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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근긍 Apr 02. 2017

#22 <피나> 움직임의 반복이 주는 감동

무용은 어떻게 영화가 될 수 있을까.

<피나 바우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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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하면 카메라는 무대 위로 향한다. 무대 위의 여성은 단순한 몸짓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을 그려낸다. '봄이 되면 돋아나는 새싹', '여름의 무성한 풀과 태양', '나뭇잎이 떨어지는 가을' 그리고 '겨울의 추위'. 줄지어 입장하는 무용수들은 그 동작을 반복하며 무대를 걸어나간다.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이 무용수들의 행렬은 무대를 지나 도심을 거치며 야외로 이어진다. 단순한 몸짓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마법. 그들의 몸짓을 바라보는 우리는 점점 마음에 따뜻한 동요가 일어난다.


2011년 개봉한 '빔 벤더스'의 영화 '피나'는 세계적인 무용수 '피나 바우쉬'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그녀의 생애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 없다. 테스트 촬영을 얼마 앞둔 2009년 세상을 떠난 '피나 바우쉬'는 그저 몇몇 영상 클립을 통해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대신 피나 바우쉬와 함께했던 동료 무용수들의 인터뷰와 무용을 통해 '피나 바우쉬'를 정보가 아닌 경험으로 느끼게한다.


도저히 말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그저 힌트를 줄 수밖에 없죠. 사실 말이라는 것도 뭔가를 떠올리게 하는 것 이상은 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춤이 필요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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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수들의 인터뷰에서 그들의 입모양 없이 표정과 나래이션만으로 그려진다. 무용수의 인터뷰 뒤로 무용이 이어질 때. 그들의 몸이 말을 대신해 언어가 될 때. '말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을 몸으로 그려진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인터뷰에서 조차 나래이션이 생략된 채 표정만이 보인다. 말을 대신하는 무용의 감정은 새로운 언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무용수들이 펼치는 몸의 움직임. 깊은 숨소리 사이 떨리는 표정. 뛰어오르는 몸짓 사이로 흩날리는 물방울. 여기서 우리는 어떠한 연출의 테크닉을 머리로 확인할 새도 없이 눈으로 경험한다. 영화 속 인터뷰에서 피나 바우쉬는 연습할 때 책상 뒤에 앉아서 무용수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느끼는 모든 것을 함께 느끼려 했다고 한다. 영화 속에 피나는 없다. 대신 피나가 책상 뒤에 앉아 무용수들을 바라 봤던 것처럼 우리도 카메라를 이용해 그 자리에 서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본다. 영화는 마치 피나 바우쉬가 느꼈던 경험을 우리에게 선사하는 듯하다.


동시에 한 순간도 영화라는 자의식을 놓치지 않는 감독 빔 벤더스는 단순히 보여주기에 머무르지 않고 영화만의 능력으로 무대 위 무용을 적극적으로 그려낸다. 특히나 영화의 중반부 '콘탁트호프' 에서는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무용수의 무대를 하나로 잇는 순간은 무대 위에서라면 불가능했을 경험의 축약이다. 영화는 이렇게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이뤄진 무용을 동시에 보여주며, 무대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방식을 통해 무용을 영화라는 장르 내에서 새롭게 완성해 낸다.


<카페 뮐러> in 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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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는 1980년대 중반부터 피나 바우쉬와 영화를 만드는 문제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하지만 실황 무대의 감동과 댄서들의 움직임을 스크린에 담아낼 방법을 찾지 못한 빔 벤더스는 이 영화의 제작을 미뤘다. 그러다 3D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이 영화를 2D로 본 나는 그 해답을 아직 확인하지 못한 것일까. 다만 '카페 뮐러' 속 반복되는 포옹이 불러오는 감동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그렇기에 3D 버전이 더 간절히 보고 싶다. 당신도 나와 함께 그 순간을 기다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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