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케이크메이커> 를 통해 본 사람, 사랑
사랑할 때 우리는 평소와 상당히 다른 사람이 된다.
늘 똑부러지고 깐깐한 사람이 연인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된다거나,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사람이 애교가 넘치게 된다거나,
피곤해하기 일쑤였다가도, 연인과 함께하는 시간에는 더없이 활기찬 사람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여기 두 사람이 있다. 바로 독일인 파티시에 토마스와 이스라엘 남자 오렌.
베를린에 출장을 올 때마다 토마스의 가게에 들러 시나몬 쿠키와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를 즐겨 먹는 오렌은
사실 토마스와 불륜 관계이다. 이스라엘에 아내와 아들을 버젓이 둔 채로.
한 달에 한 번 만날때마다 짜릿한 비밀 만남을 즐기던 그들의 관계는
어느날 오렌이 예루살렘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으며 끝난다.
그리고 토마스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괴로워하며 가게 일을 멈추고 곧바로 그의 흔적이 남은 예루살렘으로 날아간다.
극중에서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도 오렌은 토마스에게 가족에 대해 종종 얘기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아나트의 카페를 잘 찾아갈리 없잖아!;;)
토마스는 죽은 오렌의 아내, 아나트가 하는 카페에 가서 계속해서 음식을 시키고 커피를 마신다. 오렌이 살아있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지만, 막 코셔 인증(유대교의 까다로운 식음료 인증)을 마쳤다는 아나트의 가게는 적막만이 감돌 때가 많고, 남은 식재료들은 아나트의 짜증과 함께 버려질 때가 잦다.
토마스는 결국 아나트의 카페에 취직하게 되고,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긴 채 온갖 궂은 일과 카페 업무 일체를 묵묵히 처리해 나간다. 물론 죽은 연인 오렌의 흔적을 하나씩 더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카페를 운영하는 데 관여했을 아나트의 남자 형제들 (모티, 아브람 등)은 이방인인 토마스를 껄끄럽게 여기지만, 케익과 쿠키를 구우며 자신의 존재감을 조용히 확장해 나가는 토마스는 막 남편을 잃고 혼자 삶을 헤쳐나가야 하는 아나트에게 더없는 위로가 되어가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불륜 관계에서 불륜 상대의 남편이나 아내는 관계의 제일 큰 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토마스의 경우를 보면, 그는 딱히 아나트의 존재에 대해 큰 위협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그에겐 사랑하는 오렌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아니었을까.
사실 예루살렘에 가자마자 토마스가 한 일 중 하나는 오렌이 생전 다니던 수영장에 가서 그의 사물함을 연 뒤 오렌의 수영 팬티를 입고 수영을 하는 일이었다. 오렌은 베를린에 자신의 키 묶음을 두고 갔고, 그 키 묶음은 이제 토마스에게 있어 오렌의 가장 내밀한 세계를 열어 젖힐 수 있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그는 이제 오렌이 채워야 했던 자리들을 하나씩 차지해 나간다. 마치 자신이 원래부터 오렌이였다는 듯.
정말 이상하게도 그의 행동들은 실제가 된다. 오렌의 어머니는 토마스를 마치 오렌처럼 대하며, 사밧 저녁식사에 초대된 토마스는 오렌의 옷을 입고 유대 모자를 쓰게 되는 경우가 잦아진다.
아나트는 극중에서 제일 공허한 인물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차라리 무표정을 거두고 펑펑 울었으면 싶을 정도다. 사랑하는 남편이 아이와 자신을 남겨두고 새 삶을 찾겠다며 자신을 떠나버렸고, 떠나버리려는 그 순간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으니 자신에게 닥친 이 상황이 기가 막히고 원망스러운 것 투성이일 것이다.
사실 아나트의 외로움이 굉장히 깊었다고 판단하는 데에는 바로 토마스가 구워낸 '케이크를 먹는 행위' 에서였다. 오렌은 토마스의 케익을 깔끔하게 다 먹는 정도이지만, 아나트는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케익이 담겼던 접시까지 핥아 먹는다. 일반적으로 먹는 것 = 어떤 욕구에 대한 은유라고 봤을 때, 아나트의 욕구 불만은 이미 상당한 수준이었을 것 같다.
보수적인 유대 사회에서의 자신의 불안한 입지. 그리고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 너무나 많은 상황에서 아나트는 메말라버린 자신을 채워줄 무언가를 매우 갈구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불쑥 아나트의 삶에 들어온 토마스는 그녀에겐 오아시스 같은 존재 아니었을까? 맛있는 케이크와 쿠키를 구워 아나트와 손님들을 기쁘게 하고 (물론 매상에도 엄청난 기여를 하고!), 궂은 일을 묵묵히 하고, 실제로 자신을 지켜준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마음의 의지가 되니 말이다.
극중에서 토마스와 아나트가 연인처럼 그려지는 장면들은 그렇게 길지 않지만 그만큼 파급력은 크다. 아나트의 급작스런 키스로부터 시작되어, 그들은 카페 부엌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그 뒤에도 몇번 더 사랑을 나눈다. 그것이 진짜 '사랑해서' 한 행위인지는 사실 이 곳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나는 그 장면에서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마지막 장면과 영화 120BPM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처절하게 사랑하고 미워했던 누군가를 서로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해 나누는 격렬한 섹스.
토마스는 그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오렌이 되어 그가 했어야 할 몫을 다하고, 아나트는 그 안에서 그리워하던 오렌의 현신을 본 것이 아니었을까. 오렌이 살아있을 적, 토마스는 오렌에게 어제 어떤 사랑을 나누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오렌이 답해주었던 것들을 하나씩 다시 아나트에게 재현해 나간다. 밀가루 반죽으로 빵과 과자라는 견고한 세계를 창조해나가듯, 이제 토마스도 오렌의 세계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다시 재구성해 자신 안의 오렌이란 세계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듯 보인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함께 일하던 다나의 밀고로 카페의 코셔 인증이 취소되며 다 만들어놓은 케이크 120인분의 주문도 함께 취소되고, 아나트는 죽은 오렌의 부재중 메시지들과 남긴 영수증을 모두 대조해 토마스의 정체를 알아내고 만다. 그리고 토마스는 쫓기듯 예루살렘을 떠난다.
다시 일상. 카페의 코셔 인증은 취소되었지만 토마스가 남기고 간 레시피 덕분에 카페에 손님은 끊기지 않는다. 그리고 토마스는 잠시 영업을 하지 않았던 자신의 카페 영업을 재개한다. 배신감에 몸부림치던 아나트는 어느샌가 조용히 베를린으로 날아와 토마스의 가게를 지켜보고,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재미있게도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극중에서 토마스가 케익이나 과자를 먹는 장면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저녁 식사에 초대되었을때 뭔가를 먹는 듯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속시원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토마스는 뭔가를 계속 만들어 사람들을 먹인다.
코셔를 엄격하게 지키는 곳에서는 육류와 유제품을 다루는 곳이 엄격히 분리되어야 한다. 이방인이 음식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지만) 하지만 아나트나 토마스나 이걸 칼같이 지키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랬으니 취소당했겠지...)
또, 토마스는 결정적으로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을 박해했던 독일인의 후손이다. 이제는 그러한 배경이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의 존재가 오렌의 죽음 이후 남겨진 유대인들을 위로한다는 점에서 특별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가족이 없는 토마스가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고 소통해오던 방식은 바로 '먹이는 것'. 그는 엄격한 유대 사회를 넘나들며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코셔라는 잣대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맛있는 케익과 과자를 만들어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잠시 토마스의 지난 과거를 보자. 할머니와 오렌, 그리고 (오렌의 모양을 하고 사랑했던) 아나트까지,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그를 떠나갔다. 모두가 그가 만든 케익과 과자를 사랑했다는 공통점도 함께 있다. 어쩌면 그의 사랑 방식은 받기보다는 주는 것, 주는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방식이었을 것 같다. 그의 사랑이 그처럼 달고 편안하고 맛있었으므로, 그는 영화 속에서는 경계를 허물고 화해를 해 가는 전령사로서의 역할은 다 한 셈이다.
하지만 케익과 과자는 매일 삼시세끼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아마도 그가 계속하여 케익과 과자만을 만들어 내는 한, 계속해서 어딘가 슬픈 사랑을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든 건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
이 리뷰는 브런치 영화패스를 통해 영화를 보고 쓴 리뷰입니다.