '현대의 삶'은 무엇일까?



'영매', '퍼스널 쇼퍼', '두 세계 속 모린'


영화는 숲길을 따라 다가오는 차로 시작한다. 차에서 내린 모린이 잠긴 문을 열자 거기엔 낡고 오래된 집이 있다. 루이스가 살던 집. 정확히는 죽은 루이스의 흔적이 남겨진 집. 어딘지 음침한 기운을 피할 수 없는 저택에서 모린은 루이스의 영혼을 기다린다. 그녀는 죽은 자와 산자를 연결하는 ‘영매’이다. 영화는 샤넬 매장 속 모린의 모습으로 다시 시작한다. 세련된 사람들 사이에 빛나는 화려한 의상. 그리고 키라를 대신해 명품을 구매하는 모린. 모린은 키라가 없는 빈 집에 자연스럽게 들어가 가져온 옷을 하나씩 옷걸이에 걸어 놓는다. 그녀는 옷과 귀금속을 대신 구매하는 ‘퍼스널 쇼퍼’이다.


모린의 두 가지 정체성 모두 무엇인가 연결하고 대신해준다. 죽은 자와 산자를 연결시켜주는 영매로서 모린은 죽은 쌍둥이 형제인 루이스의 신호를 기다린다. 음산한 분위기 속 루이스 집에서 영혼의 신호를 확인하지만, 그것이 루이스의 그것인지 모린은 물론 우리 역시 확인할 수 없다. 모린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그녀 스스로도 자신이 죽은 자와 산자를 연결하는 영매로서의 능력이 있는지 조차 의심한다. 다만 모린이 갑작스럽게 루이스를 죽음으로 몰았던 심장기형을 가진 쌍둥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때문에 죽은 루이스는 자꾸만 살아있는 모린에게서 죽음을 생각하도록 한다. 동시에 모린은 모델 키라를 대신해 옷, 신발, 귀금속 등을 구입해주는 퍼스널 쇼퍼이다. 그녀가 구입하는 제품들은 샤넬과 까르띠에로 대표되는 명품이다. 하지만 이 명품들을 그녀가 입어보는 것이 금지된다는 거리감 속에 그녀의 욕망이 깃든다. 매장 직원의 권유로 신발을 신으면서 그녀의 표정 속에 비치는 관능성과 키라의 옷을 입은 채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에서 명품에 대한 욕망은 성적 욕망과 공명한다.


그렇다면 인터뷰에서 그가 말한 현실세계는 고객에게 대리구매 서비스를 제공하는 퍼스널 쇼퍼로서의 모린이고, 추상세계는 죽은 자와 산자를 이어주는 영매로서의 모린이라고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남기는 불안함을 생각해보면 그 둘 사이의 구분은 그다지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



분리할 수 없는 두 개의 세계


루이스의 신호를 수신하기 위해 다시 찾은 그의 집에서 모린은 수도꼭지가 틀어져 있는 것을 본다. 더 강한 신호를 애원하는 그녀 앞에 영혼은 어떠한 환영의 형태로 등장해 그녀를 위협한다. 그리고 다음날 그녀는 갑자기 익명(Unknown)으로부터 메시지를 수신한다. 우리는 그 익명 메시지의 정체를 알 수 없다. 다만 루이스의 집 시퀀스에 이어 메시지를 수신한다는 점이 익명에게서 그녀를 위협한 영혼을 생각하도록 한다. 한편 익명의 메시지는 모린이 가진 명품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며, 그것을 조금씩 실천하도록 한다. 영매와 퍼스널 쇼퍼라는 직업을 모린에게서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루이스의 신호와 가질 수 없는 명품에 대한 두 가지 욕망은 서로 이어진다.


이 영화에서 가장 모호한 장면은 단연 호텔에서 나가는 장면이 두 번 반복되는 순간일 것이다. 모린은 방금 키라의 죽음을 봤다. 그리고 모린에게는 누군지 알 수 없는 익명의 대상으로부터 메시지가 오고 있다. 모린은 익명의 대상으로부터 오는 메시지를 피하기 위해 핸드폰을 비행모드로 변경한다. 키라의 집에 놓고 왔다고 생각한 귀금속이 자신의 집에 있는 것을 보는 순간 다시 핸드폰을 비행모드에서 되돌리자, 하나씩 수신되는 메시지는 익명의 대상이 점점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익명의 상대의 요청대로 호텔의 329호로 향하고, 그녀가 방에서 귀금속의 상자를 열려는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다음 쇼트로 이어진다. 이때 보이지 않는 대상을 찍은 4개의 쇼트와 잉고를 찍은 3개의 쇼트는 동일한 프레임으로 반복된다. 이후 우리가 모린의 죽음을 의심하는 순간 모린이 등장하고, 7개의 쇼트는 미지수로 남는다. 이 중 보이지 않는 대상을 찍은 쇼트가 추상세계의 쇼트라면, 잉고를 찍은 쇼트는 현실세계의 쇼트이다. 하지만 살아 있는 모린과 잡힌 잉고는 둘 중 어느 방향으로도 명백하게 해석이 불가능하다록 한다. 두 가지 방향으로 설명 가능한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방향이 있는 한 영화는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다.


아마도 모린이 병원에서 검진받는 장면은 두 가지 세계 혹은 두 욕망의 중첩을 보는 순간일 것이다. 심장질환이 발병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의사의 말에도 실제로 오빠는 그 질환으로 죽음을 맞았기에 모린에게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떼어놓을 수 없다. 이 씬은 모린의 벗은 가슴 클로즈업으로 시작한다는 점은 특이하다. 그로인해 하나의 씬에서 죽음과 성적 긴장감이 동시에 지각된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관능성을 보고 영화 속 모린은 죽음을 인식한다. 죽음을 지각하는 영매로서의 모린은 물질적 욕망과 성적 욕망에 뒤섞인 퍼스널 쇼퍼 모린 속에서 오간다. 두 세계는 분명 분리할 수 없으며, 하나의 세계 안에 속해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린은 욕망은 어디에 있나


모린이 신발을 신는 장면 속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표정이나 키라의 옷을 입고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모린의 성애적 욕망을 읽는다. 하지만 모린이 가지는 욕망의 대상은 불명확하다. 영화 속 내내 이어폰을 꽂은 채 홀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그녀의 욕망의 대상은 보이지 않는다. 동시에 이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남성들은 모린과 있을 때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려진다. 그녀의 쌍둥이 오빠인 루이스는 실제로 죽었다. 모린의 남자 친구인 개리는 스와이프의 뿌연 화면을 통해서만 등장할 뿐이고, 모린이 오만에 갔을 때조차 그곳에서 볼 수 없다. 키라의 집에서 그녀의 애인인 잉고를 처음 만나는 순간, 그는 철저히 모린의 시선 속에서만 존재한다. 이것은 라라의 새로운 애인인 오윈과 대화를 나누는 순간도 마찬가지이다. 대상 없는 성애와 존재하지 않는 인물. 죽음과 욕망 사이의 교집합이 가지는 공통점은 거기에 대상의 존재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두 욕망이 가지는 불명확한 대상. 이 순간 대상의 존재 여부는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와 무관하다. 실제로 영화에서 보이지 않는 대상이 보이는 것처럼 그려지곤 한다. 영화의 초반부. 모린은 죽은 루이스의 집을 방문하여 그의 신호를 기다린다. 사운드와 사물의 이동과 같은 방식으로 어떤 존재의 신호가 느껴지지만 그 대상은 보이지 않는다. 이 순간 카메라는 마치 누군가 모린을 바라보고 있다는 듯한 시선으로 그녀를 본다. 익명의 대상은 화면 속에 보이지 않지만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주체의 자리에 서있다. 영국으로 가는 기차에서도 모린은 익명의 대상으로부터 메시지를 수신한다. 주변에 있다는 익명의 대답에 카메라는 모린의 시선을 매개하여 주변을 둘러본다. 일상적인 사람들 속에서 메시지의 발신인을 찾는 우리는 화면에서 보이지 않는 대상을 지각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의 마지막에 'is it just me?'라는 모린의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모린도 유령이었을지 모른다.


영화의 마지막. 모린은 모든 것을 잊기 위해 남자 친구 어윈을 만나러 오만으로 떠난다. 하지만 모린이 어윈의 집에 도착했을 때 하필 어윈은 그곳에 없다. 그리고 거기서 허공을 떠나니던 물컵이 떨어져 깨진다. 모린은 알 수 없는 존재에게 루이스인지 묻는다. 대답이 없다. 그리고 묻는다. 'is it just me?' 긍정의 대답. 모린은 정면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화이트 아웃과 함께 영화는 끝난다. 때때로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려지는 영화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현실세계의 물질이 실제로 존재하는 가를 의심하게 한다. 영화 속에서 모린은 어떤 사람인가. 그녀는 영매로서 죽음을 인식하며 퍼스널 쇼퍼로서 명품을 욕망한다. 하지만 그녀의 인식과 욕망에는 대상이 없다. 혹은 그 대상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현실세계의 물질이 가진 희미한 존재는 보이지 않는 영혼이 가진 추상세계와 닮아 있다. 그렇다면 대상을 잃은 모린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아마도 보이지 않는 대상에 의한 영화의 마지막 대답은 동시에 그 존재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존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비유적 표현이다. 하지만 영화 속 홀로 남은 그녀의 존재는 분명 공허하다. 우리가 영화를 본 뒤 쉽게 떠날 수 없다면 그 공허함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퍼스널 쇼퍼’는 현대의 삶 속에서 우리의 존재에 대한 가장 씁쓸한 질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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