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게 되다니

2017년, 영화와 나에 대한 어떤 기록

by 치슬로





그러니까... 영화가 나한테로 왔어


처음으로 혼자 본 영화 <캐롤>


태어나 처음으로 영화관에 혼자 간 것은 2017년을 앞둔 25살 겨울이었다. 단순히 놓쳤던 영화 <캐롤> 을 보고 싶어서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처음 개봉된지 1년 즈음 되었을 때였는데, 2016년 연말을 기념해 사무실 근처의 상상마당 시네마에선 이 영화를 매일매일 틀고 있었다.

영화 속의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는 아름다웠지만 이야기는 내 생각만큼은 와닿지 않았고, 영화관을 걸어 나오면서 나의 첫 '혼영' 경험은 일종의 해프닝처럼 지나가고 잊혀졌다. 그 당시만 해도 나에겐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본다는 건 아직은 너무나 어색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 '해프닝' 이후로 3개월이 지나 인생에 있어 이별이란 큰 사건이 찾아왔다. 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나는 얼떨결에 '영화 감상' 이라는 옵션을 집어들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항상 같이 영화를 보았던 그 사람에게 소심한 복수를 하기 위함이 두 번째 이유였다. 그렇게 그가 절대로 보지 않을 것만 같은 영화들을 나 혼자서 하나 둘 섭렵하기로 결심했고 '혼영러' 로서의 첫 발걸음을 딛게 되었다. 그리고 그 주에만 나는 4편의 영화를 봤다.



난 당신의 위로를 찾아 끝없이 헤매었을 뿐이오 <문라이트>

커다란 결심 후 처음으로 본 <문라이트> 에선 영화의 원제처럼 흑인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달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났다. 동시에 끝없이 위로를 찾아 헤매었던 한 인간을 만났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자신에게 매혹당하는 건 얼마나 야릇하고 섬뜩한 일인지. <퍼스널 쇼퍼>

다음으로 본 <퍼스널 쇼퍼> 에선 혼자 피와 불안이 난무하는 공포영화를 본다는 설렘과 함께 쏜애플의 가사 속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거울 앞에서 맛보는 절정" 을 함께 체험했다. (주인공이 자위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른 해석들에서는 '이미 죽은 쌍둥이 오빠를 향한 근친상간적인 행위다' 라고 말하던데, 나는 전혀 다르게 봤다. 나에 의해 내가 대상화되는 그 이상야릇함이란... ) 결말마저도 여러 의미로 무서워서, 두고두고 생각나는 영화였다.



MV5BMTc4MDU1NTYxNV5BMl5BanBnXkFtZTcwMTkxNDcyNA@@._V1_.jpg <바그다드 카페> 를 보고 나면 '환대' 라는 단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된다


그리고 몇년간 벼르고 별렀던 영화 <바그다드 카페> 를 보던 날엔 Jevetta Steele의 'Calling You' 를 들으며 자취방에서 목을 놓아 울었다. 그 노래엔 '나' 를 더 나은 삶으로 부르고 있는 대상이 누군지 명확하진 않지만, 나의 경우엔 어쩌면... 나를 부르던 그 존재는 영화였을 것이라 감히 생각해본다. 영화를 택한 순간 내 인생의 많은 것들이 아름다워졌기 때문에.


항해자들


어느 날, 영화 모임을 같이 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고등학교 선배의 글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떴다. 당시만 해도 선배와는 별다른 친분이 없었기에 조금은 조심스러웠지만, 막 영화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하던 시기였고 뭐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바로 선배의 이메일로 지원서(?) 를 넣었다. 물론, 고등학생 시절부터 친해지고 싶었지만 오랫동안 기회가 없었던 선배와 친해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지원서를 넣은 이유도 컸지만 말이다.


그렇게 영화의 바다를 항해하는 '항해자들' 이란 모임에 들게 되었다. '해적선 선장님' 인 선배를 필두로 영화와 친해지고 싶은/영화를 더 깊게 파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첫 모임에선 미리 각자 작성해 온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좋아하는 영화와 어떤 영화 주인공과 자신이 닮았는지를 이야기했다.



MV5BMTIzOTE4MjAyN15BMl5BanBnXkFtZTYwMDMzMjA5._V1_.jpg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파니 핑크>


나는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마다 보고 위로받는 독일 영화 <파니 핑크> 와 주인공 파니를 이야기했다. "Keiner liebt mich(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라는 영화의 원제처럼, 너무나 사랑과 인정을 갈구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내 모습과 꼭 닮아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비록 나 자신의 찌질함과 연약함에 질리고 상처입었어도, 언젠가는 꼭! 온전해지고 싶다고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던 것 같다. (장내가 숙연해져서 조금 당황했지만, 나중에 내 이야기를 듣고 <파니 핑크> 를 봤다는 사람이 두 사람이나 생겼던 걸 보면 말을 그럭저럭 잘 한 모양이다...;;)


MV5BMTg0MzIzOTUwMV5BMl5BanBnXkFtZTgwMjM1ODc2NTE@._V1_SX1503_CR0,0,1503,999_AL_.jpg 100살이 넘으면 밭에 가나요, 배추 한 폭 따고 잠에 드나요... 실리카겔의 <연인> 이 생각나는 영화 <유스>

이제는 다들 바빠 공식 모임이 정말 몇 차례 없지만 <유스> 를 보며 삶과 죽음, 젊음과 늙음에 대해 2시간 넘게 이야기했던 날, <선셋 대로> 를 보고 홍상수 영화에 나왔다던 연희동의 어느 이름없는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며 모두가 말을 놓기로 한 어느 여름날은 아름다웠다. 단지 영화를 보려고 휴가를 내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참석했던 , 셋이서 갈매기 브루잉 맥주를 마시며 해변에 앉아 수다 떨었던 그 10월 밤. 그리고 최애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 를 보며 내 생일을 축하받은 날. 모두가 항해자들 없이는 있을 수 없었던 아름다운 순간들이었다.



근데 넌 영화를 왜 봐?


영화가 왜 갑자기 그렇게 재밌어졌니? 너는 왜 영화를 보니? 라고 묻는다면 사실 나도 뚜렷한 이유를 대기는 힘들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 마음 속 말을 대신 해 줄 누군가를 찾고 그 사람이 내 말을 하는 것을 보려고" 라고 11월 23일 일기에 써 두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공감'받으려고 영화를 본다. 이전에는 그 공감을 사람에게서 애써 찾으려고 했다면, 이제는 공감의 말을 다양한 언어로 변주해 풀어내는 영화를 보며 위로를 받는다.


kganp1p5564pic607kv2.jpg 아직 회현시민아파트를 못 가봤다! 얼른 가봐야 하는데. <아파트 생태계>

그래서였을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봤던 <아파트 생태계> 는 가장 나에게 많은 위로를 준 작품이었다. 사라져 가는 동네와 아파트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과 더불어 왜 우리가 '만질 수 있는' 아파트를 사랑하는지에 대한 긴 고백을 듣게 되었으므로. 어쩌면 내가 고백했어야 할 몫들은 스크린에서 아름답게 완성되었다.



KC_공동정범_still_03.png 평범한 재난 영화 같지만 사실은 보는 나 스스로를 통렬히 파헤치는 작품이다. <공동정범>


LINCONNU-DU-LAC-1.jpg 외로움에 '해결' 이란 해결책은 없다. 이것을 직시해야만 한다. <호수의 이방인>

더불어 받은 상처를 어쩌지 못해 속으로 깊이 침잠해버린 부끄러운 내 모습들은 <공동정범> 과 <호수의 이방인> 에서 다시 만났다. 아픔과 외로움을 인정하는 것과 인정하지 않는 것의 차이는 컸다. 내가 택한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영화에서 확인받으면서도 막상 마음이 편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나의 문제들과 트라우마는 '해결' 하는 것이 아니라 잘 안고 가는 것을 배우는 것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MV5BMTgxOTEwMzM4OV5BMl5BanBnXkFtZTcwODczMTAzNA@@._V1_SY1000_CR0,0,1559,1000_AL_.jpg 삶과 죽음, 남자와 여자라는 이분법은 이제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올란도>

때론 현실성을 초월한 서사도 위로가 될 수 있었다. 틸다 스윈튼의 열연이 돋보인 <올란도> 에서 그(그녀)는 여왕의 명령을 받고 500년간 남성으로 인생의 반, 여성으로 나머지 절반을 살아간다. 남자란 이유만으로 전쟁에서 용맹하게 싸워야 했던 그는 이제 여성이 되어 재산을 빼앗기고 아무리 똑똑해도 남자들의 성적 대상화와 혐오할 거리에 지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아주 수많은 시간이 지나 모든 이분법과 편견을 초월해낸 자유로운 자신을 다시 만나게 된다. 결국 그 모든 건 다 내 자신이었구나. OST인 지미 소머빌의 Coming이 흐르는 가운데 마지막 올란도의 눈물을 조금은 이해하며 맘 속으로 따라 울었다.


이렇듯 수 백가지의 이야기와 수 만가지의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쫓는 카메라와 해석하려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나는 어제는 주인공 A의 속에서 나를 만나고, 어느 날은 카메라 뒤 자신을 확신할 수 없었던 감독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어떤 날은, 같이 본 사람이 내 말을 대신 해주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영화로 뭘 하고 싶나요


어릴 땐 20대 안에 꼭 어떤 영화에든 출연하는 것이 목표였다. 사실 그 목표는 지금도 유효하다. 이제 20대 후반이 되었으니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기간은 딱 3년 남은 셈인데,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올해 꿈꾸는 것은 내가 운영하는 Tumblbug 서비스에 한국 독립 영화들이 더 많이 들어오고 펀딩을 통해 힘을 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영화를 더 잘 만들려고 만든 서비스였으니까 원래의 그 목표를 조금은 더 가져가 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미 우리에겐 <지슬>, <족구왕>, <또 하나의 가족>, <네버다이 버터플라이>, <라오스>, <춘천, 춘천> 등의 역작들이 있었으니.


그리고 장기적인 목표(?) 로는 나중에 영화에 대한 작은 책을 내고 싶다. 나만 쓰는 건 좀 심심하니까 언젠가 나와 같은 출발선을 앞에 두고 오래오래 함께 할 사람하고. 두 사람이 각자 본 영화, 같이 본 영화에 대한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쓰는 거다. 그걸 펀딩받아서 내고 우릴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보내주느라 진땀을 쏙 빼고 싶은게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목표! ㅋㅋ


아, 무엇보다도 올해는 본 영화마다 5-10줄의 평은 꼭 써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이제 패터슨 (드디어) 보러 가는데 이따 자기 전에 평을 꼭 완성하고 자면 좋겠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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