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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근긍 May 14. 2017

#26 <파운더> 성공의 주문이 반복될 때

아메리칸드림의 욕망을 바라보는 불안감.

1954년 캘리포니아의 작은 레스토랑 '맥도날드'. 맥도날드의 혁신적인 스피드 시스템과 강렬한 황금 아치에 매혹된 레이 크록은 딕&맥 형제를 설득해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든다. 형제의 이념과는 무관하게 확장해간 맥도날드는 어느새 형제를 제외한 채 레이 크록의 맥도날드가 되어 간다. 'based on true story'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하는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레이 크록의 태도에 대한 가치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레이 크록은 시골의 작은 가게에 머물뻔한 맥도날드를 구원한 진정한 창업자인가 아니면 딕&맥 형제의 맥도날드를 갈취한 자본주의의 괴물인가.

반복되는 독백과 채워지지 않는 욕망.

우리가 영화에서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레이 크록의 정면 얼굴이다. 닭고기와 계란. 공급과 수요. 밀크셰이크를 둘러싼 일장연설. 방수 컵, 접이식 가구에 이어 멀티믹스 판매업에 뛰어든 레이 크록은 전국의 멀티 셰이크 가게를 돌며 자신의 멀티 믹서를 홍보한다. 하지만 이를 듣는 매장 주인의 반응은 영 신통치 않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정면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레이 크록의 모습은 마치 영화를 보는 관객을 바라보는 듯하다. 하지만 동시에 청자의 무관심과 정면을 응시하는 얼굴은 마치 거울 속 자기 자신에게 외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레이 크록은 매장을 방문할 때마다 마치 주문을 외우듯 같은 말을 반복하고, 반대로 주인들은 그의 말을 심드렁하다. 듣는 이의 무관심 속에 그의 말은 대상을 잃은 채 마치 독백처럼 반복된다.


그가 반복하는 말은 의식적 사고의 영역을 초월하여 무의식적 감각에 침투한다. 멀티 믹서 영업에 지친 레이 크록은 허름한 모텔에서 '긍정의 힘'이라는 이름을 가진 레코드를 틀어놓고 잠이 든다. 씬이 넘어가고 다음날 그가 운전하는 순간에서 레코드의 음성은 계속된다. 이때 이 음성은 그 순간 실제 하지 않으며, 레이 크록의 무의식 속에서의 지속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을 향한 강한 욕망의 번안이다. 결국 우리가 이 영화에서 보게 되는 것은 성공의 욕망을 향해 달려가는 레이 크록의 모습이 아닌가. 물론 욕망은 결코 충족되는 법이 없다. 새로운 사업을 계속하는 레이 크록에게 언제쯤이면 만족할 수 있냐는 아내의 물음에 그는 단호하게 만족하는 순간은 없을 거라고 말한다. 그 스스로도 자신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인지하고 있으나 이를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달금질을 계속할 뿐이다.

성공을 위한 도구 : 가족주의

딕&맥 형제를 설득해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든 레이 크록은 가맹주를 늘려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여념 없다. 하지만 골프 치기에 바쁜 부자들이 차린 맥도날드는 고유의 컨셉과는 달리 치킨 따위의 메뉴를 추가하며, 그저 그런 드라이브-인 레스토랑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때 우연히 그저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톨릭 성경을 파는 유대인을 만나 새로운 가맹주에 대한 컨셉을 발견한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맥도날드의 가맹점에서 열심히 일해줄 사람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는 그 뒤에 담긴 가족주의에서 사업을 확장할 동력을 찾는다. 그리고 그는 가족단위로 가맹점을 차리게 하여 프랜차이즈를 확장해 나간다. 가족들이 모이는 장소에 찾아 맥도날드 창업을 연설하는 그의 말에는 가족과 성공이라는 두 단어에 방점이 찍혀있다.


앞서 딕&맥 형제에게 프랜차이즈 사업을 설득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도 가족이라는 단어는 명확하게 그의 머리에 박혀있었다. 법원의 깃발과 교회의 십자가에서 가족이 모이는 장소를 발견한 그는 이를 맥도날드의 금빛 아치로 가져오려 한다. 하지만 이 말이 그가 가족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과 동의어가 되지 못한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자신의 가족을 지키는데 관심이 없다. 맥도날드 프랜차이즈에 뛰어들기 전에도 그는 언제나 출장을 다니며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사업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부인은 답답할 뿐이고, 그 대신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는 여자만이 매력적이다. 그에게 가족주의는 성공을 위한 도구로서 이용되고 가족은 성공을 향한 동반자로서 기능한다.

가족주의로서의 미국. 아메리칸드림.

가족에 대한 그의 역설적인 태도와는 무관하게 가족주의라는 아이디어는 지극히 가족을 중시하는 아메리카적 생각임에 틀림없다. 가족주의로서의 미국. 영화 속에서 아메키라라는 지역성은 중요하다. 성공의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던 '맥도날드'라는 상호명 역시 전형적으로 미국스러운 단어 아닌가. 법원에 걸린 성조기와 교회의 십자가에서 영감을 받은 레이 크록은 딕&맥 형제를 찾아 프랜차이즈 사업을 설득한다. "For America"라는 말과 함께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야 한다는 레이 크록의 말에는 가족주의와 아메리카가 그대로 담겨있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멀티 믹서 영업을 위해 미국의 도시를 누비던 레이 크록은 딕&맥 형제를 만나기 위해 지도를 펼쳐 서부로 향한다. 맥도날드 사업을 확장해가며 프랜차이즈 지점을 늘려갈 때마다 그는 미국 지도에 하나씩 깃발을 꽂으며 마치 영토를 늘려가는 개척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사진을 찍을 때 역시 사무실에 걸려있는 미국 지도에 꽂혀있는 깃발이 잘 보이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옛 미국 개척자들의 모습을 은유하는 것일까. 영화에 담긴 미국이라는 지역성은 이 영화의 서사를 아메리칸드림의 일반으로 보도록 한다.

편집증적 욕망을 바라보는 불안감.

영화의 마지막. 그는 결국 딕&맥 형제에게서 맥도날드를 빼앗아 자신의 그 주인이 된다. 연설을 준비하는 레이 크록. '끈기와 결단이 성공의 열쇠이다', '재능도 천재성도 교육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카메라는 영화의 첫 장면과 동일한 구도로 레이 크록을 정면에서 비추고 있다. 같은 구도의 첫 장면에서 레이 크록은 멀티 믹서 구매자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거울 속의 자기 자신을 보며 말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청자가 없이 홀로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장면은 다르지 않다. 그것은 여전히 홀로 외우는 독백의 주문이다. 그가 하는 말은 모텔에서 '긍정의 힘' 레코드를 통해 흘러나오던 내용과 동일하다. 그는 이것을 마치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내뱉는다. 레이 크록이 말하는 맥도날드의 시작은 딕&맥 형제가 만든 선버나디노의 맥도날드가 아닌, 일리노이에서 그가 열었던 맥도날드이다. 그는 그렇게 '긍정의 힘'과 '맥도날드'를 자기 것으로 덧씨운다. 이 순간 문득 문밖으로 옮겨간 카메라는 거울 앞에 서있는 그를 불안하게 바라본다.


하나의 장면으로 돌아가 보려 한다. 비록 짧게 지나쳤지만 레이 크록에게 비친 불안감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법원의 깃발과 교회의 십자가를 보는 장면에 앞서 그는 아내와 다툰 뒤 영화관을 찾는다. 이때 그가 보고 있는 영화는 1954년 말론 브론도가 주연한 엘리아 카잔의 '워터프론트'이다. 우연히 사귀게 된 여인의 사랑에 감화된 한 청년이 뉴욕 부두를 둘러싼 폭력과 정면으로 맡서는 이야기를 다루는 이 영화는 반공주의의 편집증으로 얼룩진 미국을 보여준다. 레이 크록은 이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가능성을 확신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부딪칠 사회를 확인한 것일까. '워터프론트' 속 반공주의의 편집증은 '파운드'에 와선 자본주의의 편집증으로 이어진다. 


반복되는 언어. 거짓으로 차용되는 내용. 반복되어서 내뱉어지는 레이 크록의 말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그 내용이 아닌 반복 그 자체이다. '닭과 달걀의 비유'를 거쳐 이제 '끈기와 결단'이 된 그의 주문은 그렇게 계속 반복될 것이다. 거기에는 아메리칸드림에 담긴 성공을 향한 편집증적 욕망이 있다. 영화의 마지막 카메라에 놓인 불안감은 자본주의의 욕망을 바라보는 불안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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