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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근긍 Jun 16. 2017

#28 <꿈의 제인> 거짓이 현실을 위로하는 방식

제인이 전하는 위로는 어떻게 우리에게 와 닿는가.

저는 태어날 때부터 진실하지 않았어요.
그거 아세요? 제가 처음 배운 말은 거짓말이었대요.
저는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 거예요.

영화는 몽환적인 미러볼의 불빛 속 소현의 나래이션으로 시작한다. 진실과 거짓말. 그리고 사랑. 후에 제인의 입을 통해서 다시 한번 반복되는 이 짧은 이야기는 이 영화에 도달하는 힌트이며 이 영화를 끌어안는 방법일 것이다.


영화는 거칠게 3부로 나눌 수 있다. 제인을 중심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가 1부, 폭력적인 가출청소년 패밀리의 2부, 뉴월드에서 제인과의 첫 만남인 3부. 1부와 2부는 인물의 관계부터 화면의 질감까지 전혀 다른 방식을 하고 있다. 몽환적인 화면의 1부와 투박하고 경직된 질감의 2부를 나란히 놓고 보면, 1부를 꿈 혹은 환상으로, 2부를 현실로 인식하게 한다. 특히 2부의 시작 장면에서 술 취한 듯 누워있는 소현의 모습은 이전의 몽환적인 화면을 그녀의 꿈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부를 단순히 고통받는 소녀의 욕망이 반영된 짧은 환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영화의 감동에 어울리지 않는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1부 중 모텔에서 나누는 소현과 제인의 대화에서 영화의 감동에 대한 힌트를 찾아볼 수 있다. 소현의 새끼발가락이 조금 짧은 것을 보고 불편하지 않냐 묻는 제인에게, 소현은 가끔 발가락이 있는 것처럼 가려움을 느낀다고 대답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느끼는 환상. 반면 남자로 태어난 여성인 제인에서 성기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무언가이다. 소현의 발가락과 제인의 성기 모두 실재와 환상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서 어느 하나를 확신할 수 없다. 영화의 1부와 2부 역시 현실과 환상의 양분화가 아닌,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환상인지 확신할 수 없는 경계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수동적으로 아무런 말도 못 한 채 이끌려 다니는 2부의 소현과는 달리 1부에서 자신의 진심을 얘기하는 소현의 모습이 현실일지 모른다. 반대로 불현듯 반짝이는 화려한 불빛을 응시하는 2부에서의 시선은 환상일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소수자로서 그녀의 삶이 가지는 비극성을 현실로 여기며, 1부에서의 낯선 안락함을 환상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영화는 간단히 그 경계를 허물며 고통의 서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상투성에서 멀리 떨어지려 한다.

과거와 현재의 경계에서


현실과 환상의 문제 외에 하나의 특이점을 더 얘기해야 할 것 같다. 1부는 모텔에서 자살을 결심하는 소현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자살을 앞두고 있으며 동시에 누군가 나타나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는 2부에서 후반부에 위치한 사건이며 죽음 이후의 시간이다. 두 사건 모두 유사 엄마의 죽음과 연루되었다는 공통점을 지적할 수 있지만, 하나의 도착점이 다른 하나에서는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서로 반대방향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즉 1부는 자살을 결심한 소현으로 시작하지만, 2부는 자살을 결심하는 소현으로 끝난다.


이외에도 1부에서 있었던 사건들이 조금씩 변형되어 2부에 등장할 때 1부와 2부는 데칼코마니처럼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어딘지 닮아 있으나, 앞뒤가 바뀌어있는 이야기. 때문에 영화의 시간성은 서사의 시간성과 무관하게 느껴진다. 특히나 영화의 도입부에서 삽입된 시신을 뒤로한 소년소녀들이 잡담을 나누는 인서트와 뒤이어 등장하는 유사한 장면은 단순히 환상에 대한 힌트만이 아닌, 과거와 현재 사이의 시간적 흐름을 훼손시키고 있다. 영화의 시간적 흐름이 선형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영화는 절망적 현재에 이어 3부의 과거의 순간으로 이어진다.


허물어진 경계가 주는 위로


3부는 소현이 처음으로 뉴월드에 찾아온 시간을 그리고 있다. 장사에 방해된다며 쫓겨난 소현을 제인이 쫓아온다. 뉴월드를 다시 찾아온 소현의 눈에 비친 제인의 모습과 제인이 'unhappy'도장을 소현에게 찍어주는 장면이 시간적으로 무관하게 교차되는 지점은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일 것이다. 슬로모션으로 걸어오는 제인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의 3부에서 평범한 소현의 태도와 달리 제인은 어딘지 판타지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특히나 무대 위에 서있는 그녀의 이미지는 평범하지 않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제인과 그녀의 노래를 듣고 처음으로 환하게 웃는 소현의 모습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영화는 과거를 통해 위로를 전한다. 어쩌면 그것은 희망 없는 삶을 살아갈 소현의 미래를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우리 중 누구도 소현의 미래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 다만 그녀의 짧았던 과거의 행복으로 돌아갈 볼뿐이다. 그렇기에 영화는 현재와 과거의 시간성을 모호하게 만들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과거를 그저 지나가버린 이야기가 아닌 것으로 환상을 단지 현실의 욕망이 아닌 것으로 만든다. 때문에 소현의 미소 짓는 과거의 한 순간은 그녀의 미래가 되고, 그 한순간의 행복으로 행복하지 않은 나머지를 견디고 산다는 영화의 전언은 우리에게 와 닿는다. 거짓은 그렇게 삶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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