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의 내일> 내일의 얼굴을 보다.

영화 속 '본다'는 행위에 대해서

by 윤근긍


돌멩이를 던진 이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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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후반부. 로메오는 애인의 아들, 마테이를 데리고 놀이터를 찾는다. 작은 놀이터에선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이때 마테이는 질서를 지키지 않는 아이들을 향해 돌멩이를 던진다. 로메오는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마테이의 반문에는 대답하지 못한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로메오의 집 창문을 깨트린 돌멩이를 떠올린다. 엘리자의 졸업시험을 쫓아 진행된 영화를 통해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루마니아의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부패이다. 정치인은 간이식 우선순위를 바꿔달라고 말하고, 시험 감독관은 엘리자의 시험지를 빼돌리겠다고 한다. 그렇기에 로메오의 창문을 깬 돌은 사회의 부패를 향해 던져진 것이다. 그런데 그 돌은 던진 것은 누구일까. 돌멩이를 던진 이는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집으로 날려든 돌이라는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아 보인다.


영화는 이른 아침 로메오의 집 앞 풍경으로 시작한다. 정지해 있는 자동차.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남자. 화면의 오른쪽 구석에선 누군가 구멍 속에서 흙을 퍼 올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흙을 푸는 인물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갑작스레 로메오의 집 창문으로 날라든 돌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깨친 유리창일 뿐이고, 돌을 던진 인물은 볼 수 없다. '엘리자의 내일'에서 '본다'는 행위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못보고 지나가거나 희미하게 볼 뿐이다. 엘리자가 폭행을 당할 때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그들 중 누구도 범죄현장을 보지 못했다. 혹은 못 본 척 한다. 그것은 엘리자를 만나기 위해 왔던 남자친구도 마찬가지이다. 엘리자 역시 용의자 네 명 중 범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들은 정말 보지 못한 것일까. 혹은 봤지만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까. '엘리자의 내일'에서 '본다'는 것은 어떤 한계에 놓여있는 듯하다.



로메오는 보는 것을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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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문제에 대해서 가장 긴밀하게 얽혀있는 것은 단연 로메오이다. 오직 그만이 창문을 향해 돌을 던진 남자와 엘리자를 폭행한 남자를 본다.(물론 그 남자가 정말 범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창문으로 향해 날아든 돌을 보고 재빨리 밖으로 나가 상대를 쫓지만, 기차 뒤로 어렴풋이 서있던 상대는 이내 사라진다. 한참이 지난 후, 경찰서에서 집으로 돌아 오는 버스 안에서 창밖으로 엘리자를 때린 범인과 비슷한 실루엣의 남성을 본다. 그를 쫓아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오지만, 부스럭거리는 소리로 공포에 휩싸여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온다. (이 상황은 사회를 바꾸겠다며 뛰어들었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어느새 똑같이 부패해져버린 그의 모습과 닮아있다) 두 장면에서 모두 로메오는 범인을 본 듯하지만 흐릿한 형체로 인해 대상을 알아볼 수 없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상대를 놓치고 만다. 그는 봤어야할 대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런데 그의 시각적 무능은 단순히 앞서 다른 인물들이 보여줬던 한계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그는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볼 자격이 없는 것인지 모른다.


영화의 도입부. 엘리자를 태우고 학교를 가는 차 안에서 로메오의 핸드폰이 계속 울린다. 잠시 통화를 마친 그는 급한 일이 있는 듯 엘리자를 조금 일찍 내려준다. 그리고 그가 향한 곳은 애인인 산드라의 집이다. 한편 차에서 조금 일찍 내린 엘리자는 등굣길에 폭행을 당한다. 엘리자가 폭행을 당한 시점에 로메오가 애인의 집으로 향했다는 사실은 로메오를 범죄의 원인과 무관하지 않게 한다. 그리고 범죄의 결과를 무마하기 위해 로메오는 부패한 사회의 일부분이 된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그의 핸드폰은 강박적으로 울린다. 그럼에도 그는 전화를 받지 못한다. 혹은 받지 않으려 한다. 거기에는 그날 아침의 전화 통화와 딸이 당한 폭행을 연관 지어 생각하는 로메오의 죄책감이 있다. 그는 핸드폰의 소음을 탓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든 그는 의도와는 달리 ‘듣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보는 것’에 실패한다.


로메오는 검찰이 자신을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경찰인 친구를 찾아간다. 왜 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경찰들은 산 중턱에서 주변을 살피고 있다. 그들의 손에는 보란 듯이 망원경이 쥐어져 있다. 로메오와 경찰은 산 너머의 아름다웠던, 지금은 나무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과거의 풍경을 얘기한다. 그러나 그 풍경은 카메라에 담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조차 시선을 두지 않는다. 망원경을 들고 반대편을 바라보는 그들의 행동은 과거의 아름다웠던 풍경을 볼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시각적 불능이란 그들의 태도에는 과거의 그림자가 뒤엉켜 있다. 로메오는 바꾸지 못한 과거를 반복해서 되뇐다. 그가 엘리자의 졸업 시험에 집착하며 이곳을 떠나라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로메오에게 과거는 가능성이었지만, 이제는 바꾸지 못한 불가능의 시간이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과거를 보지 않는다. 대신 이곳을 떠나라고 말한다. 바꾸지 못한 과거의 시간은 그대로 시각적 불능으로 이어진다. 바뀌지 않는 지금에서 탈출하라는 로메오의 말은 대상을 보지 못한 채 귀를 닫아버리는 로메오의 태도와 닮아 있다.



내일의 얼굴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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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당한 범죄와 로메오의 불륜이 연관이 있다는 듯 할머니가 쓰러졌을 때 로메오는 산드라와의 관계를 엘리자에게 들킨다. 엘리자는 외도 사실을 엄마에게 말해야 졸업시험을 칠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 쇼트에서 카메라는 창문을 통해 집 안에 있는 아내를 비춘다. 집 안의 모습을 담을 때 언제나 좁은 실내에 머물던 영화에서 창 밖에 나가있는 카메라의 위치는 낯설다. 창밖의 시선. 유리창. 그것은 영화의 도입부에서 창문을 향해 돌을 던진 자의 시선과 공명한다. 잠시 뒤 화면으로 로메오가 들어온다. 로메오는 돈을 던진 자의 위치에 자리한다. 딸이 당한 폭행과 무관하지 않던 그는 어느새 집 안에 돌을 던진 자의 위치에 서있다. 영화에서의 사건은 엘리자가 당한 폭행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부패한 사회이다. 부패한 사회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로메오는 돌을 맞은 동시에 돌을 던졌으며,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이다. 때문에 로메오의 어떠한 노력도 실패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누구도 엘리자를 구해줄 수 없다. 엘리자의 졸업시험을 둘러싼 모든 부패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불길하게 남겨져 있을 뿐이다. 돈은 건넨 정치인은 죽었고, 감독관은 더 이상 자신을 찾아오지 말라고 한다. 엘리자를 폭행한 범인 역시 잡히지 않았다. 엘리자의 졸업식. 결국 엘리자는 아버지의 방식을 따르기를 거부했다. 그렇지만 눈물을 흘렸더니 시간을 더 줬다는 엘리자의 말이 세상을 향한 기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녀가 어른들의 방식과는 다른 길에 들어섰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산드라의 아들 마테이는 로메오를 따라 잠시 병원에 들른다. 검찰이 머무르는 방과 마테이가 머무르는 방은 마치 다른 세계인 듯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이 장면에서 마테이는 공간 속에서 철저히 이전 세대와 갈라져있다. 가면을 쓴 채 불길하게 등장하던 마테이가 이 순간 가면을 벗어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영화는 엘리자와 친구들의 정면 얼굴을 보여주며 끝난다. 마테이와 엘리자.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 우리는 그들의 얼굴을 똑바로 본다. 거기서 영화는 본다는 행위의 불능 상태에서 일시에 해소된다. 마지막 장면이 기억에 남는 것은 일순간 드러난 선명한 얼굴 때문일 것이다.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는 것은 선명한 얼굴을 한 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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