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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근긍 Mar 09. 2017

#19 <문라이트> 여전한 눈빛이 마음을 잡는다.

자신의 이름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하던 ‘리틀’이 길거리 마약상 ‘블랙’이 되기까지의 지질한 고통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세 개의 시간 속에서 희망이 무너져 가는 과정의 잔인한 반복만을 볼뿐입니다. 다만 그 폭력 속에서 버티고 사라지지 않는 것은 샤이론의 눈빛입니다. 부풀린 근육과 시끄러운 음악으로 자신을 감춰보아도 ‘블랙’의 눈에는 9살 ‘리틀’의 눈빛이 남아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당신이 그 슬픈 눈빛 속에서 눈물과 위로를 발견했다면 영화 ‘문라이트’는 당신의 마음 속에 오래도록 남게 될 것입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인물을 따라가던 카메라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인물의 주위를 돕니다. 방황하는 카메라 움직임은 케빈이 샤이론을 때리기 전에 다시 한번 반복됩니다.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카메라. 영화는 각각 ‘리틀’, ‘샤이론’, ‘블랙’의 소제목으로 시작합니다. 이 이름은 자신이 선택한 정체성이기도 하고 누군가가 자신을 호명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샤이론은 자신의 이름을 묻는 후안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며, 주변 인물들에게 계속 다른 이름으로 불려집니다. 샤이론의 위치 역시 저 카메라처럼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후안에게서 수영을 배울 때 카메라의 위치는 물 안과 바깥의 경계를 헤매고 있습니다. 물에 빠지지 않은 채 겨우 팔을 휘젓지만 여전히 위태롭기만 한 그 애매한 자리에 샤이론은 놓여 있습니다. 후안을 그런 샤이론에게 수영을 가르칩니다. 이후 “언젠가 무엇이 될지 너 스스로 결정해야 해. 그 결정을 아무에게도 맡기지 마”라는 후안의 대사는 물 위를 헤매는 샤이론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후안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해안가 장면은 케빈과 한 번 더 반복됩니다. 샤이론은 너무 많이 울어서 눈물로 변해버릴 것 같은 사람입니다. 케빈은 물속에서 눈물을 흘리면 감춰질 거라는 얘기해줍니다. 그리고 둘은 처음으로 서로를 만집니다. 친구의 괴롭힘으로 케빈이 자신을 때리는 상황을 겪은 뒤 샤이론은 세면대에 얼음물을 가득 채우고 얼굴을 묻습니다. 다음날 의자로 자신을 괴롭힌 친구를 가격한 뒤 그대로 경찰에 잡혀갑니다. 느린 속도로 담긴 세면대 장면에서 아마도 샤이론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면대 장면은 3부의 덩치가 커진 샤이론에게서 한 번 더 반복됩니다. 무언가 결심한 듯 얼음물에 얼굴은 묻는 샤이론은 눈물과 함께 자신의 모습을 숨겨버립니다. 식당에서 케빈의 말처럼 변화한 그의 모습은 어딘지 낯섭니다. 병원에서 치료 중인 엄마와의 대화와 10년 만에 만난 케빈의 집에서 샤이론은 눈물을 보입니다. 샤이론의 눈물은 단순한 슬픔이 아닌 숨겨뒀던 자신의 진짜 모습일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케빈에게 기댄 샤이론은 자신의 색을 찾은 듯합니다. 그렇다면 둘은 서로 함께할 수 있을까요. 여자를 만났던 케빈의 이야기와 아이가 있다는 말은 여전히 둘의 미래를 불안정하게 보도록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둘 사이 사랑의 지속이 아닐 것입니다. 샤이론은 이미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어지게 될 그의 삶이 평안하진 않겠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영화 속 결말은 케빈에게 기댄 샤이론을 응원하게 됩니다. 어스름이 스며든 바닷가에 한 소년이 서있습니다. 푸른빛을 가진 소년. 고개를 돌려 소년은 우리를 쳐다봅니다. 그 눈빛 속에는 샤이론의 슬픔과 함께 우리를 향한 질문이 담겨있습니다. 당신의 색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은 쉽게 대답하지 못한 채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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