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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근긍 Mar 19. 2017

#20 <로스트 인 더스트> 사라짐의 풍경

미국의 풍경에 대한 씁쓸한 생각.

빚더미에 시달리던 두 형제, 토비(크리스 파인)와 태너(벤 포스터). 가족의 유일한 재산이자, 어머니의 유산인 농장의 소유권마저 은행 차압 위기에 놓이자 형제는 연쇄 은행 강도를 벌인다.
한편, 베테랑 형사 해밀턴(제프 브리지스)은 치밀한 범죄 수법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수사망을 좁혀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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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시놉시스를 보고 우리는 '나우 유씨 미', '도둑들'과 같은 범죄 영화를 예상하게 된다. 하지만 단 한번 등장하는 자동차 추격은 난사되는 총과 함께 손쉽게 끝나버리고, 수사를 해야 할 형사는 늘어지듯 앉아 농담에 열중하는 영화를 보면서 당신은 실망할지도 모른다. 작년에 개봉한 이 영화가 회자되지 못하고 사라진 데에는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린 실망감이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황량한 미들랜드의 풍경과 남겨진 두 남자의 쓸쓸함은 이 영화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사라지는 것들의 풍경


이 영화의 풍경이 느리게 자동차가 달리는 황량한 도로라면, 어느새 사라져 버리는 것들은 영화의 사건이다. 때문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라는 의미를 가진 'hell or high water'라는 영화의 원제 보다도 영화 속 OST의 가사이기도 한 'Lost in Dust'는 이러한 영화의 분위기에 더 잘 어울리는 제목인 듯하다. 영화가 시작하면 카메라는 천천히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은행에 출근하는 직원의 발걸음과 은행을 절도하려는 차량의 움직임을 연결시켜 보여준다. 그 뒤의 이어진 토비(크리스 파인)-태너(벤 포스터) 형제의 절도는 어떠한 과장도 없이 간결하고 단순하게 진행된다. 은행강도 이후 속도를 줄이라는 토비의 말에 과속이 아니라는 태너의 대답처럼 영화는 결코 빠르게 달려가지 않는다.


토비-태너 형제가 벌인 은행강도의 배경에는 죽은 어머니가 농장을 담보로 받은 소액 대출이 있다. 농장을 물려받은 토비는 불어난 이자와 구할 수 없는 일자리로 인해 석유가 매장된 농장을 은행에 넘길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형제의 은행강도는 일확천금을 위한 수단이 아닌 대출을 갚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다. 때문에 형제의 범죄가 대출을 받았던 '미들랜드'은행만을 향하는 것도, 심지어 소액만을 탈취하는 것도 다분히 현실적인 이유에 근거한다. 토비의 목표는 은행강도가 아닌 이후의 안정된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비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선택하며 신중하게 은행 지점을 고른다.


형제의 은행강도 뒤로 비치는 이미지는 그대로 미국의 현실이며 범죄의 원인이 된다. 가스 채굴이 완전히 멈추고 석유 채굴도 줄어든 채 굴착기가 정지한 텍사스의 현실은 동시에 곧이어 석유 채굴이 줄어들어 일자리를 잃은 토비의 현실이다. 부서질 듯한 거리의 집들 사이로 낙서처럼 "IN DEBT?"라고 쓰여있는 은행의 대출 광고는 대출은 갚지 못해 농장을 은행에 넘길 위기에 처한 형제의 고통이다. 범죄에 사용된 자동차가 흙 속에 묻힐 때 보이는 포드의 엠블럼과 멕시코 이민자를 대하는 태도 역시 미국이 가진 위기적 상황과 그대로 공명한다. 어쩌면 달리는 자동차 뒤로 스쳐 지나가는 가동을 중지한 석유 굴착기와 채무를 부추기는 은행의 광고가 이 영화 속 실제 사건일지 모른다.



시스템에 대한 순응과 새로운 연대


대출을 갚기 위해 만난 변호사는 은행의 돈을 뺏어 빚을 갚는 행위가 은행에 대한 복수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것은 교활한 대출에 대한 개인적 복수로서는 만족스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형제의 범죄 행위가 미국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것은 현실에 대한 복수가 되지 못한다. 형제의 행위에는 사회에 대한 전복의 의지가 없으며, 은행에 다시 신탁금을 맡김으로써 시스템에 순응할 뿐이다. 은퇴한 형사 해밀턴(제프 브리지스)은 토비를 다시 찾아온다. 토비는 여전히 가족과 농장을 지키기 위해 서있다. 하지만 해밀턴의 행위는 범죄자를 처단하겠다는 정의감보다는 은퇴 후 할일없이 집에만 앉아있던 노인의 새로운 소일거리처럼 느껴진다. 토비가 해밀턴에게 할 말이 있거든 시내의 집으로 찾아오라고 했을 때, 해밀턴-토비는 유사 형제가 된다. 유난히 두 남성의 연대를 강조하던 이 영화가 토비-터너 형제와 해밀턴-알베르토 경찰의 연대를 거쳐 새로이 해밀턴-토비 두 남자의 연대를 형성한다. 시스템에 순응한 영화의 엔딩이 범죄자(터너)와 이민자(알베르토)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연대를 구축할 때. 그 결말은 미국의 미국의 현재와 이어진다.


다시 한번 이 영화가 미국의 현실을 다루고 있음을 상기해보자. 가장 미국적인 장르인 웨스턴의 풍경. 미국 하층 백인 남성. 범죄자에게 총을 갈기는 애국 보수주의자. 텍사스라는 지명. 거기서 범죄자와 이민자가 사라진 자리에 체제에 순응하는 남성의 연대. 나는 이 순간 지난해 11월 당성 된 트럼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여튼 그는 미국인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하층 백인을 그의 지지층으로 꼽았으며, 그 사회적 배경에 미국 내 제조업의 몰락, 일자리 감소 그리고 이민자의 유입 등을 말한다. 물론 지난해 8월 미국에서 개봉한 이 영화가 트럼프 시대를 예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쉽게 잊히지 않는 것은 황량한 텍사스의 풍경 속에 트럼프라는 현재가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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